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씨앗


작년 7월 16일간 ‘희망투어’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돌았다. (사무실에서는 꽤 긴 시간 동안 논란이 있긴 했지만.^^) 오늘 아침 문득 16일간의 여정을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복귀한 후에 쓴 글이 생각났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한걸까?

16일간의 전국일주를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희망이란 원래부터 있는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없는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그것은 지상의 길과 같다. 원래 지상에는 길이 없다. 걷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말들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희망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마음으로 길을 떠납니다. 희망은 찾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것이라 했고, 여러 사람이 걸으면 없던 길도 생겨난다고 했기 때문에…… 시민운동이 꿈꾸는 것은 좋은 권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나누고 힘을 합치고 다시 시작하면 늦지 않겠지요.

희망버스는 희망을 찾았을가요?
투어 기간 중에 만나뵌 분들의 말씀으로 희망에 관한 이야기를 대신하겠습니다.


“뭔 희망을 찾으러 다니쇼. 인류가 수천년 동안 희망을 찾는다고 여기까지 왔는데 희망이 있습니까? 희망이란건 없어요. 자기 있는 자리에서 만들면 그게 희망이지…. 혹시 희망을 찾거들랑 나도 하나 주쇼. [……] 희망이 어디 있는거 같아요? 희망이라는 것은 자기 항문 밑에 있는겁니다.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 방바닥 아래에 희망이 있는게지. 괜힌 헛수고 하지 말고 그냥 소주나 한잔 하고 가세요”


깃발에 대하여

깃발을 들어라. 투어 기간 중 자주 등장했던 단어 중의 하나입니다.

깃발은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휘날리는 바람의 흔적이기도 했고, 운동이 나아가야 할 곳을 제시해주는 나침판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깃발들을 무수히 많이 들어왔습니다. 깃발이 낡아지면 새로운 깃발로 교체하고, 부러진 깃발을 수리하면서 우리는 계속 깃발을 들어왔습니다.

어느덧 주위를 보니 우리가 들었던 수많은 깃발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깃발 주위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깃발만 외롭게 덩그라니 남겨져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길을 떠난 이유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깃발을 들고 다니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돌아올 때 멋진 깃발 하나 들고오라고도 했지만, 투어팀은 서울을 출발할때나 서울로 돌아올때나 작은 깃발 하나 들고 오지 못했습니다.

깃발을 들고 가지도, 들고 오지도 못한 이유요?
투어 기간 중에 만나뵌 분들의 말씀을 종합하여 그 이유를 대신할까 합니다.

“지금 시대에는 운동을 한다고 깃발을 먼저 들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 속에서 깃발을 들고 내가 가는 길이 맞다고 주장하면 사람들이 호응해줄까요? 절대 그렇지 않죠. 누구 깃발이 새것이고, 누구 깃발이 더 높고, 누구 깃발이 더 세련된 것인지만 남게 됩니다. 도토리 키재기일 뿐이죠. 깃발을 함께 만들고 함께 들고 다닐 사람을 찾는 것이 우선인데 요즘은 그걸 하지 않는거 같아요. 깃발을 들기 전까지의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깃발은 나중에 언제든지 들 수 있거든요.”

운동을 하는 사람은

결국 사람의 문제였습니다.

어딜 가나 사람 이야기입니다. 사람에 대한 존경과 칭찬이 있으면서 동시에 미움과 욕도 있었습니다. 그 마음이 때로는 내부에서 흐르기도 하고, 외부로 분출되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소통하지 못함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가 결국은 또 다른 문제들을 발생시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 관계 때문에 힘들어합니다. 그렇지만 역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 때문에 웃고 행복해합니다. 시민운동이 즐겁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내편, 네편 구분없이 즐겁게 생활한다는 사실입니다. 굳이 운동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일상의 생활이 곧 운동입니다. 그것은 달리 표현하면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것일겁니다.

운동하는 사람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십니다. 역시 그분들의 이야기로 대신합니다.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좋은 사람이 되는게 더 어려운건 다 아시지요. 운동은 똑똑한 사람이 하는게 아니라 좋은 사람이 잘 하는 겁니다. 사람들 속에서 신뢰가 생길 때… 저 친구가 하는거라면 믿어볼만 하다는 최소한의 신뢰감이 생기면 운동은 이곳저곳 자연스럽게 흘러다닙니다.”

“좋은 사람이 뭡니까. 착한 사람에게 칭찬받고 나쁜 사람에게는 욕얻어 먹는 사람입니다. 힘들면서도 운동을 지속하는 힘은 어디서 나오나면요….. 식당에서 시장에서 만나는 아주머니들이 좋은 일 한다고 격려해줄 때 나옵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아야죠. 괜히 높으신 분들한테 칭찬받을려고 하지 말구요.”

천천히, 그러나 끈기있게

좋은 권력을 만드는 것이 운동의 목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좋은 권력이 아니라 좋은 세상을!

권력을 만드는 것은 어느 순간에 도달 가능한 목표일 수 있지만,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은 끝이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끈기와 인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투어 기간 동안 참 본받고 싶었던 운동과 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최소 5년에서 10년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주변 사람들과 묵묵히 해왔던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당장 오늘 내일 이것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때로는 성과지상주의를 낳고, 운동끼리 불필요한 경쟁을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운동가가 아니라 한 조직의 일원으로서만 남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세상에서 천천히 운동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겁니다. 천천히 한다는 것은 단순한 여유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길이 의미있는 길인지를 ‘함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혼자 하지 않고 여러 사람과 같이 하려고 하기 때문에 느리게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풀뿌리는 느리게 질주한다는 말에는 속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까지 담겨져 있었습니다.

16일간의 전국 투어 이후에 돌아온 사무실에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무겁지는 않습니다. 쌓여 있는 일들은 “일거리”가 아니라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필요한 씨앗들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 서 있는 이 자리에서 희망의 씨앗들은 하나씩 하나씩 잘 가꾸어나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났다.
그 사이에 신상에 변화가 있었고, 하는 일도 조금은 달라졌다.
하지만
내가 지금 어디에 있든지

운동의 본질이 변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만약에 그렇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무슨 재미와 근거로 그걸 하겠는가 싶다.

단지 변한 것이 있다면
이제 더 이상 00파, 00권, 00세력, 00가로 규정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냥 세상이 좀더 좋아지는데 힘을 보태고,
다행스럽게도 그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한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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