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민운동 : 희소성과 대체불가능한 능력은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가?

진보라는 단어, 소통이라는 단어, 참 쓰는 사람에 따라 참으로 여러가지로 해석된다. 여기서의 진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운동’을 하는 세력과 단체, 개인을 지칭한다. (운동한다고 꼭 진보일 수 있냐는 이야기는 잠시 접어둔다.) 

크게 4가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운동, 정치, 씽크탱크(넷), 미디어이다. 왜 이렇게 4가지를 잡았냐고 하면 세상을 좀 지금과는 다르게 바꾸어보려고 한다면 위 4가지에 대한 관심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시민운동 : 희소성과 대체불가능한 능력은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가?

앞서 민노씨가 언급한 욕망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우선 하고 싶다. 요즘은 부동산에 대한 욕망이 아이의 교육에 대한 욕망과 결합하여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경이다.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인권을 이야기하고, 자유를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인간의 이러한 욕망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운동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사람을 바꾸는 일이라고 하는게 더 적절하다. 사람을 바꾸는 일은 곧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일이고… 사람이 변하지 않는 혁명이라는 거…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그건 대다수의 삶과는 무관한 그들만의 혁명일 뿐이다.

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예전에는 학습과 현장에서의 조직이 필요했고, 또 언젠가는 언론과의 긍정적인 관계가 필요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운동은 법과 제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어울리고, 새로운 일을 같이 시도해보는 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고, 반면에 정책의 전문성이라는게 더욱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서의 운동은 그 시대에 가장 활발했던 운동을 말하고, 그런 면에서 본다면 90년대부터 2000년 초반까지 가장 활발하게 움직였던 운동은 시민운동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정책의 전문성이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어떤 작용을 했을까? 시민운동하는 사람들은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영어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 대학원에도 가야 하고, 유학도 가야 하고….  그래서 그런게 별로 내키지 않았던 난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해보기도 했다. “이건 교수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 시민운동의 업보다.”

시민운동은 참 많은 제도들을 만들어냈다. 금융실명제, 토지공개념, 부패방지법, 정보공개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주민소환법, 주민투표법 등등. 시민운동세력이 만들어낸 개혁법안이라고 하는 것을 열거하려면 끝이 없을 정도다.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와 이익을 위해서만 활동하는 뉴라이트계열의 단체들에 비하면 정말 좋은 일들을 많이 했다.

그건 그렇고 법과 제도라는 것, 돌이켜보면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 힘을 보태기도 했으나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제도가 만들어졌으나 사람은 그대로다. 그 제도의 취지와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 제도를 악용하는 세력들에 대해서 아무런 분노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 못된 권력자를 견제하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제도가 실제 지역 사회에서는 주민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때 그런 느낌을 받는다.

민주주의는 그에 걸맞는 수준 높은 법과 제도도 필요로 하지만 그것만 갖추었다고 민주주의라고 하지 않듯이…. 그 허전함을 풀어낼 수 있는 중요한 열쇠 중의 하나가 바로 인간의 욕망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문득 해봤다. 또 운동세력이 그동안 만든 법과 제도, 과연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가를 생각해보면 – 보통은 전문가 토론회 등을 거치면서 필요성이 대두되고, 법전문가들이 만든 법안을 국회의원을 통해 입법청원하고, 신문과 방송을 통해 여론을 만들어내는 과정 – 지금 왜 다시 소통하는 진보라는 의미가 무엇일지 차츰 알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사자생(寫字生)이야기부터

링크(21세기를 지배하는 네트워크 과학) 이후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정보사회 관련 책 중 하나인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이라는 책에는 사자생(寫字生)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자생(Copyist)은 글씨를 베끼어 써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써 1400년대까지 정보 전달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사자생들은 1400년대 말까지 자신들의 직업이 어떤 운명에 처할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인정하기 싫었을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사자생의 역할은 그 당시까지만 해도 희소성이 있었고, 대체 불가능한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림 출처 : Mozul


사자생이 몰락하기 시작한 계기는 1455년에 생겨났다. 1455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 활판 인쇄술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책을 읽는 속도 보다 책을 만들어내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자생의 역할은 활판인쇄술이라는 기술로 대체되었고, 그 희소성은 사라졌다. 사자생이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보통 기술에 의한 사회의 변화는 서서히 이루어지지만 어느 순간 전면에 등장한다. 그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는다.

