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을 죽여야 인터넷이 산다.

논객의 개념정리, 뜨지만 망한다… 등등의 이야기.. 나중에 참고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퍼왔다. 출처는 서프라이즈, 글쓴양반은 김동렬. 혹시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이 글에서 언급된 브레이크뉴스와 관련된 내용은 이거다. 브레이크뉴스 http://www.breaknews.com 는 꽤 역사있는 인터넷웹진인 대자보와 서프라이즈로부터 떨어져나온 시대소리가 만나서 만들어내는 인터넷언론인데 이곳이 생긴지는 얼마 안된다. 이곳에서 기사를 하나 썼는데 청와대 박주현 수석이 서프라이지 필진들을 관리해왔다는 기사였다.

사실관계는 박주현 수석하고 서프라이즈 인터넷 필진(이 양반들은 대개 직업이 따로 있는 양반들이다)들하고 만났고, 뭐 두부찌게하고 소주 먹고(2번째 만났을때는 산사춘 먹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2차로 맥주 먹었고, 맥주값은 필진들 중 한명이 냈다고도 하네.. 만난 목적은 국민참여수석실의 통상적인 국민여론수렴의 일환이었다고 함….국참실에서는 각계각층과 만난 100여차례의 만남중 일부에 불과하다고 한다. 서프라이즈는 두부찌게에 공기밥 얻어먹은게 무슨 관리당하는거냐고…. (관리인지, 아닌지는 알아서들 판단하시고) 문제는 조선일보를 포함한 일부 언론에서 브레이크뉴스를 인용하여 청와대가 인터넷 언론 논객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식으로 기사를 썼다는 것이다. 브레이크뉴스 사건은 바로 위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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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브 루스와 노무현
‘논객을 죽여야 인터넷이 산다.’

『야구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모두 그를 싫어했다. 야구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와서 야구장을 점령해 버렸다.』

‘베이브 루스’를 아는가? 그는 전설의 홈런타자이지만 한때는 모두가 그를 싫어했다. 왜? 그는 야구를 재미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야구는 철저하게 투수에게 유리한 경기였다. 투수들은 야구공에 흠집을 내고 손톱으로 찍어서 이상한 마구를 던지기 일쑤였고, 점수는 왜넘들처럼 1루 보내 놓고, 번트 대고 진루타 치고 하는 식이었다.

잘하면 9회말까지 3점을 내서 이기고 2점을 내면 지는 것이 야구였다.

베이브루스가 나타나자 모든 것이 변했다. 결정적으로 야구가 재미없어 졌다. 왜? 베이브 루스 때문에 룰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더 이상 야구공에 흠집을 낼 수 없게 되었고, 침을 바를 수도 없게 되었으며 투수의 꼼수는 금지 되었다.

야구공은 가벼워졌고, 방망이는 개발되었으며 홈런은 장려되었다. 누가 망했을까? 평론가들이 망했다. 야구는 철저하게 투수위주여야 했다. 그래야만 평론가들의 밥벌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홈런타자가 등장하면서부터 평론가와 해설자는 설자리가 없어졌다.

야구장은 미어터졌다. 야구를 아는(?) 사람은 모두 싫어했다. 온갖 마구들은 사라졌고, 꽈배기 투수는 밀려났으며, 관객들은 베이브루스가 남산만한 배를 내밀고 나서기만 하면 마구 환성을 질러댔다. 근사한 살롱 같았던 야구장이 도떼기 시장판으로 변해버렸다.

“우째 이런 일이..”

절딴이다. 오늘로서 야구는 죽었다. 관중석은 넓혀졌고 외야석은 낮아졌으며 전진수비는 사라졌다. 이건 야구도 아니다. 평론가와 해설자는 할일이 없고 무식한(?) 관중들은 팝콘을 먹으며 괴성이나 질러대고 있다. 비극이다.

그들은 야구판을 떠났다. 아무도 환송해주지 않았다. 무엇인가?

프랑스영화가 망한 것은 평론가들 때문이다. 어느 나라이든지 그렇다. 평론가가 설치면 되는 일이 없다. 한때 박노자가 뜬금없는 소리로 월드컵 열기에 찬물을 끼얹으려 했듯이, 그들은 대중의 참여에 저주를 보낸다. 그들은 대중을 경멸하고 대중의 개입을 방해한다.

