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ef인가, Supporter인가?

CIO, Chief Information Officer. 비즈니스 용어중 하나인데 정보담당임원, 최고정보책임자라고 하더군요. 즉, 정보통신기술과 비즈니스를 전략적으로 결합.조정하는 관리자를 말하는 것이지요.

갈수록 CIO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CIO는 비즈니스적인 경험과 지식 뿐만 아니라 기술에 대한 광범위한 이해와 판단력까지 겸비해야 하므로 정보통신기술의 산업을 선도하는 이 시기에 그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근데 이 CIO가 기업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에도 CIO가 있습니다. 현 정부내에 정보화책임담당관협의회가 있습니다. 1998년 이 제도가 도입되었는데 일종의 정부가 정보화를 추진함에 있어 각 부처의 의견을 조율하는 회의체 성격의 기구입니다. 그런데 이 기구의 역할이 유명무실하다는 소식이 최근에 들려옵니다. 초창기에는 학술세미나도 하고, 모임도 자주 했다는데 2000년과 2001년에는 각각 단 한차례씩의 CIO연찬회를 제외하고는 활동이 거의 없었다는거지요.

이유는? 의사결정권한이 없어서 제 역할을 못한다고 합니다. ‘정부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라고 생각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이야기거리를 발견해봅니다. 조직 내에서 구성원이 어떤 일에 대한 책임을 맡았을 때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그 사람에게 의사결정권이 어느 정도까지 존재하느냐는 것입니다. 의사결정권이 없으면 아무리 아이디어가 많고, 추진력이 뛰어나더라도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의사결정권도 주지 않으면서 Chief라는 그럴 듯한 명칭을 부여한 정부도 한심스럽지요.

Chief가 무엇입니까? 조직, 단체의 長, 우두머리, 장관.. 뭐. .이런 의미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정보기술의 활용과 관련해서는 그 양반에게 전권을 줘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럼 NGO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NGO 내부에 CIO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는 곳은 없을겁니다. 물론 똑같은 이름은 아니지만 정보팀장, 인터넷팀장, 웹마스터 등 다양한 이름으로 조직의 활동과 정보통신기술을 전략적으로 결합시키는 일을 하는 상근운동가가 있긴 합니다.

일률적으로 판단하기는 힘들겠지만 주로 웹마스터 혹은 인터넷팀장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거 같더군요. 2년 전인가요. “시민단체의 인터넷 전략 워크샵”이라는 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요. 거기에 참여한 상당수 사람들이 기업으로 따지면 CIO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술자리에서 나온 이야기중 모두가 공감했던 이야기 중 하나는 ‘내가 시민운동가인지, 단순히 기술자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성명서 나오면 ‘이거 올려줘’… 무슨 행사 있으면 ‘행사 안내문 인터넷에 올려줘’.. 뭐.. 이런 요구들 때문이겠지요. 자신의 일을 주도하고, 만들어가고, 책임지는 Chief가 아닌 Supporter로서의 역할만 하게 되니 고민이 많이 된다구요. 이 길을 계속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말이죠. 아마 이런 비슷한 고민 해보신 분들 많으실겁니다.

또다른 경우도 있었습니다. 모 단체의 경우 자유게시판에서 특정 사안 때문에 시민들 사이에 엄청난 논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논쟁이 벌어진 것은 좋은데 욕설에다가, 특정인을 비방하는 말까지.. 좀 통제가 안되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 단체의 웹마스터는 어떻게든 게시판이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통제되고, 정화되기를 바랬기 때문에 자의적인 판단으로 글을 삭제하지 않고 그냥 두었는데 — 물론 홈페이지 운영자로서 몇차례의 설득과 개입을 했겠지요 — 사무국장이 몇 개 글들을 지우라고 하더랍니다.

당사자들에게 항의를 좀 받았나봐요. 웹마스터는 나름의 게시판 운영의 원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쟁이 좀 벌어졌나보죠… 그래서 왜 게시판의 글들을 운영자가 자의적 판단으로 함부로 지우면 안되는지… 시민단체 홈페이지 게시판의 운영원칙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명했는데….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울 수밖에 없었더는군요. 이런 상황이 조직의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담당자로서 엄청난 자괴감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NGO들도 사실 인터넷을 전략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조직하는 것에서부터, 캠페인의 수단, 모금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미디어로 기능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직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정보화 담당, 혹은 인터넷 담당자를 한명씩 두고 있는 상황이지요.

과연 우리 조직의 인터넷 담당자에게 어느 정도의 의사결정권이 있는지 한번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100% 의사결정권을 넘겨라는 식의 주장은 옳지 않을거 같구요. 단체마다 사정이 다를테니까요. 나중에 실제적인 사례가 있으면 소개하도록 하지요.

의사결정권을 중요하게 이야기한 것은 NGO에서 인터넷을 아무리 잘 이용하고 있다 하더라도 담당자의 의사결정권이 부재하면, 운동도 오래 갈 수 없고, 이 분야의 전문성도 나올 수 없으리라는 생각때문입니다. 그렇게들 생각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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