활판인쇄술이 발명되고 약 50년 후에 있었던 일이다. 쉬폰하임 수도원장인 요하네스 트리테마우스는 <사자생에 대한 찬미>라는 논문을 쓰게 된다. 그는 곧 사라질 운명에 처한 사자생을 찬미한다. 그는 사자생의 가치를 지켜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요하네스 트리테마우스는 이 논문을 활판인쇄를 하여 배포한다.
 
지금도 사자생을 찬미했지만 그 찬미의 글의 배급을 사자생에게 맡길 수 없었던 요하네스 트리테마우스와 같은 사람들이 세상엔 많이 있다. 인터넷에 매우 비판적인 신문사의 논설위원들은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신문의 변함없는 가치를 호소하기 위해 인터넷을 이용한다. 역사는 반복되면서 조금씩 진보한다.

우리 삶에 깊숙히 들어온 인터넷

1990년대 인터넷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인터넷의 역사는 그보다 훨씬 오래 전이지만 비로소 90년대 중반이 지나서야 인터넷이 우리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구텐베르크가 활판인쇄술을 발명한지 약 500년만에 인간 사이의 소통과 정보의 생산, 유통, 소비 방식에 획기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기술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 기술이 이만큼의 변화를 가져올 것을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활판인쇄술이 발명되고 그 기술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그 기술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기까지는 수십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인터넷은 불과 10년만에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을 하나둘씩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정보의 생산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 정보의 무한 복제를 가능하게 하고, 하이퍼링크를 통해 정보 간의 연결을 촉진시켜준 인터넷의 기술적 특성으로 인해 정보의 생산과 유통 속도 또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빨라지게 되었다.

인류의 역사를 소통의 관점, 정보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관점으로 본다면 지금까지 인터넷처럼 근본적이면서도 급속한 변화를 일으킨 기술은 없었다. 인터넷은 가장 혁신적인 소통의 도구가 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부터 이 인터넷에도 또 다른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참여와 공유, 개방이라는 가치를 내재하고 있는 웹2.0은 단지 과거의 실패한 웹과 현재의 성공한 웹을 구분하기 위해 임의적으로 만든 용어이지만 이 용어는 이전과는 다른 인터넷을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다. 

인터넷은 스스로 자가발전을 시작했다. 마치 로봇이 감정을 가지게 되고, 인간이 만든 로봇이 복제인간을 만들어내는 영화 속 이야기처럼. 사람들이 소통하고, 정보를 생산, 공유, 소비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인터넷은 사용자들과 함께 의해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우리(여기서 우리는 90년대 중반에서 말즈음에 사회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을 말한다.)는 인터넷이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할 즈음에 사회운동을 시작하면서 그 안에 존재하는 희망의 가능성을 보았다. 공간과 시간의 제약 없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우리가 추가하는 가치, 우리만이 알고 있는 정보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광범위하게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불과 몇 년만에 인터넷은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해왔던 일들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혼란과 좌절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이 느낌은 우리의 능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우리만이 가지고 있다고 자만한 능력을 인터넷이 대체하기 시작했는데 새로운 역할을 찾지 못했던 것에서 연유한다.

대체된 역할은 대체로 정보의 생산과 유통, 감시, 입장 대변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일들은 시민운동 초창기부터 단체의 고유한 역할이었다. 그 일에 신문과 방송이 힘을 보탰던거고.

운동가들도 15세기의 사자생과 같은 운명에 처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그렇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여전히 필요한 역할이 있다. 하지만 그 역할은 우리가 스스로 변화하고 스스로 찾을 때에만 생겨나는 것이다. 변화하지 않는다면 지금과 같은 역할은 필요로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지금과 같은 우리의 역할이 과연 앞으로도 영원히 희소성이 있을까? 대체불가능한 일일까? 너무 자만하지 말아야 한다. 직업적 운동가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적극적으로 새로운 역할 모델을 찾았을 때의 이야기이다.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그리고 행운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변화의 소용돌이의 중심에 와있다. 변화의 흐름에 몸을 내던질 것인가? 아니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휩쓸려 소멸할 것인가? 변화의 시대에는 적극적으로 변화를 수용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진보에 도달할 확률이 높다. 

