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의 수평적 의사결정구조

수평적 의사결정구조로의 변화

인터넷이 가져다준 변화를 이야기할 때 의사결정구조의 변화를 빼놓을 수 없다. 의사결정구조의 변화는 인터넷 시대에 필연적인 결과일 수 있다. 각각의 개인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는 상황에서 수직적인 것, 권위적인 것은 도태되기 쉽상이다.

이러한 수평적인 의사결정구조를 대중의 관심 속으로 끌어낸 곳은 조직화된 시민단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터넷 공간에서의 자발적인 네티즌들의 모임을 통해서이다. 물론 기업들은 이미 수평적 의사결정을 효율성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팀제라는 방식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실험들을 진행, 정착시키고 있었다.

2002년 6월, R-세대로 이름 붙일 수 있는 붉은악마들은 수평적 의사결정구조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광란에 가까운 응원을 펼치면서도 매 경기마다 통일된 카드섹션을 선보이고, 경기장 내에서의 질서유지에 최선을 다하고, 응원이 끝나면 자발적으로 청소도 하는 지시가 아닌 제안과 동의에 의해 만들어진 자발적인 질서를 추구하였는데, 이러한 질서가 바로 인터넷 공간에서의 수평적 의사결정들을 통해서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수평적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것 : 첫 번째 – 전자게시판

전자게시판, 지금은 광고나 쓰레기같은 정보들로 넘쳐나서 아무 것도 아닌 것같이 보이지만 전자게시판은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는 혁신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이메일과 더불어 전자게시판은 의사결정구조를 수평적으로 이루는 것을 앞당긴 일등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자게시판은 조직에 속한 개인들의 아이디어와 생각들을 서로에게 공평하게 전달해서 모두가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하는 유용한 도구이다.

네티즌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온라인 토론방이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전자게시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전자게시판에서 다양한 정보들이 오고가고, 토론들이 이루어진다. 때로는 격렬한 논쟁과 상호비방, 명예훼손에 의한 법정분쟁까지 오고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전자게시판의 활성화는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인터넷 문화 중의 하나이다.

외국의 시민단체나 언론사 등의 홈페이지에서 전자게시판을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전자게시판이 수평적 의사결정을 도와준다고 하니까 이 전자게시판을 자유게시판으로만 보지 마시길 바란다. 누구나가 들어왔다 나갈 수 있고, 한마디씩 던져놓고 나가도 무방한 자유게시판은 이미 건전한 토론과 의견교환이 이루어지기 힘든 공간이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전자게시판은 특정인들만의 접속이 허용되는 커뮤니티 공간 내에서의 게시판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회사나 조직의 인트라넷일 수도 있고, 회원 외에는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 동아리, 단체 등의 게시판일 수도 있다.

전자게시판이 아니었다면 일상적인 의사결정은 말할 것도 없고, 전체 구성원들에 의한 수평적인 의사결정도 결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전자게시판이 아니었다면 1차적으로 공간적 제약으로 인해 간접적인 방식을 계속 유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즉, 전체 구성원을 대표할 소수의 의사결정구조를 구축하고, 그 구조 하에서 내린 결정이 전체 구성원들에게 하달되는 방식, 개개인의 구성원들이 문제제기를 하려면 정해진 절차에 의해 안건을 올려야만 하는.. 이런 상황에서 일상적이고, 수평적인 의사결정은 마음 먹는다고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수평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것은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의견개진이 가능하고, 그 의견들이 의사결정구조에 영향을 미치고, 논의과정들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결론을 함께 도출해내는 것을 말할 것이다. 전자게시판이 이와 같은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수평적 의사결정을 도와주는 것 : 두 번쨰 – 이메일

이메일도 전자게시판과 마찬가지다. 그 방식이 다를 뿐. 다만 본인이 속한 단체에서는 전자게시판보다 이메일을 이용한 의사결정이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에 인트라넷에 마련된 전자게시판을 적극 이용해보려고 했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현재는 인트라넷 이용이 정지된 상태인데, 인트라넷 내부의 전자게시판보다 이메일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편리함 때문이다.

