사람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삶의 지혜를 얻다 – 리빙(휴먼)라이브러리


책 향기를 가득 머금은 도서관. 그 안에 빼곡히 꽂혀있는 책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책을 골랐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그렇게 고른 한 권의 책을 통해 누군가의 인생을 엿보고, 그 안에서 얻은 새로운 배움을 통해 나의 인생이 풍요로워지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기억일 것입니다. 그런데, 도서관의 서가에 꽂힌 것이 ‘책’이 아닌’ 사람’이라면, 그것도 내가 꼭 만나고 싶었던, 혹은 살면서 절대 만날 일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아르떼진 2월 커버스토리, 그 세 번째 이야기는 배움과 지식 나눔에 대한 새로운 접근, 책 대신 사람을 빌려주는 살아있는 도서관 ‘리빙 라이브러리’입니다.


대화를 통해 배우다

사람들은 하얀 미색의 종이 위에 쓰여진 글을 읽는다. 지금이야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서 보는 글이 훨씬 많아졌지만 인터넷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 속에 자리잡기 전까지 사람들은 책을 통해서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지식과 정보, 삶의 지혜를 얻었다.

중세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 중국에서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양피지와 파피루스에 기록을 했을 테지만 그 기록물들을 대중들이 읽기란 쉽지 않았을 터이다. 결국 지금과 같이 사람들이 책이라는 것을 광범위하게 읽기 시작한 것은 인쇄술이 발명되고 난 훨씬 이후의 일이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종이책이 보급되기 이전에 사람들은 ‘읽는 행위’가 아니라 ‘듣는 행위’를 통해서 세상을 이해하고, 지식을 얻고, 인생의 교훈을 배웠다. 듣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 즉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미래로 인도하는 매개가 되었다.

종이책을 통해 다양한 ‘지식’이 광범위하게 전파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고 현상을 정확하게 판단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거나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설계해보는 높은 수준의 정신적 능력은 사람들간의 대화를 통해 한층 성숙해져 왔다. <리빙 라이브러리>라고 하는 행사의 취지는 이처럼 종이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배우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사람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삶의 지혜를 얻다

몇 해 전부터 한국에서도 전파되기 시작된 <리빙 라이브러리>라는 행사는 덴마크 출신의 사회운동가인 로니 에버겔이 2000년 한 뮤직 페스티벌에서 창안한 이벤트성 도서관이다. 유럽에서 시작해서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리빙 라이브러리>는 책 대신 사람을 빌리고, 글을 읽는 대신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던 편견과 선입견을 없애고, 삶의 지혜를 얻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행사이다.

이 행사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주최측에서 미리 제공하는 사람책에 관한 정보를 보고 대출을 신청한다. 그리고 행사가 열리는 날 미리 대출을 신청한 사람책을 만난다. 그리고 대화를 나눈다. 한차례 대화의 시간이 끝나면 다른 사람책을 대출하여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사람책은 누구나 될 수 있다. 꼭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이거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만이 책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하여 즐겁게 살고 있는 사람, 어려운 역경을 이겨낸 사람,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도 모두 책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가 하나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리빙 라이브러리 in 제주, 8명의 사람책

2월에 제주에서 열리는 <리빙 라이브러리 in 제주>에 사람책 중 한 명으로 참여하는 곶자왈 작은학교 아우름지기인 문용포님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하지만 젊은 시절, 암울한 사회는 그가 선생님이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 선생님이다. 비록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학교의 선생님은 아니지만 <곶자왈 작은학교>를 통해서 만나는 아이들의 선생님이다. 아이들과 즐겁게 놀고, 서로 대화하고, 공부하고, 여행다니는 학교의 선생님이다. 그가 아이들과 함께 거니는 곳곳이 그때그때 학교로 변한다.

도서관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도서관이라는 건물이 없어도, 1년 365일 항상 열려 있는 곳이 아니어도 도서관일 수 있다.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읽는 곳이 아니라 세상을 읽고, 호기심을 풀고, 지혜를 얻어가는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진정 그 목적에 충실한다면 우리는 도서관에서 종이책을 대출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책을 대출하고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나 도서관을 만들 수 있다. 그런 도서관이 바로 <리빙 라이브러리>, 살아있는 도서관이다.

생태적이고 소박한 삶과 귀농에 관심있는 사람은 헬렌 리어링과 스콧 리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읽을 수도 있지만 오래 전부터 귀농해서 생태적 삶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사회적기업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바꾸는 대안기업가 80인>을 읽어도 되지만 사회적 기업을 통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 일하고 있는 사회기업가를 만나면 된다. 채식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채식주의자와 만나고, 시인이 되고 싶은 사랑이라면 시인을 만난다. <리빙 라이브러리>는 바로 그런 기회를 제공해주는 행사인 것이다.

2월에 제주에서 열리는 <리빙 라이브러리>에서는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는 10대와 20대들의 인생 고민을 함께 나눠줄 8명의 사람책이 모였다. 공무원 시험과 대기업의 취업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이분들은 제주에 살면서 스스로 행복한 일을 하고 있는 사회적기업가, 생태여행안내자, 카페지기, 문화콘텐츠제작자, 갤러리관장, 대안학교 선생님, 데크니컬 저술가, 공간예술전문가들이 그분들의 직업이다. 사전에 대출신청을 한 24명의 젊은이들은 칸막이 쳐진 도서관을 벗어나 수험서와 토익책을 던져버리고 진짜 살아 숨쉬는 도서관으로 사람책을 만나러 올 예정이다. 테이블 위에 놓인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삶의 지혜를 배우는 살아있는 도서관으로.

글_조아신 / 씽크카페 기획코디네이터, 리빙라이브러리in제주 제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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