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전 고등학생들의 집회


그러니까 16년 전의 일이다. 89년, 세상은 전교조 문제로 한창 시끄러울 때였다. 내가 다니던 광주의 한 고등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셨던 선생님 한분은 해직되셨고, 전교조를 어쩔 수 없이 탈퇴하신 선생님들은 살아남은 죄책감에 괴로워하셨고, 전교조 설립에 반대하신 분들은 학생들의 집회참석을 막기 위해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 팔뚝만한 몽둥이를 들고 서성거리셨다.

그때쯤 교실에서는 “광고협”이 결성되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아마도 “참교육실현을위한광주지역고등학생협의회”가 아니었나 싶다. 누가 언제 모여서 그런 조직을 만들었는지에 관한 정보는 없었다. 다만, 추측으로 몇몇 친구들이 거기에 참여하고 있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을 뿐… 한참 후에 사회에 나와서 안 사실이지만 이때 광고협 의장은 강위원이라는 광주 서석고 3학년이던 사람이었다. 그는 97년 한총련 임시의장이었다.

광고협 주최의 광주지역 고등학생 연합집회가 전남대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들렸다. 집회시간은 오후 1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즉, 수업을 제끼고 집회하자는거였다. 교실에서는 나가야 하냐, 말아야 하냐를 두고 설전이 벌어지고, 복도에서는 “뭉치”라는 별명을 가진 체육선생님이 정신봉이라 불리우는 몽둥이를 들고 서성거리고…. (참.. 이 선생님은 대학 미식축구 선수 출신으로 학교에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시는데 오토바이 스피커에서는 항상 뽕짝은 흘러나왔다. ㅋㅋ)

몇몇 친구들이 앞장서서 문밖으로 나갔지만 “뭉치”라는 분의 “너그들 나가기만 해봐라잉… 확 그냥”… 뭐 이런 한마디에 고개 푹 숙이고 돌아오고……. 선생님을 밀치고 나가야 한다는 친구, 나가지 말자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이리저리 섞이며 오고가는 순간 “엉~엉~” 엄청나게 큰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반장…. 우리반 반장이 책상 위에 엎드려 꺽꺽 소리를 내며 울고 있는 것이었다. 등치가 크고 몸이 단단해서 ‘마징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던 그 반장이…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개인적으로 나가고 싶은데 반장이라는 이유로 선생님들에게 불려가 들은 바가 있어서 선동해서 나가지도 못하고.. 뭔가 가슴 속에 울컥하는게 있어서 그렇게 울었다고 한다.

그 울음이 반 아이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장의 울음소리는 수십명 아이들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고, 모두에게 울컥하는 마음을 전달해준 것이다. 이것저것 따질 것이 뭐 있나… 한 아이가 “야… 나가자! 뭉치 밀치고 나가자!”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다른 한 아이가 “그래 나가자… XX, 까짓것 몽둥이로 맞으면 맞는거지 뭐..” 그러니까 이쪽저쪽에서 나가가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갈 수 있었다. 그 무서워하던 뭉치 선생님을 밀치고, 그걸 본 다른 반 아이들도 우르르 나오고… 그리고 교문을 나왔다. 약 50여명의 친구들이 버스 한대에 타고 전남대로 향하고 있었다. 난 버스를 타지 않고 나를 꼬득인 친구의 지시(?)에 따라 걸어서 갔다. 참고로 전남대는 걸어서 20분 거리밖에 안되는 곳이었다. 그 친구의 말인 즉슨, 중간중간에 전경들이 있을텐데 골목 어디어디에 전경들이 있는지 동태를 파악하면서 오라는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태를 파악한다고 해서 핸드폰도 없는데 그걸 누구한테 알려주냐는 말이다. 나중에 집회 장소에 가서 말해준다고 해도, 이미 참석할 친구들은 다 도착한 이후일텐데 말이다. 지금도 만나는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자기도 3학년 선배한테 누구 한명을 지목해서 그 일을 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름대로 친하다고 생각하는 너한테 시킨거라고…

나중에 집회장소에 가서 전경들이 어디어디에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 말해줘야 하는지도 몰랐고,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진 사람도 없었다. 뭐.. 어째튼 집회장소에는 도착했다. 그런데 반 친구들이 한명도 안보이는거다. 모두 버스 타고 먼저 출발했는데…….

