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의 프라이버시 지키기

내 정보는 원칙적으로 내 것이다. “누가 당신 소유 아니래?”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이런 지면을 통해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는 이유는 한 가지, 이미 내 정보가 내 것이 아닌 현실 때문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는 정보는 이미 많은 곳에서 수집하고 있다. 관공서, 병원, 인터넷기업, 백화점, 은행…. 심지어 몇 개의 시민단체까지.

뭐, 까짓 거 좋다. 마음 편하게 먹으면 사실 문제될건 없다. 내가 스스로 제공한 정보이기 때문에 그 양반들이 불법적으로만 쓰지 않는다면야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런데 왜 그러냐고?

이유는 간단하다. 개인정보를 내가 스스로 통제할 있는 권리를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개인정보를 제공받은 업체가 회원약관과 법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것을 사용하는 것은 그들의 권리이다. 그러나 문제는 개인이 동의한 바 없는 정보 사용권을 누군가가 멋대로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나에게는 동의를 거치지 않고 개인정보를 공유·전파·거래하는 행위를 통제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개인정보는 곧 돈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메일 주소를 예로 들어 보자. 받고 싶지 않은 이메일은 거부하고 통제할 권리가 나에게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런 권리가 현재 없다. 나는 하루에도 몇통씩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과 기업으로부터 이메일을 받는다. 불법 CD를 사라는 개인이 발송하는 메일부터 어디 좋은 땅이 있으니 살 생각이 없냐는 부동산 업체로부터의 메일, 새로운 웹사이트가 생겼으니 가입하라는 메일까지. 내 이메일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혹자는 이런 현실을 두고 이렇게 얘기를 한다. “나도 그런 이메일 많이 받는데 그냥 지워버리면 되잖아?”

풋! 만약 당신 집에 시도 때도 없이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온다고 가정해보자. 그냥 끊어버리고 말 것인가? 집 문 앞에 있는 우편함에 광고전단이 계속 쌓인다고 생각해보라. 휴지통에 버리거나 그냥 찢어버리고 말 것인가?”

“단지 그것 때문이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으니까 기분 나빠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다. 난 기분 나쁜 이유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지만 이건 단지 기분의 문제만은 아니다. 94년 미국 플로리다주 펜서콜라에서 낙태클리닉을 운영하던 한 의사는 인터넷으로 유출된 자신의 주소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반낙태단체의 회원들이 웹사이트에 등록된 그의 주소를 알아낸 뒤 살해한 것이다. (99년 11월 11일자 『동아일보』) 자신의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하면 이렇게 목숨까지 잃을 수가 있다. 이메일 주소는 집주소하고 다르지 않냐고? 너무 방심하지 말기 바란다. 당신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는 사람이 당신 이메일을 통해 치명적인 컴퓨터 바이러스를 보낼지도 모른다.

많은 인터넷 기업들이 웹사이트를 통해 회원의 개인정보를 제공받고 몇가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공짜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공짜가 아님을 명심하자. 자신의 개인정보와 업체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맞바꾼 것이기 때문에 괜히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인터넷 기업들에게 회원 수는 곧바로 돈과 직결된다. 회원 수에 따라 배너광고의 가격이 결정되고 미래가치를 평가받게 된다. 모 인터넷 업체의 코스닥 주가가 수직상승한 이유도 수백만에 달하는 회원 수 때문이고 모 채팅서비스 업체가 수십억에 팔린 이유 또한 회원수 때문이다. “그래서 무슨 문제가 있나?” 아니, 여기까지는 사실 문제될 건 없다. 회원가입이야 억지로 강요당한 건 아니지 않은가?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따라 가입하고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에 기업이 그걸 가지고 마케팅에 활용하건 기업을 높은 가격에 매각하건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다.

