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플랫폼 – 시민운동에 필요한 것

컴퓨터 운영 플랫폼

사람이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오는 정거장만 플랫폼은 아니다. IT쪽에서 플랫폼은 소프트웨어 응용 프로그램을 돌리는데 쓰이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 정도를 지칭한다. 적절한 예가 응용소프트웨어가 돌아가게 만들어주는 운영체제인 MS사의 윈도우 시리즈가 하나의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리눅스도 플랫폼이라고 할 수도 있다. MS는 운영제체라는 플랫폼 시장을 윈도우로 장악하여 성장하고 IT업계에서의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만큼이나 기반, 운영체제, 플랫폼이라는 단어는 IT에서 중요하다.

음악 플랫폼

전통적인 음반회사들은 불법 MP3 다운로드라는 지하 경제를 파괴하기 위해 네티즌들을 악의 축으로 몰아가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줄 저작권법에 호소해왔다. 반면 음악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던 애플사는 그 사이 무엇을 했던가? 애플은 아이튠즈라는 온라인 상의 음악 유통 플랫폼과 아이팟이라는 멀티미디어 재생 플랫폼을 결합하여 대세를 장악했다.

심플하고 패셔너블한 애플사의 신제품들은 미국 젊은이들의 아이콘이 되었다. 올해 아이튠즈에서 소비되는 음악은 윌마트에서 판매되는 음반판매량을 넘어섰다고 한다. 아마도 이제 음반사들은 애플사가 만들어놓은 아이팟과 아이튠즈라는 거미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섣부른 예측까지도 나오고 있다. 음반회사들은 진행중인 변화의 흐름을 의도적으로 보지 않으려고 했고, 오직 눈에 보이는 적하고만 싸웠다.

익스플로어와 파이어폭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에서 네스케이프를 단기간에 몰락시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윈도우라는 OS를 장악하고 있었고, 그걸 기반으로 익스플로어를 끼워팔았기 때문이다. 하지면 영원한 승자는 없는 법이다. 파이어폭스는 세계 시장에서 20% 점유율을 이미 달성했다. 뿐만 아니라 구글도 브라우져 시장에 크롬이라는 제품을 내놓았다.

파이어복스의 영향력이 조금씩 조금씩 넓혀가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 플랫폼이 윈도우라는 OS가 아니라 웹 자체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웹2.0은 참여, 공유, 개방이라는 정신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좀더 기술적으로는 “플랫폼으로서의 웹”을 의미한다. 웹 자체가 곧 플랫폼이 되면서 윈도우라는 OS 플랫폼은 그 의미가 퇴색해가고 있다. 최근 IT전문가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는 맥북이라고 하는 것이 한국에서도 점점 이용자층을 확대해가고 있는 이유도 바로 “플랫폼으로서의 웹”이라는 흐름과 관련이 있다.

그만큼 플랫폼은 중요하다. 운동에서도.

인터넷 이야기를 하려고 애플사와 인터넷 브라우저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래 전에 에피소드라는 사이트에 올라온 “풀뿌리는 기만이다에 대한 반박글”을 보고 문득 든 생각이다. 풀뿌리가 기만이건 말건 간에 이재영씨도 결국은 진보하자는거다. 근데…. 우리 함께 진보하기 위해서는 진부한 것들을 걷어버려야 하는데 왜 이리도 진보가 진부한지 모르겠다.

숲이 먼저 봐야 한다. 나무를 먼저 봐야 한다. 길을 우선 찾아보자. 길을 새로 만들자….. 서로 자신의 말이 맞다고 주장하는 것은 평등이 먼저네, 자주가 먼저네, 성장이 먼저네, 복지가 먼저네라고 주장해왔던 진부한 논쟁과 다름 아니다. 먼저가 어디 있나 함께 움직이는거지.