나중에 들은 사연은 이렇다… 우리반 친구들이 타던 버스가 중간에 버스정류장도 아닌 곳에 멈추더란다. 봤더니 전경 몇명이 차를 세웠고, 차 앞문을 열고 몽둥이를 치켜들고 들어오더란다. 앞에 있는 애들이 뒤로 물러서면서 “전경이다!”라고 외치는 순간 앞쪽에 있던 모든 애들이 버스 뒤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단 몇초만에 꽉 차있던 버스의 앞쪽이 텅 비어버렸다고 한다….. 얼마나 무서웠으면…… ㅠㅠ

결국 그 버스는 전경의 인도하에 그대로 북부경찰서로 이동하였고, 나중에 온 선생님이 인솔 하에 “뭉치 선생님”을 밀치고 나왔던 용감한 학생들은 다시 학교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광주지역 고등학생들의 첫번째 연합집회에 참석하려던 우리반 아이들은 그렇게 허망하게 교실로 되돌아와 담임선생님의 훈계를 한참 들어야만 했다.

최근에.. 고등학생들의 집회 소식을 들으며 그때 생각이 났다. 인터넷 카페를 정보의 거점으로 삼고,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통해 참여를 독려하고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때 저런 수단들이 있으면 참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신문제로 시작된 집회는 다음주에는 두발제한 폐지라는 주제로까지 확대될 예정인가 보다.

어른들은 그렇게 모이는 고등학생들이 걱정스러운지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참 잘하고 있는 일이다. 자신이 생각하는바를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하고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고, 사회에 알리겠다는데 그게 무슨 큰 죄라고 그렇게들 난리인지…

과거와 같이 실체도 모르는 윗선의 지시를 받아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집회에 참석했던 우리들에 비하면 자발적으로 카페를 개설하고, 정보를 교환하고, 집회를 제안하고, 문자로 참여를 독려하는 지금의 아이들이 훨씬 건전하고 세련되게 사회에 참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머리 길다고 야단맞으면 반항한다고 빡빡 밀고 왔다가 엄청 두드려 맞았던 16년 전의 아이들…… 두발제한 폐지에 동의하는 친구들과 함께 모여 당당하게 자신들의 의사를 표시하는 지금의 아이들…… 16년 전에 그렇게 반항했던 친구들이 지금 잘 살고 있듯이 지금의 아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아이들의 행동을 문제라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문제가 바로 우리가 풀어내야 할 숙제가 아닐런지………쩝…


“16년 전 고등학생들의 집회”에 대한 3 댓글

  1. 그때.. 나는 전교조 선생님들 뭐라하고 그랬던거 같은데.. 갑자기 고해성사하도 해얄 것 같은 느낌이 드네. 나는 선생님들이 노동자라 하는게 왠지 싫었었거든.. 근데 지금은 어떠냐고? 그때는 학생입장에서 선생님을 바라봤지만 지금은 그냥 … 나랑 같이 늙어가는 사람들로 보여서. 이게 장단점이 있단 말이쥐. 어릴 적 생각의 이면에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대한 동경과 존경심이 있었고, 지금은 선생이라는 직업에 대한 편견이 없어진거지..

  2. 맞다 강위원…. 그 양반땜에 고등학생 주제에 교장실 점거까지 했지 …. 고집센사람의 특성 3가지를 골고루 다 갖췄던…. 나중에 한총련의장이 됐고 한총련을 대표로 100분토론도 참가하는걸 봤다. 지금은 어디서 뭘하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소문이 들려오지는 않아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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