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방식과 대중에 대한 믿음

인터넷에는 쓰레기 정보들이 넘쳐난다는 말이 있었다. 과거에 분명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 신문기자가 IT전문가에게 물었다. “인터넷 중독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터넷 중독요? 인터넷 중독이란 말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 중독이나 포르노중독이면 모를까? 인터넷 중독이 맞다면 우리는 이미 TV에 중독되어 있고, 문자에 중독되어 있다고 봐야겠죠”

새로운 것들은 항상 기성 세대들와 엘리트들의 염려와 걱정을 동반한다. 혹시나 무식한 대중들이 쓰레기 정보에 현혹될까 걱정하고, 인터넷에 빠져 허우적될까봐 염려한다. 정보를 독점함으로써 이득을 얻었던 사람들은 인터넷에 정보가 너무 ‘넘쳐난다’고 했고, 대중은 정보가 자유롭게 ‘흘러다닌다’고 했다. 정보가 넘쳐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정보를 고정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으로 사고했고, 대중들은 정보를 자유롭게 공유해야 할 생명체로 생각했다. 이 사고의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쓰레기 정보가 넘쳐난다고 말했던 사람들이 말한 바대로 ‘쓰레기 정보’들은 사실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뱀장어가 무성생식 동물이며 강바닥 진흙 속에서 뱀과 짝짓기하여 나왔다고 믿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인간이 비버의 고환을 의학적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비버들이 알고 있다고 믿었다.(부의 미래 – p169-170)

그 시대에 확실하다고 믿었던 이론들은 다른 이론에 의해 폐기되기 일쑤였고, 학자들의 예측은 아주 자주 빗나갔다. 그러나 결국엔 폐기된 정보들과 잘못된 예측들이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들이 탄생했다. 세상에 고스란히 100% 버려야 할 쓰레기 정보는 없다. 음식물 쓰레기도 재활용하는 마당에!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식과 정보의 속도 역시 빨라지고 있다. 책이 출간되는 순간 그 책에 나온 통계자료들은 이미 구닥다리 신세가 된다. 어떤 지식과 정보를 믿을 것인가? 그리고 누구를 신뢰할 것인가?

엘리트들은 대중을 신뢰하지 않았다. 대중은 계몽시키고 앞에서 이끌어줘야 할 다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충분히 이해한다. 정보는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존재했고, 그 정보를 가진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또 다른 사람들 범위 내에서만 소통되었다.

학교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힘을 가진 모든 세력들이 정보를 제한적으로만 풀어놨다. 정부, 기업, 언론 . . . .  자료집과 유인물, 대규모 집회가 가능했던 것은 정보가 그 안에서 흘러 다녔기 때문이다. 우리는 군중집회에 나가서 여러 조직들이 뿌리는 유인물을 통해 정세를 이해하고, 선동가들의 감동적인 연설에 고무되었다. 그 연설에 우리가 지금껏 몰랐던 새로운 정보가 담겨져 있다면 감동은 배가되었다. 집회와 시위의 장소는 정보가 소통되는 공간이었다. 정보가 소통됨으로써 사람들과의 관계가 생성되고 운동이 조직되었다. 미디어가 독점되는 세상에서 집회라는 장소는 훌륭한 미디어 세상이었던 것이다.

인터넷이 모든걸 바꾸어놓았다. 정보의 소통 방식을 바꾸었다. 더 이상 엘리트들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찾고자 하는 정보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우리가 범접하지 못하는 고급(?)정보들은 통제되기 마련이지만 그런 것이 없더라도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과 관계를 맺고 스스로 정보를 간추리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제 우리 스스로 미디어를 소유하게 되었다. 블로그로 대표되는 1인 미디어, 위키피디아로 대표되는 집단창작의 실험들…. 소수에게 집중되었던 미디어는 이제 권력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다.

정보의 소통 방식이 바뀌고 사람과의 소통 관계가 변화하고 있는데 소통이 기본 중의 기본인 ‘운동’도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소통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대중에 대한 신뢰가 깔리지 않는다면 그 소통은 진실을 가장한 거짓일 뿐이다. 대중을 가르치려 하거나 계몽하려고 하지 말고 대중과 호흡을 해야 한다.

남들보다 많은 정보를 소유하려는 ‘욕심 많은 엘리트’가 되지 말고 정보를 공유하고 나누는 ‘착한 엘리트’가 되어야 한다. 정보를 독점하거나 그렇게 소유한 정보로 남을 가르치거나 계몽하려고 하는 자가 엘리트로 대접받는 사회는 비정상적인 사회다.

