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촛불의 시기에 논쟁을 일으켰던 주제 중 하나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것이다. 몇달 동안 시민들이 거리에서 촛불을 밝히며 더 깊고 더 넓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전했지만 정당들은 전혀 역할을 하지 못했다. 곧 정당 정치로 상징되는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과연 최장집 교수의 말처럼 정당의 기능을 제대로 복원해야만 위기의 정치를 넘어 제대로 된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의 원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까? 교과서에 나오는 말처럼 정당과 대의민주주의는 불변의 진리인가? 사람들은 진정 “대의민주주의”를 원하는가?
최장집 교수를 포함하여 많은 정치학자들은 인터넷 공간에서의 새로운 민주주의 실험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난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과연 그 분들은 인터넷이라는 곳에서 종이신문의 온라인판을 읽고, 이메일을 보내고, 자신의 논문이나 칼럼을 올리는 것 이외에 그 안에 있는 사람들과 어떤 소통의 경험, 혹은 연대의 경험은 과연 있는 것일까? 인터넷에서의 각종 민주주의적 실험의 언저리에 살짝 발이라도 얹어본 적이 있는 것일까?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했으니 당연히 회의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서 역으로 난 그들의 단언 – 인터넷을 통한 직접 민주주의는 가능하지 않다 – 을 신뢰할 수 없다.
사람들은 “대의”민주주의를 원할까? 지금까지 가장 유효하다가 생각하는 민주주의 방식이 대의민주주의여서 그렇지 실제로는 말 그대로의 “민주주의”를 원할 뿐이다. 그동안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할만한 다른 대안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지역과 계층(계급)을 대변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이다. 왜 그들이 우리를 대변해주어야 하는가? 우리도 직접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그들은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을 이용하여 자신들만의 견고한 성을 쌓아놓았다. 대의민주주의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국민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막아왔다. 그들은 자기들만이 영원히 국민들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계속 권력을 향유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는 대변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원하지 않아야 한다.
정치 권력은 국민의 정치참여를 싫어한다.
국회의원들은 실컫 싸우다가도 밥먹고 술먹을 때는 친구다. 불행한 일이지만 그들은 국회의원이라는 공통의 권력을 공유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때로는 분열하고, 대립하지만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하고 국회의원이라는 권력에 균열을 일으킬만한 행동은 용납하지 않는다.
또 한가지 공통점을 꼽으라면 그들은 국민의 정치 참여를 싫어한다. 자신들이 아니고 너도 나도 정치에 참여하는 순간 큰 혼란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자신들의 특권, 즉 국민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다는 특권이 침해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왜 그러면 안되는가? 왜 직접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가 찾아야 하기 전에 왜 그러면 안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그들이 해야 한다.
여야를 거릴 것 없이 극소수를 제외하고 정치인들이 노사모를 싫어했던 이유는 노사모가 그들의 나와바리를 침범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쌓아놓은 대의민주주의라는 견고한 성에 균열을 일으키는 세력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후보를 당원 혹은 지역민 경선으로 뽑다가 과거로 회귀한 이유는 부작용이 나타나서가 아니라 자기들 뜻대로 정치가 굴러가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줄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서 발생한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치인의 역할이고 책임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그 책임을 당원들의 잘못으로, 유권자의 현실을 모르는 무지 탓으로 돌렸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