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의 세가지 생각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인터넷 보다가, 책 보다가, 신문보다가, 잠잘려고 누웠다가
생겨난 세가지 생각이다.

1. 서른의 당신에게

<흔들리며 피는 꽃>
도종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어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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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가는 길…
그리 늦지 않은 시간이라 가서 무얼할까 생각하다가
책이나 한권 사볼까?
서른은 아니지만 ^^
강금실의 “서른의 당신에게”라는 책을 샀다.
원래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직접 쓴 글로 본 강금실은 훨씬 매력적이었다.
글 참 잘 쓴다.

아직 절반도 읽지 못했지만
결국 강금실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도종환의 저 시에 담겨있지 않을까?

2. 선수가 필요하다.

현장의 경험을 살려 공부를 더해서
나중에 다시 현장으로 돌아와
당신이 몸과 마음을 바쳐서 헌신해온
이 현장을 좀더 아름다운 곳으로 바꿔달라고
기대했던 사람들이
세상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핑계로
먼발치에 앉아 현장을 들여다보면서
그냥 평론하고 코치하려고만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평론가나 코치, 감독이 아니잖아.
그라운드에서 뛸 선수가 필요한거지.

텅빈 그라운드에 누가 열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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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쁘다와 추하다

어제 아침에 출근하면서 펼쳐든 경향신문에 [경향과의 만남]이라는 코너에서
“그날이 오면” 작곡가  문승현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사회적 진보가 여전히 문화적 진보로 발전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전두환은 나쁘다가 아니라 전두환은 추하다라는 말이
훨씬 설득력있는 커뮤니케이션 화법이라는 말… 등등…
괜찮은 인터뷰 기사였다.

“……….“80년대가 ‘선악(善惡)’을 가치기준으로 삼는 시대였다면 이제는 ‘미추(美醜)’가 중심이 돼야 합니다. ‘전두환이 나쁘다’는 말보다는 ‘전두환은 추하다’고 말하는 게 훨씬 설득력 있는 커뮤니케이션 화법이 됐다는 거예요. 80년대에는 도덕적 정당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지만, 가치다원화시대에는 심미적, 문화적으로 다가가야 해요. 요즘 보세요. 연예인들이 안하는 게 없죠. 무슨 홍보대사, 각종 행사에 다 연예인들이 나오죠. 여론을 주도하고 생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그만큼 매력이 없고 설득력이 떨어지니까 자꾸 연예인들이 공공커뮤니케이션을 잠식해오는 거예요. 왜냐하면,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은 아직도 정치과잉에 사로잡혀 있거든요. ‘문화’라고 하면 대중문화나 오락 이외에는 머릿속에 그려지지도 않아요. 사회적 진보가 문화적 진보로 이어지지 않은 거죠.”…..”

어제와 오늘의 세가지 생각”에 대한 답글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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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ㅎㅎ.. 나도 그 책 읽었는데.. 서른의 당신에게..
    수필집 사서 별로 성공한 적이 없어, 적잖이 걱정했는데,
    아신의 평가대로… 괜찮았다. 살며시 미소지을 부분도 많았고,
    특히나, 글을 잘쓴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살갑다는 생각.. 그여자에 대해 너무 잘 알게된것 같은 생각…
    거짓이 아닐꺼 같은.. 진실일꺼 같은 생각..

    서른이 훌쩍 넘어버린 나에게도 그녀의 메시지는 유효한가…
    문득 맨 마지막에 장정일에 대한 변론을 왜 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다.
    다읽지 않은 아신을 위하여,, 질문만 남긴다..

    너는 왜 그랬다고 생각하니???

    1. 장정일에 대한 변론도 읽었다.
      내가 어찌 그 뜻을 알겠냐마는 ^^

      나름 그것도 강금실이 추구하는 가치와 부합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자유라는 것은 글 전체에 흐르는 하나의 가치이고, 전체에 의해 개인을 억압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나 경험에 따른 슬픔 같은 것들도 묻어나잖아. 그리고 한편으로는 장정일을 구속한 고상하고 점잖은 양반들에 대한 약간의 거부감일 수도 있을거고.

      국가보안법으로 사상의 자유를 억압당하고, 고통당했던 사람들과 자신의 쓴 작품을 외설이라고 낙인당하고 구속까지 되었던 장정일… 같은거 아닐랑가?

      왜 넣었을까?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물어보니까 한번 생각을 해보니 그런가 아닐까 싶다. 넌 왜 넣은거 같은데?

  2. 금실언니의 이 책 나왔을때 서점에서 보고 정말 혹시나, 만에하나… 대선이 다가오는 민감한 시기에 어떻게 비치려나 하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었어요. 그리고 이상하게도 책장을 넘길수록 엠디 처럼 그 여자에 대해 너무 잘 알게 될 것만 같아 도중에 덮어버렸답니다. 우리(!) 금실언니… 그냥 멀리서 좋아하고만 싶은 마음.. 헤헷.

    ps. 도정환이 뭡니까. ㅎㅎ

  3. 나는.. 강금실의 책 전체에 흐르는 따뜻하면서도 인간적인 면.. 위에는.. 그녀의 고상한 환경, 한 시대를 탑클라스로 살아온 사람으로써의 여유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 일종의 부러움 내지는 선망같은 느낌을 주었을 정도로.. 그녀가 풍부한 경험과 생각을 가질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너무나 수준높은 사회의 지성들과 더불어 지인으로써 살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누구나 그런상황이라고 그런 식의 사고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지마는, 본인의 타고난 정의감과 의협심, 혹은 따뜻한 인간애가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마는,, 어쩌면 많은 그러한 사람들이 그저그렇게 인생을 살다 가게되는 것이 현실인 만큼… 그위에 좋은 환경, 좋은 벗들이라는 보너스는 너무나 값진 것이 되어 버렸다는….

    강금실이 맨 마지막에 장정일에 대한 변론을 실은 것은,, 어쩌면 자신의 이러한 윤택함을 스스로 알고, 때로는 자신의 한계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마지막에 소위 ‘험한’ 이야기를 쓰고, 그것을 변론할 수 있었던 사람 또한 자신임을 세상에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그것을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라, 만일 그러하다면, 그 속마음이 너무도 공감가기에 혼자 ‘흠..’하고 오랫동안 생각했었다.. 누구나, ‘자신’이라는 사람을 얘기하고자 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도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구석에 몰려있는 듯한 인상을 받을 것 같다. 실은 그야말로 다채롭고 다각적인 것이 사람인데 말이다. 아마, 내가 만일 내 자서전적인 글을 쓴다면, 난 미처버릴것 같다. 답답해서.. 표현되지 않는 나에 대해… 끊임없이 글속에 부족함을 느낄것 같다..

    그런 마음의 발로 아니었을까. 이렇게나마 자신의 폭을 좀더 넗게 알리고 싶었던 강금실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고 싶었다. 알고 있다고… 누구나 그렇다고 말이다…

    내 해석이 맞을지는 자뭇 의문스럽구나..

    틀릴 확률이 더 많겠다.

    ㅎㅎ.. 잘자라. 늦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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