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아들과 목욕탕에 갔습니다. 그 목욕탕의 냉탕에 서서 밖을 보면 함덕해수욕장의 해변가가 보이는 아주 괜찮은 동네 목욕탕입니다. 오늘 그 냉탕에서 하나 깨달은게 있습니다.
보통 아이들이 그렇듯이 아들 녀석도 목욕탕에 가면 씻고 때밀고 하는데는 관심이 없고, 바가지를 가지고 탕 속에서 놀기 바쁩니다. 물이 차가왔나봐요. 냉탕에 들어가지는 못하고, 발을 살짝 담근채 앉아서 바가지를 탕 속에 띄우고 이리저리 굴리고 있더군요. 그러다가 바가지 하나가 탕 중앙쪽으로 밀려나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그걸 잡으려고 물을 손으로 저어보는데 그럴수록 더 바가지는 더 멀리 갑니다. 그렇다고 탕 속에 들어가서 바가지를 꺼내올 생각은 없나봅니다.
저를 쳐다보길래 “아빠한테 부탁하지 말고 다시 이쪽으로 바가지를 오게 하는 방법을 한번 찾아봐”라고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바가지를 당기려고 물 속에 손을 넣어 저을수록 물결이 쳐서 점점 밀려난다는 뭐..그런 현상도 알려주고 싶었고, 혹시나 어린 아이만의 생각을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기대한 측면도 있습니다.
잠시 바가지를 쳐다보고 뒤쪽으로 내려가더니 바가지 몇개를 가져오더군요. 바가지를 던질려고 하나? 아니면 바가지 하나를 건지지 못했으니 그냥 다른 바가지로 놀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일까?… 아들은 바가지 몇개를 탕 속에 던지더니 이러더군요. “더 멀리 보내는 게임을 할거야”….
그 순간인 것 같습니다. 뭔가 깨달음이 생긴건. 아들이 바가지를 가지고 논 것은 “재미”를 위해서였을겁니다. 본인은 본능에 충실했겠지만 제가 추측해서 의미를 부여해보자면 이런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바가지를 자신에게 가져오려고 하는 일종의 게임에서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자 본인이 만들어놓은 게임의 규칙을 바꾼겁니다. 멀리 보내는 게임으로. 그렇게 결정하는 순간 바가지를 다시 내쪽으로 끌고 오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진거겠죠. 왜냐하면 게임의 목적은 지루한 목욕탕에서의 잠시 동안의 “재미”였을테니까요….
그러면서 우리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가 처음엔 재미있다고 만들어내는 사업들이 왜 재미없게 되는 경우가 많을까? 혹시 그 재미를 위해 채택한 방식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는데 어느 순간 진정한 목적은 잃어버리고 이미 게임은 시작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 길로 계속 감으로써 목적도 달성하지 못하고, 재미도 없는 것은 아닐까? 해결책은 간단하게 애초의 목적을 위해 스스로의 규칙을 바꾸어버리면 되는 것은 아닐까? … 목욕탕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로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 건 오버일까요?
“목욕탕에서 깨달은 것” 에 하나의 답글
유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