이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교에서 연구한 라는 논문에서도 사례연구를 통해 드러났지만 많은 단체들이 인트라넷 이용보다는 이메일을 선호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인트라넷의 전자게시판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로그인이라는 절차를 한번 더 거쳐야 하고, 상시적으로 쓰고 있는 이메일이 있는데 굳이 전자게시판을 활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메일을 이용해서 우리는 단체가 새로 구입한 건물이름을 공모하고, 이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하고, 이를 통보하기도 했다. 이메일을 이용해서 우리는 성명서를 낼 것인지 말 것인지, 성명서를 내면 어떤 주장을 펼쳐야 할 것인지를 이메일로 결정하기도 한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끼리 말로 하면 되지 굳이 이메일로 할 필요가 있냐고 궁금해할 수도 있겠는데 본인이 있는 단체는 사무실에 나오지 않고 일부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메일은 평상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수평적 의사결정구조의 장점 – 그 속엔 인터넷이 있다.

수평적 의사결정구조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신속한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조직의 개방성과 유연성을 높여준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는 투명한 조직운영을 가능케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세가지 장점을 가능하게 해준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가 인터넷이다.

신속한 의사결정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신속하지 않은 것을 신중함으로 포장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인터넷의 속도를 굳이 들먹일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인터넷을 이용해 과거 보다 훨씬 빠르게, 그리고 더욱 다양한 정보들을 접하면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의사결정 당사자들에게 속도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언제 인터넷을 접속하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인터넷은 거의 동시에 정보를 전달해주기 때문에.

수평적 의사결정구조가 조직의 개방성과 유연성을 높여준다는 것도 인터넷의 근본적인 특성에 연유한다. 페쇄적이고, 경직된 조직은 인터넷을 쓸모있게 이용하기 힘들다. 인터넷을 이용한 의사결정의 경험들이 쌓이게 되면 그만큼 조직의 개방성과 유연성도 함께 올라간다고 할 수 있다.

수평적 의사결정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정보의 공유와 탈권위적인 리더쉽이라 할 수 있는데 정보의 공유는 우리끼리만의 정보공유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정보를 외부로 공개한다는 것까지를 포함하는데 이는 조직의 운영을 투명하게 강제하는 효과가 있다. 회의록과 재정상황 등의 정보를 인터넷에 공개하는 순간 투명한 조직운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다.

권한을 제대로 이양하지 않고, 혼자서 모든 책임을 맡으려는 조직문화에 젖어있는 리더가 있는한 수평적인 의사결정구조는 정착되기 힘들다. 특히 자발성과 창조성이 강조되는 시민단체의 일에 있어서 내부관리에만 목숨거는 리더쉽은 적절치 못하다. 심리학자인 다니엘 골드만은 미국 기업의 실패원인 10가지를 이야기하면서 “”CEO들이 의사결정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이유는 직원들이 바른 말 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의사결정에 있어 충분한 정보를 기본으로 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러한 정보들을 충분히 얻을 수 있고,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인터넷이 증대시켰다. 그런데 조직 구성원들로 하여금 바른 말 하기를 꺼리게 만드는 조직문화가 만연해있다고 하면 아무리 많은 정보가 신속하게 제공된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보다 많은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리더가 그러한 정보를 습득하지 못한 조직구성원에게 지시를 내리는 시대는 끝났다. 인터넷 시대에 정보는 위에서 아래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상하좌우 구분없이 흘러다니기 때문이다.

수평적 의사결정구조로 가야하는 이유 : 능력있는 시민운동가 양성

우리나라에서 시민단체 상근운동가로 일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2~3년 경험을 쌓은 상근운동가들이 단지 경저직인 이유 때문에 시민운동을 그만두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는 사회적인 손실이자, 시민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바로 이점이 의사결정구조를 수평적으로 가져가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일 수 있다.

