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로부터 나온 이야기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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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우 지음 |
그린비 펴냄
‘세계를 뒤흔든 선언’ 시리즈의 여섯번째 권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은 바로 이처럼 해방 전후로 산산조각 난 한국 아나키즘운동사의 ‘잃어버린 고리들’을 복원해주는 책이다.

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을 읽다보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곱씹어야봐야 할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 더 나아가 타락한 정치야말로 인류의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 주장했다. 요컨대 불평등과 폭력이라는 오랜 부조리를 낳은 것은 바로 정치라는 제도 자체라는 것이었다….

정치라는 것을 막스 베버가 말한대로 ‘국가의 운영 혹은 이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이라고 본다면 정치 제도는 ‘국가에 의한 국민의 지배’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일종의 필요악이라 할 수 있다. 불평등과 타락은 국민들의 자발적인 삶의 결과로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제도와 그 제도를 운영하는 정부 관료, 그리고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권력 집단들에 의해서 조장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한 판단일 수도 있다.

…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방식이 그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게 된다고 믿었다. 즉, 인민들을 배제한 혁명은 그 후에도 여전히 인민들을 배제하리라는 것이다. 기성의 권위를 또 다른 권위에 빗대어 부정하지 말 것, 정치권력을 형성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것, 대중이 스스로 결정하고 자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의사결정구조를 만들 것, 간단히 말해서 대중의 ‘직접행동’으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것. 이것이 바로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이었다.

87년 이후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온 민주화세력, 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믿을 만한 세력으로 부상했던 시민사회세력들이 불과 1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는 바로 민주주의를 진척시키고, 진보를 이끌어가는 ‘방식’이 적절치 못했기 때문이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흔히들 ‘내용’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내용이 좋다면, 내 주장이 옳은 것이라면, 콘텐츠가 진보적이라면 다른 모든 것은 용서가 될 수 있다는 순진한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냉정한 국민들은 내용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까지도 꼼꼼히 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크로포트킨이 주장한 상호부조는 단순히 사랑이나 동정심 같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성이라는 연대의식을 뜻한다. 이 연대의식은 “상호부조를 실천하면서 각 개인이 빌린 힘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각자의 행복이 모두의 행복에 밀접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각 인간마다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의 권리도 존중해주는 의식, 즉 정의감이나 평등의식을 무의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 크로포트킨은 상호부조의 원리로 개인의 삶을 옥죄지 않는 동시에 개인의 원리로 상호부조의 정형화된 틀을 끊임없이 갱신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진보가 가능하다고 봤다.

개인의 삶을 옥죄지 않는 동시에 개인의 원리로 상호부조의 정형화된 틀을 끊임없이 갱신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진보라는 크로포트킨의 말은 한편으로는 ‘집단보다는 개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변화의 지점 – 그 변화를 웹의 출현이 가속화시켰다 – 과 개방과 공유, 참여라는 웹2.0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곰곰히 생각해볼 말이다. 단체의 이름, 전문가라는 허상 속에 묻혀져 있었던 수많은 운동가들 개개인 스스로가 운동의 주체, 변화의 주체가 되지 않는 이상 진보적 운동은 가능하지 않다는게 경험적인 판단이다.

… 모든 새로운 발명은 기계학과 공업이라는 폭넓은 분야에서 그것에 앞서 행해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발명들의 종합이며 그 결과이다. 과학과 공업, 지식과 응용, 발견과 새로운 발견으로 이끄는 실제적 응용, 사고와 두뇌 노동과 손의 재주, 두뇌와 근육의 노동, 이 모든 것들이 함께 협력한다. 발견의 하나하나, 진보의 하나하나, 인류 재산의 하나하나의 증가는 과거와 현재의 육체적, 정신적 노력에 힘입고 있다.

금요일에 Creative Commons Korea 주최로 열린 CC컨퍼런스 현장에서 계속 들었던 생각이다. 우리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지식과 정보라고 하는 것이 과연 독점적 소유를 통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오만함의 극치가 아니던가? 한 세대의 인간이 아닌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대대손손 살아가야 할 인류의 공동의 자산인 토지를 개인 소유권을 부여함으로써 수많은 산업화시대의 문제들이 발생하였듯이 디지털 시대에 지식과 정보의 독점 문제, 재산권 행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지금은 예상하지 못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 틀림 없다.

…혁명이란 단순히 어떤 개인이나 조직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방식이 아니라 삶의 체계 전체를 바꾸는 사회혁명이어야 한다.

시민행동이라는 조직을 만들 때 우리는 권력을 얻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가슴 속 깊이 간직해왔던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프레포지에는 생명의 보호와 반(反)권력이 유사하다는 점, 중앙으로 집중된 권력을 해체시켜 지역으로 환원시키려 한다는 점, 기성 정치제도나 규칙을 따르기보다는 직접 행동을 선호한다는 점, 개인의 자발성을 강조하고 전문가주의를 거부한다는 점 등에서 생태주의와 아나키즘이 공통점을 가진다고 본다.

… 말이란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항상 말해도 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라면 말해선 안된다. 말이 행위를 변화시킬 수 없는데도 자꾸 말을 한다면 쓸데없는 말에 불과하다.

말로 논평하고 주장했던 것이 지난 10년의 시민운동이라고 하면 지금은 ‘다시’ 말로서는 세상이 ‘제대로’ 변화하지 않는 시대인 것 같다. ‘시민운동의 말의 잔치’가 더 이상 잔치로서의 생명력을 상실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두가지가 있는데 ‘말’에 더이상 사람들을 감동시킬만한 매력이 없어졌다는 것이 첫번째이고, 말이 대중들에게 전달될 통로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두번째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일은 말이 전달될 통로를 개척해야 하고, 동시에 그 말에 매력적인 요소 – 그것은 말 자체의 매력 뿐만 아니라 말과 실천이 결합했을 때 느껴지는 말의 진정성과 매력 – 가 결합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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