소통의 방식과 정보와 미디어의 관계의 변화,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운동의 변화… 이런 문제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몇가지 사례들을 있다.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런 사례들 속에서 우리가 짚어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사례연구나 토론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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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방식과 대중에 대한 믿음”에 대한 답글 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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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그인하고 나서 자기 에피소드의 제목 밑에 보면 관련글(트랙백)이라는게 있습니다. 그걸 클릭하면 트랙백 주소를 넣을 수 있습니다. 상대편의 트랙백 주소는 그 사람의 블로그에서 복사하면 됩니다. 대부분 글 밑에 트랙백 주소가 걸려 있습니다.

    2. 트랙백 자체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예전에 에피소드에 올려진 글이 있는데요.. 아래 내용입니다. 참고하세요.^^

      1. 트랙백이란?

      트랙백(trackback)은 특정 글에 대하여 관련된 글을 쓴 경우 처음의 글에 그 내용을 보내어 알려주는 기능으로, 관련글, 엮인글, 먼댓글, 걸린글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기능은 미국에서 제작된 유명한 블로그 툴인 무버블타입(MovableType; MT)에서 공개규격으로 처음 적용되었고, 국내에서는 가입형블로그 서비스업체인 이글루스에서 처음 도입했다지요. 최근 블로그 사용율이 점차 높아지면서 트랙백에 대한 인식도 커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2. 이를테면 이런 것이지요.

      먼저, 누군가 특정 블로그에서 어떤 글을 읽었습니다. 읽고보니 그 글을 칭찬하거나, 보충하거나, 혹은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내용이 있습니다. 그런데 덧글을 달자니 글이 너무 길어질 모양이고, 또 자신의 블로그에도 그 내용을 독립된 하나의 글로 올려두고 싶습니다. 그럴때는 우선 자신의 블로그에 관련된 내용의 글을 올린 후, 처음 읽었던 글에 표시되어 있는 트랙백 주소를 복사해와서 자신이 올린 글의 트랙백 창에 그 주소를 입력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글에는 입력한 주소의 흔적이 남고, 처음 읽었던 글에는 마치 덧글처럼 자신이 올린 글의 제목, 내용일부, 링크가 기록됩니다. 처음 글을 올렸던 사람은 그 기록을 보고 관련된 글을 쓴 자신의 블로그에 와서 글을 읽을 수 있게 됩니다.

      3. 트랙백으로 할 수 있는 일

      우선, 블로그에서 여러 블로거들과 하나의 주제를 갖고 함께 토론하거나 질문과 답을 주고 받을 수 있습니다. 간단한 의견은 덧글로, 자세한 이야기는 트랙백으로 나누는 겁니다. 내 블로그에 내가 올린 글들 중에서도 연결된 글에 대해서는 트랙백을 걸어주어 읽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순서를 따라 읽도록 안내할 수 있습니다. 글의 성격을 나눠주는 카테고리와는 또 다른 기능입니다.

      다른 포털사이트나 신문사의 블로그, 또는 설치형 블로그 등 트랙백을 지원하는 곳에 올라오는 글과도 위와 마찬가지로 트랙백을 주고받으면서 대화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꼭 환경정의 너른마당 가족이 아니더라도, 또 내가 다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지 않더라도 소통이 가능한 것입니다.

  1. 다른 건 다 동의하는데, ‘계몽’이 필요없다고 보는 건 좀.. 사상과 지식, 정보는 다 각각 다른 층위의 문제고, 계몽은 정보나 지식보다는 사상과 철학의 문제인 듯. 사실은 정보를 전달하면서도 사상을 계몽하는 걸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긴 하지만, 더 훌륭한 철학과 사상은 여전히 필요한 것 아닐까요?

    난 훌륭한 철학과 사상, 훌륭한 인생, 훌륭한 예술작품, 훌륭한 책들이 사람들에게 이해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1.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계몽이란 단어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깊고 넓게 보면 ….

      그냥 여기서 계몽이라는 단어를 쓴건 흔히 쉽게 생각할때 어리석고 무식한 사람을 깨우쳐 준다는 사전적 의미로 봐서 그렇다는거였거든요… 현실적으로 비춰지는 모습들에 대한 단어로서요…

      훌륭한 사상, 인생, 예술, 책들이 사람들에게 이해되는 방식이 흔히 우리가 이해하는 ‘계몽’이라는 단어의 뜻이 주는 방식으로 처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로 받아들여주면 좋을 듯 ^^

    2. 근데 자전거 사고는 괜찮은거요? 소식 들었는데…. 자전거 보험이라도 들어야지…원..

    3. 그러게요. 계몽이란게 언제부터 그렇게 일방적인 과정이 되어버렸을까요? 계몽이라는 것도 처음 시작할 때는 늘 마음들이 오가는 과정이었을텐데요.

      자전거는 보험이 거의 없어요. 그냥 생명보험 같은 거 들어야죠 뭐. 그나저나 피해자일 때는 그나마 괜찮은데, 가해자가 되었을 때는 상당히 심각해지죠. 자동차처럼 종합보험이 없으니 보험사 도움 없이 직접 합의를 봐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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