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제주에 살고 있을 때, 김태환 제주도지사 주민소환이 실패로 끝난 후, 한 단체의 소식지에서 원고를 요청해와서 보낸 글이다.
2009년 대한민국에는 두 개의 단어가 공존하고 있다. 인간이 살아온 어느 시기, 어느 곳에나 공존했던 두 단어는 절망과 희망이다. 사실 인류의 역사는 절망하고 있는 사람과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살아온 사람들이 힘을 합쳐 전진시켜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희망은 사람이 존재하는 한 결코 바닥나지 않는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고, 역사가 가르쳐준 교훈이다.
내가 지금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제주에도 절망과 희망이 공존한다. 김태환 지사의 소환 여부를 결정하는 주민투표가 끝나는 날, 누구는 그 결과를 승리라고 기뻐했을지 모르지만 누구는 절망했을 것이다. 나 또한 기대했던 것보다 낮았던 투표율과 내가 가진 민주주의에 대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김태환 지사 측의 행태에 절망했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는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국책사업이라는 미명 아래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지역 발전을 저해하는 나쁜 세력을 낙인 찍는 일들이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다. 진정한 주민자치와 풀뿌리 민주주의는 온데 간데 없고 오직 국토개발과 토목건설만으로 지역 발전을 이루겠다는 목소리만 활개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지사를 직접 뽑을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면 도지사를 소환할 권리도 당연히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상기시키고, 실제 주민소환요건을 충족시켜서 주민투표까지 진행하였다는 사실은 그 결과와 상관없이 결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제도로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끊임 없이 발전해가는 삶의 가치라고 본다면 우리들은 이번 계기를 통해 그 가치에 한발 더 다가선 것이다.
우리는 이번 과정을 통해 7만7천367명의 소환서명인을 만날 수 있었고, 온갖 투표불참 압력 속에서도 투표에 참여한 4만6076명의 도민들과 뜻을 같이 할 수 있었다. 절망이 끝나는 곳에서 희망은 시작되는 법이다. 제주해군기지와 한라산 케이블카, 영리병원, 제왕적 도지사가 제주의 절망이라면 그것이 제주도의 대안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희망이다.
삶을 되돌아볼 수 있고 그대로의 자연환경을 지키는 생태관광지로서의 제주, 누구나가 건강하게 살아갈 권리가 부여되고, 아픈 자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네줄 수 있는 제주, 주민의 자치와 참여가 보장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제주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이 희망이다. 누구는 주민들의 절망과 바꾼 불과 1년치의 희망만을 얻었을지 모르지만 우리 모두는 평생 사용해도 없어지지 않을 한 움큼씩의 희망을 각자 가지고 있을 것이다. 희망은 결코 바닥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