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 짱돌을 들어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후배 한명이 꼭 읽어볼 것을 권한다고 선물한 책이다. (아마도 20대인 그 후배는 나로 하여금 자기 세대인 20대에 대한 관심을 좀 가져보라는 질책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라는 반성을 하면서 책을 보고 있다)

우석훈 박사가 쓴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88만원 세대>라는 책인데 아직 절반도 채 읽지 못한 상태에서 정확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지금의 30대와 40대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10대와 20대로 살아가는 친구들에게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시기가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 우리가 사는 현재의 삶이 다음 세대의 것들을 빌려서 살고 있는 것이라는데 동의한다면 그 책임은 지금 막 태어난 아이들, 이제 곧 태어날지도 모를 아이들한테까지 전달되어야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래서 무엇을 할건데?라는 질문에는 아직 답을 못하겠다. 다만, 너희들은 아직 어리니까 우리가 해결해주께라는 사고방식은 버려야겠지…… 그러면 책 표지에 있는 것처럼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이게 답일까?

책 다 읽고 생각해보자.

<ps> 마침 연관된 글 하나….푸른소의 <청년에 대해 고민해보다>

지난 연말에 경향신문의 송년 방담에 초정된 일이 있었다. 경향신문사에서 ‘386이 말하는 386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주제로 송년 방담을 갖고 386세대의 공과와 향후 역할에 대해 토론을 하는 자리였다. 그 자리에 함께 초청된 사람은 이인영 열린우리당 의원, 오경훈 한나라당 전 의원, 조승수 전 민노당 전 의원,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 등이었다.1) 필자를 포함한 참석자 5명은 모두 81학번에서 84학번에 이르는 학생 운동권 출신들이다. 3명은 전·현직국회의원이고 두 명은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필자는 ‘30대·80년대학번·60년대생’을 뜻하는 조어였던 ‘386세대’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80년대를 살았던 사람이 대학생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80년대 초 만하더라도 대학을 입학하는 것 자체가 특권이었다. 그들이 평가 받을 수 있는 것은 시대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이러한 기득권을 버리고 민중과 함께 민주화운동에 헌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국회의원이 되거나 청와대에 들어간 일부 386들이 전체 ‘386세대’를 대표하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훈장처럼 민주화 운동의 경력을 정치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사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해 더 이상 ‘386세대’가 미래의 가치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를 안 하고 시민운동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이러한 평가에 자유롭지는 않다. 어느 위치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고 있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학생운동을 할 때나 현장(공장)에 들어가 노동운동을 할 때는 몸은 힘들었지만 ‘청년의 열정’이 있었다. ‘민주화’와 ‘민중해방’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필자가 그것을 실현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이러한 목표와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해고와 수배와 구속을 감수할 수 있었다. 운동은 조직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욕구는 조직의 이익을 위해 억제되는 것이 당연했다. 방담에 참여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모순(천민자본주의, 분단과 냉전 등)을 인식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많은 80년대의 20대가 그러한 삶을 살았다. 이러한 삶은 당시의 시대정신하고도 일치했다.

그리고 90년대 초반부터 많은 동료들이 운동의 현장을 떠났다. 필자도 90년도 중반부터 노동운동을 정리하고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의 현장을 떠난 이유에 대해 ‘사회주의권의 몰락’, ‘민주화의 진전’ 등 외부 환경의 변화나 80년대 민주화에 헌신 하던 386세대가 90년대 30대가 되면서 개인적으로 다른 모색이 필요했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80년대의 20대 청년이 90년대에는 30대가 되면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나면서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해야 됐다.

필자도 별반 다르지 않은 이유로 노동운동을 정리했다. 87년 6월 항쟁을 거치고 7-8월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노동운동에는 새로운 리더십이 등장했다. 현재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인 단병호의원이나 권영길의원이 그렇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에 노동현장에 들어간 ‘학출(학생출신 노동자)’들은 더 이상 노동운동의 리더가 아니라 실무자가 되었다. 더 이상 노동운동에서 내가 할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필자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운동’이 이라는 생각을 갖고 시민운동을 시작했다. 당시의 시민단체는 약간의 고정적인 월급을 주었다. 84년 학교를 떠난 후 공장에 다니던 3년을 빼고는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는 필자에게는 큰돈이었다. 이렇게 30대 중반에 시민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계속>


청년에 대해 고민해보다.
http://episode.or.kr/ohky/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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