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 일본 소비자와 기업의 싸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가능케 한 인터넷 – 도시바의 사례

1999년, 일본 후쿠오카(福岡)에 사는 한 남자 회사원이 개설한 홈페이지가 한달만에 무려 조회수 160만건을 기록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달에 160만클릭은 왠만한 기업 홈페이지도 달성하기 힘든 수치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한 이유는 무엇인가?

38살의 이 회사원은 일본의 유명한 전자제품 회사인 도시바의 비디오재생기를 구입했는데, 화면에 자꾸 흰선이 나타나는 문제가 발생하자 도시바에 수리를 요청했다. 그런데 고객상담의 전화가 계속 이쪽저쪽으로 돌더니 결국 도시바의 한 직원으로부터 “당신같은 사람은 고객이 아니니 전화를 끊겠다. 업무방해다”라는 폭언을 듣는다.

전화내용을 녹음해두었던 이 회사원은 99년 6월, 이것을 음성화일로 만들어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놓았고, 이를 한 비즈니스 잡지가 소개하면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폭발적인 반응에 당황한 도시바는 당시의 정황을 설명하면서 “성의를 갖고 대응하고 있다”며 잘못이 없음을 호소했다. 직원의 대응에 문제가 있음은 인정했지만 회사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며, 소비자쪽에도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 기업이 개인을 상대로 해명성 자료를 낸 것도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회사원은 “도시바의 공식견해에 대한 반론”이라는 제목으로 도시바쪽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역시 이 자료를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다. 이런 내용이 언론에 소개되자 방문자수가 또다시 증가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도시바쪽에 항의메일을 보내거나 도시바불매운동 촉구 페이지가 등장하기도 했다.

도시바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대로 있다가는 사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판단한 도시바는 결국 1999년 7월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진심으로 사죄하고 반성한다”고 정식 사과했다.

이 사건은 당시 하나의 혁명적인 사건으로 신문지상에 보도되었다. 혁명적이라는 이유는 인터넷이 기업과 소비자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사건을 소비자의 승리로 만든 것은 직접적으로 음성화일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동안 이름없는 물품구매자에 지나지 않았던 소비자이 인터넷으로 인해 급격히 강해졌다는 사실이다.

이 도시바 사건은 한국에도 언론을 통해 상세히 소개되었는데, 이 도시바 사건은 몇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첫째, 소비자와 기업의 전통적인 관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소비자는 봉이라는 말도 있듯이 소비자는 전통적으로 상품구매자에 지나지 않았다. 소비자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한 후에서야 소비자의 권리라는 개념이 통용화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힘의 우위는 기업에 있었다. 하지만 도시바의 사례는 이런 방정식을 무너뜨렸다. 소비자의 힘은 여러명이, 그것도 매우 많은 숫자가 뭉쳤을 때 힘을 발휘한다. 인터넷은 한달만에 수백만명의 소비자를 도시바라는 거대 기업의 저항세력으로 만들어내는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둘째, 소비자 운동에 변화가 생길 단초를 제공해줬다는 점이다. 한명의 소비자가 기업과 싸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언론이 서포트를 해준다면 몰를까 개인으로서의 소비자의 힘은 매우 미약하다. 때문에 소비자 운동은 이런 개인으로서의 소비자들을 하나로 묶어 조직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저항해왔다. 기업은 이러한 조직적인 항의가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소비자의 의견을 중요시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도시바 사건에서 보면 소비자 단체의 역할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단체의 사무실은 인터넷이었고, 싸움의 수단은 이름없는 수많은 지지자들의 성원이었다.

셋째, 한 개인과 기업의 싸움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전해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이 현실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인터넷 때문이다. 당시 일본에서는 오사카 공무원이 증권회사로부터 당한 피해를 고발한 홈페이지, 쇠고기덮밥 체인점이나 햄제조회사의 제품결함을 고발한 홈페이지 등이 수십만단위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인터넷 공간에서이 개인과 기업과의 싸움을 두고, 일본의 미디어평론가 시노다 히로유키는 “개인의 홈페이지가 대중매체 같은 권력을 쥐기 시작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개인과 기업의 싸움을 가능케 한 인터넷이 특징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무한한 전파력과 빠른 속도이다. 전통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파한다는 것은 1:1 접촉이 아니고는 불가능했다. 유인물을 만들어 도심거리에서 뿌릴 수도 있었겠지만 하루에 수십만장을 만들어서 뿌리는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은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해서 엄청난 정보전파력을 발휘했다. 그 속도 또한 기존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바로 이 정보의 전파력이 기업과 개인의 싸움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다.

인터넷을 이용한 운동에 있어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분야가 바로 기업고발사이트이다. 기업은 이미지를 매우 중요시한다. 인터넷은 바로 이런 기업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나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인터넷이 없었을 때 소비자가 기업에 항의할 수 있는 수단은 기껏해야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쓰는 일이었다. 이는 소비자 한명과 기업과의 의사소통이기 때문에 외부에 알려지지도 않고, 설령 알려진다 하더라도 그 전파력이 미비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아무리 좋지 않은 정보라 하더라도 기업의 이미지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인터넷은 자기 권리를 찾으려는 사람들로 인해 기업의 이미지에 타격을 가하는 강력한 무기로 등장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터넷 공간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것만으로도 소비자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엔 기업들이 인터넷에 올라온 고객들의 불만을 외부에 알려지기 전에 즉각즉각 처리해주는 경우가 많다. 이 모든게 인터넷 때문이리라. 소비자의 권리향상의 측면에서만 본다면 인터넷은 정말 보석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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