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무효표로 새로운 ‘정치 주권’을 되찾자

이번 대선에서 무효표를 던지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

무효표가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효표를 던진 이후의 시간들이 더 중요할 것 같다.
자신이 무효표를 던졌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필요가 있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내가 바라는 정치는, 내가 바라는 우리 공동체의 삶과 미래는
무엇인지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대의 정치를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틀 자체를 바뀌기 위해서는
일상 속에서 시민의 정치가 발현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대선에서 무효표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대선 이후에도 정치 구조를 바꾸는게 아니라 우리의 정치 그 자체를
그들만의 정치가 아니라 우리들만의 정치로 바꿀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다고만 하면 ….

어떤가….
해볼만한 가치가 있을까?

오마이뉴스에 올라온 글인데, 아직 하승우님의 블로그에는 이 글이 올라오지 않아서 그냥 퍼왔다. 블로그에 글이 올라오면 링크를 걸기로 하고.



무효표로 새로운 ‘정치 주권’을 되찾자

하승우 지행네트워크 연구원 / http://www.jihaeng.net

민주적이라고 불리는 나라의 국민들도 4년, 또는 5년에 한번씩만 자유롭다. 그 자유의 시간은 선거라고 불린다. 그 때가 돌아오면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척하고 사람들의 손을 잡으며 지지를 호소한다. 그들은 시장통에 모습을 드러내고 전철을 타며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들은 현명한 국민들을 칭송하며 자신들을 지지해 달라고 살살거리며 매달린다. 자신들은 훌륭한 머슴이 될 거라고 다짐한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어떻게 되나? 정치인들은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도움을 호소하는 손길을 냉정하게 뿌리친다. 선거가 끝나면 시장통에서도, 전철에서도, 거리에서도 그들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그 때가 지나면 정치인들은 무지한 국민들을 따르지 않겠다며 자신의 소신과 결단을 강조한다. 선거가 끝나면 머슴들은 주인으로 탈바꿈하고, 주인들은 머슴으로 전락한다.


그래서 우리는 4년이나 5년에 한번씩 선거 때에만 이 나라의 주인이 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조항은 그야말로 법에나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법전 속의 주인들이 실제 현실에서는 머슴들인데, 선거는 그런 현실을 감추는 좋은 속임수이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외침이 언제나 현실에서 좌절을 경험하는 이유는 우리가 주인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 아무리 훌륭한 주인을 뽑는다 한들, 주인은 주인이기에 결코 머슴의 말을 그대로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는 주인들의 잔치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될 뿐이다.


우리는 주권자인가?


우리의 정치에는 희망이 없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정치인들이 활동하는 정치판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빈부격차, 늘어가는 비정규직, 파괴되는 생태, 꿈을 상실한 청년실업, 학벌사회 등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이 쌓여있는데, 이런 과제들에 대한 매력적인 해결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편에서는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허황되고 야만적인 주장이, 다른 한편에서는 파이만 나누면 된다는 당위적인 주장이 있을 뿐이다.


과거 군사정권 때는 돈이나 물건을 돌리며 표를 사는 불법 선거가 판을 쳤기 때문에 공정하게 선거를 치르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를 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선거가 민주주의를 ‘자동적으로’ 보장한다고 착각했다. 선거만 별 무리 없이 치르면 민주주의가 자연스레 확립되리라 기대했다. 허나 우리 현실은 그런 믿음을 배반해 왔다.


선거에는 민주적이지 않은 요소가 많다. 돈 없고 힘 없는 사람들이 선거에 나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아마 후보등록에 필요한 기탁금조차 마련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충실히 대변할 사람을 찾기도 어렵다. 지금도 각종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정치인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해 주리라 기대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그래서 내 맘에 꼭 드는 후보나 정책이 없는데도 울며 겨자먹기로,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 그럴싸한 사람들에게 투표해 왔다. 이런 과정을 민주적이라 얘기할 수 있을까?


더구나 선거에는 2등이 없다. 승자가 모든 걸 혼자 먹는 사회에서는 극단적인 생존경쟁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자신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을 가진 위험한 세력이고, 내 얘기만이 옳고 선하며 다른 얘기는 틀리고 악이다. 세상에 다양한 색깔이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의견들이 서로 어우러지며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선거에서는 그런 논의가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래도 선거가 민주적일까?


