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뒤흔든 상호부조론을 읽다보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곱씹어야봐야 할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정치라는 것을 막스 베버가 말한대로 ‘국가의 운영 혹은 이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이라고 본다면 정치 제도는 ‘국가에 의한 국민의 지배’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일종의 필요악이라 할 수 있다. 불평등과 타락은 국민들의 자발적인 삶의 결과로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제도와 그 제도를 운영하는 정부 관료, 그리고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권력 집단들에 의해서 조장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한 판단일 수도 있다.
87년 이후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온 민주화세력, 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믿을 만한 세력으로 부상했던 시민사회세력들이 불과 1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는 바로 민주주의를 진척시키고, 진보를 이끌어가는 ‘방식’이 적절치 못했기 때문이다. 운동하는 사람들은 흔히들 ‘내용’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내용이 좋다면, 내 주장이 옳은 것이라면, 콘텐츠가 진보적이라면 다른 모든 것은 용서가 될 수 있다는 순진한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냉정한 국민들은 내용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을 담아내는 그릇까지도 꼼꼼히 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개인의 삶을 옥죄지 않는 동시에 개인의 원리로 상호부조의 정형화된 틀을 끊임없이 갱신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진보라는 크로포트킨의 말은 한편으로는 ‘집단보다는 개인’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변화의 지점 – 그 변화를 웹의 출현이 가속화시켰다 – 과 개방과 공유, 참여라는 웹2.0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곰곰히 생각해볼 말이다. 단체의 이름, 전문가라는 허상 속에 묻혀져 있었던 수많은 운동가들 개개인 스스로가 운동의 주체, 변화의 주체가 되지 않는 이상 진보적 운동은 가능하지 않다는게 경험적인 판단이다.
금요일에 Creative Commons Korea 주최로 열린 CC컨퍼런스 현장에서 계속 들었던 생각이다. 우리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지식과 정보라고 하는 것이 과연 독점적 소유를 통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오만함의 극치가 아니던가? 한 세대의 인간이 아닌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 대대손손 살아가야 할 인류의 공동의 자산인 토지를 개인 소유권을 부여함으로써 수많은 산업화시대의 문제들이 발생하였듯이 디지털 시대에 지식과 정보의 독점 문제, 재산권 행사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지금은 예상하지 못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 틀림 없다.
시민행동이라는 조직을 만들 때 우리는 권력을 얻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운동을 하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가슴 속 깊이 간직해왔던 것은 바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말로 논평하고 주장했던 것이 지난 10년의 시민운동이라고 하면 지금은 ‘다시’ 말로서는 세상이 ‘제대로’ 변화하지 않는 시대인 것 같다. ‘시민운동의 말의 잔치’가 더 이상 잔치로서의 생명력을 상실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 이유는 두가지가 있는데 ‘말’에 더이상 사람들을 감동시킬만한 매력이 없어졌다는 것이 첫번째이고, 말이 대중들에게 전달될 통로를 잃어버렸다는 것이 두번째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일은 말이 전달될 통로를 개척해야 하고, 동시에 그 말에 매력적인 요소 – 그것은 말 자체의 매력 뿐만 아니라 말과 실천이 결합했을 때 느껴지는 말의 진정성과 매력 – 가 결합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