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맞대고 뜨겁게 이야기를 나눠볼 시점?

그러니까 벌써 15년 전이다.
민노당의 자주파와 평등파의 역사는 꽤나 길다. 15년 보다 훨씬 길다.
전대협의 뒤를 이어 한총련이 생겼고, 한총련은 일명 자주파가 장악하고 있을 때. 소수파였던 평등파는 한총련 의장 선거를 준비한다. 같이 일하던 1년 선배가 의장 경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학교 단독으로 준비한 것은 아니고 LPT, 즉 Left President Table 좌파총학생회장단연석회의라고 이름 붙인 모임을 통해서였다.

한총련 의장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전국 광역권별로 한총련 대의원들의 추천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전임 총학생회장이 현직 총학생회장의 의장 출마를 위한 서명을 받으려고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모든게 순조로웠는데 광주전남쪽에서 이게 쉽지 않았다. 남총련이라 불리우는 그곳이 워낙 자주파의 영향력이 큰 곳이라 평등파쪽의 – 지금이야 평등파라 이야기하지만 당시에는 PD계열 – 대의원 숫자가 극히 적었기 때문이다. 자주파쪽 학생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총력단결투쟁을 하기 위해서는 경선보다는 의장 옹립을 해야 힘을 받는다.”
“한총련 선거는 경선이 아니라 옹립하는게 지금까지의 관행이었다”

자주, 단결, 통일이라는 구호 앞에는 민주적인 경선도, 정파간의 생산적인 경쟁도 무의미했다. 뚜렷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서부터 난 그들을 신뢰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찌나 친절하고 사람을 잘 챙기는지는 두세번 이야기해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게 운동의 모든 것이 아님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였다. 원칙이 있고, 토론이 있고, 서로 합의해가는 과정 속에서 생산적인 결론과 대안들이 나오는 법이다.

결국 마감 시한을 몇 시간 남겨두고 겨우 겨우 서명받은 용지는 서울에 도착했고, 우리는 그 경선에 필요한 서류들을 챙겨서 택시를 타고 한총련 사무실로 찾았갔다. 그때가 마감시한을 30분 남겨놓은 밤 11시 30분 쯤 되었던 것 같다.

싸늘한 분위기. 어떻게 의장 경선을 접수할 수 있느냐는 표정들. 분명 경선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장은 “옹립”을 해야 하는 것이지 어떻게 지금 상황에서 경선을 나올려고 하느냐는 심드렁한 말투와 반응들…. 하긴 김일성도, 김정일도 옹립되었으니까.

결론적으로 경선 등록은 하지 못했다.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왜 등록을 하지 못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갑자기 15년 전의 이 사건이 떠오른 이유는 방금 전에 뉴스에서 본 김창현 전 민노당 사무총장의 인터뷰 때문이다. 심상정 비대위 안이 부결되고 평등파들의 탈당이 줄을 잇고, 노회찬의 기자회견이 예견되어 있고, 분당이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자주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김창현씨가 한다는 말이 “머리를 맞대고 뜨겁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시점” 이란다. 표현이 정확히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위와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위기 때마다 일명 자주파들이 하는 이 말,
좋은 말이지… 근데 어떻게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게 하나도 없는지…..

머리를 맞대고 뜨겁게 이야기를 나눠볼 시점?”에 대한 답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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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주파의 맹목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에는 안타까움을 넘어 염증을 느낍니다.
    민노당의 분당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곪은 상처였을 뿐…
    생채기가 제대로 아물도록 올바른 치료가 필요할 때입니다. 더 이상 돌팔이 손에 맡길 순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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