선거 때가 되면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은 자신을 믿고 지지해 달라고 얘기할 뿐 아래로 내려와서 멍든 사람들의 가슴을 껴안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명쾌한 답이나 해결책을 주지 못해도 그냥 껴안고 얘기만 서로 도란도란 나눠주면 그것만으로도 응어리진 한이 좀 풀릴 텐데, 그들의 눈에는 사람이 표로 보일 뿐이다.


투표로 나라를 바꾸자? 무효표는 어때?


2007년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이미 재미없는 선거라는 점은 이미 분명해졌고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해 누구를 찍을 것인가라는 수동적인 결단만이 남아 있다. 더구나 사표(死票,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다)를 고려해 전략적으로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라는 쓸모없는 고민도 해야 하고, 고민이 귀찮아 투표를 하지 않을 경우 정치적으로 무관심하다는 비난을 받을 각오도 해야 한다.


우리에게 다른 선택의 기회는 없을까? 1863년 2월 프랑스의 아나키스트 프루동은 투표거부운동, 즉 기권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프루동은 독재체제와 영합한 언론을 비판했고, 인민의 대표들이 정부의 활동을 비판할 수 없는 거짓 민주주의의 허구성을 폭로했으며, 보통선거권이라는 가상의 주권이 사실상 독재자에 대한 충성의 맹세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 거부운동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지만 다양한 구성원들을 묶을 고리가 없어서 선거 이후에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기권은 투표하지 않아서 정치에 대한 불신을 드러낼 수 있지만 선거 이후의 다양한 정치활동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기권이라는 정치행위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다양한 논의를 자극하고 사람들의 만남과 네트워크를 구성할 요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적인 기권은 정치에 관심이 없어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의 비정치적 기권과 구분되어 계산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무효표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기권은 계산되지 않지만 무효표는 계산되기 때문에, 그것은 정치적 의지로 표현될 수 있다(대통령선거에는 따로 찍을 비례대표제 용지가 없으니 혼동해서 잘못 투표했다는 오해도 피할 수 있다). 따라서 무효표는 정치적인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 즉 내가 마음에 드는 후보나 정책이 없다면, 억지로 다른 누구에게 표를 몰아주는 게 아니라 내 맘에 드는 사람이나 정책이 나올 때까지 무효표를 만들면 된다. 소비자 불매운동을 하듯이 무효표 운동을 벌이면 어떨까?


정치적인 압력 ‘무효표’를 조직하자


우리가 대안적인 상상력을 펼치며 직접행동하면 어떨까? 무능한 정치인들이 내 얘기나 욕구를 대변해 주리라는 헛된 희망을 버리고 내가 직접 원하는 세상, 원하는 삶에 관해 얘기하면 어떨까? 요즘 유행하는 UCC(User-created Contents)처럼 CCU(Citizen-created Contents)를 유행시키면 어떨까?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투표소에 가서 내 정치적 의지를 무효표로 드러내자(아예 기표를 하지 않거나 그렇게 간절히 원하니 그들 모두에게 표를 찍어주자) 우리가 원하는 내용을 정책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단 한 표도 받을 수 없음을 그들이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주자.


그것으로 그치지 말고 내 블로그나 카페에 내가 원하는 내용을 쓰자. 예를 들어, 지리산에 댐이나 골프장을 만들지 말자, 제주도 군사기지를 반대한다, 한미 FTA 비준을 반대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자, 청년실업을 막고 미래세대의 꿈을 키울 정책을 마련해라 등등. 그리고 이런 얘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트랙백을 걸고 그 내용에 자신이 요구하는 내용을 더하자. 이렇게 각자가 원하는 정책이 트랙백으로 서로 연결되어 인터넷을 타고 퍼져나가면 그들이 욕망하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트랙백을 따라가며 나와 비슷한 소망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그 만남을 통해 우리는 또 다른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이제는 대의정치를 개조하는 게 아니라 그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 만일 그렇게 사람들의 소망이 모인다면 내년의 절망적인 정치판에 희망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소망이 모일수록 그 힘은 커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선거에서 누구를 당선시킬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고, 오히려 선거 자체를 괄호 속에 집어넣으며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요구사항을 밝히고 그것에 관한 대책을 세우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 무효표는 무능한 정치판을 심판하고 시민의 능동성을 부활시킬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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