프랑스에서 대중성 있는 영화는 철저히 외면되었다. 결국 헐리우드만 벌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평론가들이 영화를 죽이는 것이다. 그들은 철저히 반대중적이다. 그들은 대중이 좋아하는 모든 영화에 별 두개나 혹은 별 한개를 준다.

그래서 대중들은 평론가들이 별 셋 이상을 주는 영화를 외면하게 되었다. 아직도 평론가들이 별점을 적게 주는 영화를 고르기 위해 씨네21을 사보는 독자가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평론가를 초대하지 않는 시사회도 생겨났다고 한다.

무엇인가? 논객들이 왜 노무현을 싫어하는지 이만하면 알만한거 아닌가? 평론가를 죽여야 영화가 산다. 해설자를 죽여야 야구가 산다. 논객을 죽여야 인터넷이 산다. 그들은 본질에서 브로커이다. 중간에서 농간을 벌여 대중과 스타의 접점을 차단하고 왜곡한다. 척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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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방식’, ‘뜰 수는 있지만 클 수는 없다’
본질을 봐야지요. ‘친노냐 반노냐’입니다. 브레이크뉴스는 ‘반노에 올인’한 겁니다. 지지율로 논하면 3 : 7 정도로 반노가 시장이 더 크거든요. 그들 입장에서는 현명한 선택입니다. 작은 시장 버리고 큰 시장 찾아가겠다는데 누가 말립니까?(온라인은 그 반대이지만 ^^)

보통은 이런 식으로 망가집니다. 반노는 조중동이 선점하고 독립신문이 먹었는데 거기서 먹다가 흘린 것을 주워먹겠다니 .. 참 암담합니다. 암담해.

세상에 먹고사니즘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양반이죠. 대자보.. 역사가 유구한데 못 먹어서 못 컸습니다. 빤쭈 벗기가미 매달려서 아가리 들이밀고 좀 먹어보겠다는데 그걸 굳이 방해할 정도로 인심 사나운 동네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브레이크 방식, 뜰 수는 있지만 클 수는 없다
독자님들 중에는 저의 이런 글이 뷁을 키워줄 뿐이라는 의견이 많은데.. 키워주어야 합니다. 오마이뉴스도 한동안 맛이 갓다가 지금 정상으로 돌아오는 중인데, 너무 잘나가는 서영석님의 독주에도 간간이 제동을 걸어주어야 합니다.

저는 인터넷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이런걸 많이 연구하는데, 서프의 포탈기능 제고 측면에서 크게 도움이 됩니다. 필진들의 균형감각을 위해서도 악재는 아닙니다.(서프는 악재도 호재로 만드는 특이한 능력을 갖고 있지만)

서프는 처음부터 먹고사니즘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저와 마케터님은 회사원이고 서영석님은 기자출신이고 필진들도 대개 먹는 문제가 해결되어 있습니다. 독자들도 먹는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회사원의 비중이 높습니다.

브레이크의 공세.. 홍보 측면에서는 좋은 시도입니다.

‘선영아 사랑해’ 마이클럽 한방에 떴다가 소식이 없고, 아이러브스쿨에 김영삼사장.. 떴는데도 망했고, 800억 가치설 딴지일보 먹고살기가 간당간당하고.. 도메인값만 70억 코리아닷컴 못먹어서 못크고.. 실정이 이렇습니다. 이동네 먹고살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제가 늘 하는 레파토리지만.. 벤처업계에서는 어떤 업체가 갑자기 경제신문에 광고성기사 반복적으로 띄우면 그 회사 자금이 바닥났다는 증거에요. 펀딩하려고 그짓 하거든요. 마지막 남은 돈으로 기자들에게 술산다는 말입니다.

예컨대 최근 북한에 주패닷컴을 개설해서 말도 많은 훈넷만 해도 뭔가 있는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기사가 조선복권합영회사가 아닌 훈넷의 자가발전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지요. (이런 이야기는 다 까면 안되고.)

무슨 말인가? 경영마인드가 있어야 합니다. 홍보 잘하면 뭐합니까? 훈넷만 해도 홍보에는 귀신이죠. 뒤가 안좋을 뿐. 브레이크는 반노에 올인했는데 다급했나 봅니다. 반노는 둘이죠. 조중동과 민노당.. 전자는 돈이 많지만 뷁을 밀어줄 사람은 아니고 후자는 학생들 위주라서 돈 없고.