풀뿌리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권력감시운동이나 중앙정치운동에 대해 부정하지 않아왔다. 다만, 그 운동과 풀뿌리운동이 함께 가야만 세상이 진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왔을 뿐이다. 누가 풀뿌리운동이 지금 운동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이야기했는가? 그동안 소홀히해왔던 일상의 정치, 삶의 정치, 지역의 정치, 공동체의 정치가 활성화될 때야만 세상이 진짜로 바뀔 수 있다고 주장해왔을 뿐이다. 정권이 바뀌고, 개혁세력이 권력을 잡고, 386정치세력이 중앙정치권의 전면에 부각하는 그런 거짓 변화 말고 진짜 변화를 원하려면 풀뿌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왔던 것이다. 제발 풀뿌리와 지역운동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역이 곧 국가이고, 국가가 곧 지역이다.

우리 소통의 플랫폼을 만들려고 하고 있는가?

수년간 시민사회 내에서 소통이 화두였다. 모두가 소통을 이야기하다. 위기의 원인도 소통의 실패였고, 위기의 극복도 소통의 회복이었다. 정작 소통하자고 했으나 소통하지 아니하였고, 가장 중요한 소통의 플랫폼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었다. 소통의 플랫폼은 진화해가고 있는데 여전히 운동 진영에서 소통하고자 하는 플랫폼은 전통 미디어와 아래아한글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고라 Agora가 왜 뜨는가? 고대 그리스의 도시에 있었던 열린 회의의 장소, 아고라…. 그 온라인판이 Daum의 아고라다. 특별하지도 않은 그 게시판이라는 공간이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그곳에 가면 소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토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소통의 플랫폼이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소통의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있는 소통의 플랫폼들로 들어갈 때 소통이 시작된다. 웹이라는 공간에는 무수히 많은 소통의 플랫폼들이 존재한다.

변화가 있다면 점점 웹에서 모바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운동 진영에서 모바일 공간에서의 소통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사람이 앉아서 소통하는 시대에서 이동하면서 소통하는 시대가 온다. 이건 큰 차이다. 그리고 불과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 소통의 플랫폼을 고민하지 않으면 시민운동의 소통의 화두는 영원한 숙제로 남을 뿐 영영 물건너가게 된다.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는?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만족할만 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정치인들의 입발린 소리일 뿐이다. 형식은 갖추어져 있는데 내용이 부족하다고? 그렇지 않다. 그들이 완성되었다고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정치학 개론 교과서에 나오는 아주 오래된 형식에 불과하다. 민주주의는 완결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그것이 형식이건 내용이건.

우리가 지금 더 많은 민주주의를 이야기하지만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 어떤 시스템, 즉 어떤 민주주의가 만개하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고, 그 안에 담는 사람과 내용만 고민해서는 안된다. 어쩌면 그 플랫폼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국가의 몫이라고 생각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국가는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가 꽃피는 플랫폼을 만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것들이 정치학 교과서나 민주주의 교본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법으로도 규정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플랫폼이 법조문 안에 담겨질리 만무하다.

진보세력이 이명박의 정책을 비판하는데 집중하면 5년 후에 또다른 정권을 비판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더 얄밉고 더 특권적이고 더 염치가 없지만 민주당도 마찬가지이고, 일부 진보들도 마찬가지이다. 비판에 집중하면 결국은 비판세력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진보세력이 보수 권력에 비판적인 세력, 좀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정책 정도만을 제시해주는 세력으로 남을 요량이라면 지금과 같이 나아가도 상관없다. 하지만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생각이라면 10년, 20년 후에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떤 플랫폼을 가지고 돌아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어느 하나를 전략적으로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같이 가야 하는데 하나에 집중하게 되면 하나는 느려지기 마련이다. 변화하지 않는다. 그 일이 수없이 반복되어 왔다는 것이 지금 운동의 문제 중 하나이다.)

닫힌 지식은 필요없고 열린 지식이 필요하다.
고립된 전문가 보다 네트워킹된 전문가가 필요한 시대이다.
소통하자는 이야기를 넘어 소통의 플랫폼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 2008년 5월에 [풀뿌리는 기만이다]라는 글을 보고 썼던 글인데 비공개 상태로 놔두었다. 최근에 플랫폼에 대한 생각이 들어 추가 정리했다.

소통의 플랫폼 – 시민운동에 필요한 것”에 대한 답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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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글을 읽으니 바캠프에서 들려주셨던 이야기들이 떠오르네요. 사실은 그 대화들이 제가 보낼 앞으로 몇년간의 꺼리를 정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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