90년대는 스타 시민운동가에 의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직의 성과보다는 조직 리더의 개인적인 역량이나 명망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조직내 특정인이 혼자서 많은 일을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사람이 자리를 비우거나 조직을 떠나도 변함없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을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한명의 잘못된 판단이 조직 전체에 해를 입히는 경우를 목격한 바 있다. 그것은 곧 정보가 한곳으로 집중되고, 피라미드상의 꼭지점에 있는 소수의 몇 명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문제 때문에 발생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수평적인 의사결정구조는 다수의 능력있는 시민운동가를 양성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업무지시에 의해 훈련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의사결정구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훗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토대가 되고, 한 사람의 능력과 지도력에 의해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능력이 서로 창의적으로 결합되어 발전되어가는 조직,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조직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수평적 의사결정구조로 가야하는 이유 : 책임성 부여

수평적 의사결정구조는 시민운동가 개개인에게 운동가로서의 책임을 부여해준다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으로 작용될 것이다. 수직적인 다단게 의사결정 구조의 가장 큰 문제점은 관료적 병리현상이다. 즉, 위에서 지시한 것 이외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마련이고, 이는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조직풍토를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시민운동은 꿈꾸는 사람들의 무대이고, 꿈꾸는 사람들은 가장 창의적이고, 자발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

의사결정구조의 차이로 책임감을 다르게 느낀다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수직적 의사결정구조에서 맨밑에 위치한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최종적인 책임을지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의사결정단계를 거치면서 책임감은 그 단계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수평적 의사결정구조에서는 모든 일은 일차적으로 본인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본인이 속한 조직은 중간직책이 존재하지 않는다. 전체를 총괄하는 일종의 본부장 성격의 사업별 위원장과 사무처 내의 실국장은 있지만 부장이나 부국장 같은 중간직책은 없다. 각각의 사업을 실제 책임지는 팀장은 그에 걸맞는 책임감을 요구받는다. 수평적 의사결정구조는 곧 밑으로의 권한 이양을 의미한다. 의사결정구조는 수평적으로 만들어놓고 실제 권한을 이양하지 않는 것은 말 뿐인 혁신이다. 권한의 이양은 곧 책임의 강화이다.

그러나 시민단체 내에서 수평적 의사결정구조를 가능케 하는 팀제방식은 과도기적인 단계가 아닐까 생각된다. 기업에서야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현존하지만 시민단체에서는 아직 업무성과를 계량화하기 힘들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해서 어떤 징계를 내린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팀제의 어려움이 있다. 최근에 본인이 속한 조직에서 설문조사를 해본 결과 조직문화를 자율과 책임으로 나누었을 때 자율의 정도에 비해 책임의 정도가 매우 낮게 나온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답은 자율과 책임이 비슷한 수준에서 유지되는 것인데 현재로선 그렇지 못한 것이다.

의사결정에서 소외된 사람들

인터넷은 조직 내부의 의사결정과정을 수평적으로 전환시키기도 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그동안 의사결정과정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적 의사결정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역할을 추동시킨 측면이 있다.

현행 입시제도 아래에서 일방적으로 0교시 수업을 강요받고, 머리를 기를 자유조차 제한받았던 이땅의 고등학생들은 인터넷을 통해 이러한 제도의 부당함을 알리고, 제도의 개선을 당당히 요구했다. 만약 인터넷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어른들의 질타와 충고에 머리조차 들지 못하고 부당한 제도 속에서 긴 하루를 보내야 했을 것이다.

앞에서는 주로 조직 내부에서의 수평적인 의사결정구조와 인터넷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보다 중요한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그동안 사회적 의사결정과정으로부터 소외되었던 다수의 사람들이 의사결정과정의 멤버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준 것이 인터넷이었다. 따라서 오래간만에 갖게된 이 참여의 기회를 박탈하지 말자.

공공기관 홈페이지에서 자유게시판을 페쇄하거나 실명제로 전환하는 것은 이런 면에서 볼 때 옳지 못한 일이다. 언제는 참여행정이라고 해서 제발 좀 찾아와달라고 게시판을 열어놓더니 이제는 그게 부담이 되니까 폐쇄한다고 한다. 그네들은 게시판을 열어놓는 것을 전화번호 알려주는 정도로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곳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의견이 의사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매몰차게 벌려야 할 것들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페쇄적이고, 권위적인 것들. 속된 말로 지그들끼리 다 해먹겠다는 발상. 인터넷 시대에 이런 것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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