(1) 시민운동 : 희소성과 대체불가능한 능력은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가?”에 대한 답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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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는 조금 다른 시점에서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법과 제도 정책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기존의 운동방식이 확실히 뭔가가 빠져있다는 것, 그리고 그 허전함을 풀어낼 수 있는 중요한 열쇠 중의 하나가 인간의 욕망이라는 생각은 수긍이 갑니다.

    다만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간다는 것
    관계속에서 서로 변화해 나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만나고, 이야기를 하고, 같이 어울리고, 생각을 나누고, 의식을 공유하고, 새로운 일을 같이 시도해보고..

    저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개인이 변화한다는 거는
    개인이 자신이 서 있는 사회 속에서
    주체로서 새롭게 서게 되는 과정이 아닐까.

    자기가 서있는 자리에서 처지와 사회를 생각하고
    뭔가 부조리하고 불합리하고 부족한 환경에 있다고 생각할 때
    그것에 대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그것을 개선하고 변화시키기 위해서
    스스로의 그러한 생각에 주체가 되어 실천해 나가는 작은 걸음걸음.

    저는 이러한 걸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명 한명과 관계를 맺어 나가면서
    스스로의 삶에 주체로써 다시 설 수 있도록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것이

    흔히들 진보라고 이야기 하는
    더 낳은 세상으로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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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옳은신 말씀입니다.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를 인식하고, 세상을 보며, 부조리와 맞서 싸웁니다. 그런 걸음들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이라는 것도 맞는 말씀이구요….

      말씀을 듣고 보니 이 글 뒤에서 이야기한 대변한다는 마인드와 법과 제도를 만들어서 그것을 통해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규정하려는 시도는 비슷한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마도 민주적인 혹은 공익을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 말씀하신 ‘사람과의 관계’가 부족했기 때문에 실패를 겪고 허전함을 느끼는건 아닐까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도 반드시 사람들이 참여해야 하고, 관계의 힘이 작동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법과 제도(아직 통과되지 않은)가 실제 입법화되고 현실화되는 단계에서 힘을 모으고, 압력을 행사해달라는 경우가 많았던 듯 합니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여기서도 하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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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새벽에 통독했습니다.
    지금 다시 찬찬히 읽으니 글읽는 맛이 더 살아나네요. : )
    너무 피곤해서 댓글은 이제야 남깁니다.

    아직 구체적인 각론의 차원으로 넘어갔다는 느낌은 들지 않지만, 논의가 이제 서서히 구체화되고, 깊어짐을 느낍니다. 제가 워낙에 추상적이고, 몽상적인 사람이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구체성에 대한 압박, 현실 적합성에 대한 압박을 스스로 느끼곤 합니다. 그 차원에서 말씀 올리자면, 앞으로 전개하실 논의는 좀더 구체적이고, 작은 사례들을 통해서 이야기하고자 하시는 바의 취지를 독자들이 좀더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시길 염치 불구하고 바라봅니다.(괜히 너무 부담을 드려서 죄송.. ^ ^;; )

    추.
    이 글 말고도 새로운 글을 하나 더 쓰셨더고만요. ㅎㅎ.
    이렇게 빨리 논의를 진전시키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제 부족한 생각이나마 조아신님의 논의를 매개 삼아서 이어볼까 싶습니다.
    즐겁고, 의미있는 사유의 매개를 전해주신 점,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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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체성에 대한 압박은 저도 매한가지네요.^^;
      그래도 노력해보겠습니다. 생각해보니 그 안에 오랫동안 있었던 사람은 무슨 이야기인지를 지레 짐작할 수 있지만 밖에서만 봐온 분들에게는 뜬금없는 소리일 수 있겠네요. 부족한 글에 살을 보태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글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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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비밀글입니당.

    게으름으로 이제야 읽어보고 있는데요…;;;;
    이왕 발견한 사소한 오타.

    “결국 요하네스 트리테마우스는 이 논문을 (환)판인쇄를 하여 배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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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벌써 오래된 이야기를 들어주고 계시니 감사할 뿐이지만.. 트위터에 글이 올라오니 쑥스럽기도…^ 오타는 수정했슴다. 글고 대학로 Bar 모임은 7월 중에 추진하려고 공동호스트와 이야기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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