누가 마음대로 정보를 공유하래?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요즘 인터넷 업체들끼리 웹사이트 연합을 많이 한다. 웹사이트 연합의 이유가 서로 부족한 컨텐츠를 보강하기 위한 측면도 있겠지만 회원정보의 공유와 회원 수 확대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다. 회원수 100만의 A기업과 역시 회원 수 100만인 B기업이 사이트 연합을 한다고 하자. 이 경우 회원정보는 서로 공유된다. 정보사용의 목적과 용도가 변경되면 회원의 허락을 얻어야 하는 건 상식이자 원칙이지만 회원에게 동의를 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 이제 A와 B 기업은 사실상 회원 수 200만의 기업이 되었다. 가정이긴 하지만 만약 이 업체들이 또다른 업체들과 사이트 연합을 한다고 하자. 회원 수 1천만 명? 금방 달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정확한 통계자료는 없지만 암묵적이고 불법적으로 거래되는 개인정보까지 고려한다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크다.

이렇게 모아진 회원 수와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은 마케팅 행위를 하고, 코스닥에 상장하고 기업을 매각한다. 인터넷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이 불분명한 상황에서 회원 수는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 중의 하나인데 이렇게 개인의 동의없이 공유된 회원 수가 과연 제대로 된 평가기준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기업들에 의해 주도되는 인터넷 경제는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개인정보 유출 문제를 자기통제권의 상실과 프라이버시권의 침해 문제 뿐만 아니라 경제적 가치의 문제로까지 확대해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보화 사회에서 프라이버시권이 더욱 중요시되는 이유는 개인의 정보를 수집·분석·처리하는 기술이 급격히 발달했기 때문이다. 현실의 세계와 달리 가상의 공간에서는 개인의 정보가 통제없이 흘러다닌다. 프라이버시권이 침해될 위험성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이다. 개인들의 정보를 수집·사용하는 목적과 용도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개인은 누군가로부터 프라이버시를 침해받는 반면 또 누군가는 타인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함으로써 이익을 얻고 있는 게 정보화 사회의 현실이다.

독일의 헌법재판소는 1984년 “사람은 재고물건처럼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신분증의 일련번호를 전산망의 검색어로 사용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독일에서는 신분증을 발급하고 관리하는 주무관청 이외에는 이 일련번호를 종이에 적어 보관하는 것도 불법이라고 한다(『한겨레』 2000년 2월 2일치 정보도 복지다). 한국은 어떤가? 생년월일, 남녀구분, 출생지 등을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주민등록번호를 중앙정부의 각 부처 뿐만 아니라 읍·면·동사무소까지 각종 데이터로 저장·가공하여 표준식별번호로 사용하고 있다.

어디 정부 뿐인가? 인터넷 기업들도 개인의 주민등록번호를 수집·저장·분석한다. 회원가입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는 웹사이트가 있다면 그 용도를 한번 물어보기 바란다. 명확하게 용도를 밝히는 곳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나도 이메일을 통해 몇번 물어본 적이 있지만 답변이 온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답변이 온 경우에도 그 목적이 참 불분명하다. 보다 나은 서비스 제공과 개인신상 확인을 위해서라는데 주민등록번호가 보다 나은 서비스와 무슨 상관이며 개인신상확인이야 성명, 이름, 나이, 전화번호로 다 했는데 또 무슨 확인이 필요한가?

개인정보 보호위해 기업 스스로 나서야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기업들도 스스로 회원이나 소비자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대책들을 강구해야 한다.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었을 때 개인정보 보호에 무책임한 국내 인터넷 기업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기술·정책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외국 인터넷 기업 중 어느 곳이 경쟁력이 있겠는가? 무턱대고 국민의 애국심에만 호소할 것인가? 개인정보의 보호는 기업의 경쟁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함께하는 시민행동(www.ww.or.kr)은 작년말 “프라이버시 보호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웹사이트 상에 “개인정보보호정책”을 제시했다. 왜냐하면 내가 속한 단체도 인터넷상에서 회원가입을 받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도 예외일 수는 없다. 지금 당장 웹사이트를 확인해보기 바란다. 비록 적은 숫자일지 모르지만 회원 정보를 어떤 목적과 용도로 수집·사용한다는 점을 공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정보의 보호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마지막으로 회원가입을 위한 정보입력항목에 주민등록번호, 결혼여부, 종교, 취미, 성별, 학력 등이 있다면 그 정보가 왜 필요한지 곰곰히 생각해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유가 불분명하다면 입력항목에서 과감하게 삭제하시라.

_ 조양호 함께하는 시민행동 프라이버시보호캠페인팀장

원문보기 : 월간 참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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