무엇인가? 브레이크뉴스는 망해도 논객은 삽니다. 자기 이름 알리는데는 성공하니까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된 논객들이 회사는 망해도 나는 살고봐야겠다는 식의 보도를 한다 말에요. 회사의 신뢰를 실추시켜 가며 자기 이름 알리기에 골몰하거든요.

서프의 장점은 개인보다 회사를 먼저 생각한다는 점입니다.(그렇지 않은 대주주도 한사람 있지만) 왜?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때문이지요. 브레이크뉴스에 권하고 싶습니다. 논객놀음 좋아말고 경영마인드 좀 가져보라고.

독자들은 질투가 많아서 소위 논객이란 것들 안좋아 합니다. 이거 알아야 해요. 기본적으로 인간심리를 알아야 정치를 알 수 있고 정치를 알아야 논객질을 하지요. 영화 황산벌에서 김유신이 계백과 김인문에게 각각 한 말이 생각키웁니다.

“계백 넌 전쟁은 아는데 정치를 몰라”
“김인문 넌 정치는 아는데 전쟁을 몰라”

브레이크.. 정치술은 뛰어난데 독자들을 몰라요. 그 이전에 인간을 몰라요. 거기에는 사람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묻어나지 않아요. 그래선 안되는 거에요. 하여간 계속 그런 식으로 정치해 보세요. 그 끝이 어떻게 될지 나도 궁금하니깐.

논객의 시대는 갔다
논객이 뭡니까? 의견을 내는거죠. 파병문제 부안문제 네이스문제 사패산문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근데 서프에서 조회수가 낮은 글이 이런 글들입니다.(서프 독자들의 조회수 독재는 심각하다. 나만 해도 제목에 파병반대로 쓰면 조회수가 1/3로 준다. 때문에 다른 글 사이에 끼워넣는 방법을 사용한다. 통촉하소서)

독자들은 논객을 싫어한다는 말입니다. 그럼 무엇을 좋아하는가? 칼럼입니다. 칼럼은 무엇인가? 의견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주장이 아니라 담화입니다. 그 이야기 안에는 기승전결이 있고 반전이 있고 역설이 있고 미학적인 아름다움이 있지요.

이것이 ‘배’입니다. 그 배에 화물로, 플러스 알파가 되는 주장과 의견을 싣는 거죠.

무엇인가? 칼럼쟁이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이른바 논객과 다른 점은 ‘주장하기 위해서 주장하는가’ 아니면 ‘읽을거리에 주장을 끼워넣는가’의 차이입니다. 진짜칼럼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30명쯤 있는데 다들 서프에 모여 있습니다.

column의 어원은 로마의 바티칸 광장에 늘어선 열주와 같은 기둥을 의미합니다. 즉 신문의 지면에 가로가 아닌 세로로 구획된 기둥을 말하지요. 무엇인가? 칼럼은 특별히 폐쇄적이고 독립적인 공간을 할당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광장이 아니라 사랑방이지요.

논객은 광장에서 지나가는 사람 붙들고 외치는 자들입니다. 칼럼은 사랑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입니다. 성격이 다르지요. 뉴스가 일간지스타일이라면 논객은 주간지 스타일이고 칼럼은 월간지 스타일입니다.

광장에서 지나가는 사람 붙잡아 세워놓고 주장을 외치는 식의 발언은 칼럼이 아닙니다. 그들은 논객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진짜칼럼은 아닙니다. 진짜 칼럼은 공적이 아니라 사적이며 철저하게 독립적이고 개인적입니다.

광장의 문화가 아니라 사랑방의 문화입니다. 게시판문화가 아니라 블로그문화입니다. 일간지문화가 아니라 월간지 문화입니다. 한마디 휙 던지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뽕빨을 뽑는 것입니다. 어떤 의견이든 그 궁극의 끝을 확인하고 싶은 사람만 찾아오는 공간입니다.

‘논객은 가라’입니다. 왜? 질투도 많은 독자들은 논객들 안좋아하니까요. “칼럼쟁이는 와라!”입니다. 독립적인 공간이라 할 사랑방을 한 채씩 지어놓고 숨겨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라입니다. 이건 성격이 다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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