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 써놓은 메모(진보의 미래라는 책에 언급된)를 보면 아래와 같은 말이 나온다.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가는 것 같습니다. 시민운동도, 촛불도, 정권도, 이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80년대 반독재 투쟁이 성공한 것은 국민이 생각하는 만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세상을 바꾸자면 국민의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국민의 생각을 바꾸는 데는 미디어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영향력 있는 미디어는 돈의 지배를 받습니다. 돈이 없는 쪽은 돈이 들지 않거나 적게 드는 매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민운동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고 한다.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은 사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었다는 말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놓아도 사람의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면 그것은 미완의 변화일 수 밖에 없다. 시대를 앞서갔다고 평가받았던 이념이나 제도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정착되어 꽃피지 못하고 시들어져가는 것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
여성혁명가이자 페미니스트인 엠마 골드만(Emma Goldman)은 “내가 춤 출 수 없다며 혁명이 아니다.(If I can’t dance, I don’t want to be part of your revolution)”라고 했다.이 말은 혁명이 내세운 가치들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지 못하고 삶에 투영되지 못하면 그것은 진정한 혁명이 아니라는 것을 멋지게 표현한 말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야기하는 혁명(세상을 바꾼다는 추상적인 말 조차도)이라는 것이 어느 한 순간에 달성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바꾸고자 하는 세상은 마치 손바닥처럼 한번에 뒤집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 혁명은 껍데기만 바뀐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일시에 변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설령 그렇데 된다 하더라도 그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이겠는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 혹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목석과 같은 사람 그 자체일 수는 없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속에서 전달되는 무엇이 있다. 그것이 정보일 수도 있고, 감정일 수도 있고, 경험일 수도 있고, 말하지 않는 실천일 수도 있다.
정보, 관계, 미디어는 원래 시민운동의 관심 키워드이다.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미디어’라고 한다. 과거에는 직접적인 대화나 구술, 책들이 미디어의 역할을 했다. 그 이후에는 신문과 잡지, 라디오, TV, 인터넷 등이 미디어 역할을 해왔다. 시대가 변하듯이 미디어의 모습 또한 계속 달라지지만 정보를 전달하고 사람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미디어의 중요한 목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세가지 분야에 대한 관심이 끊임없이 요구되어 왔다. (1)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2)그 관계 속에서 오고가는 정보, (3)그 정보들을 매개하는 미디어가 그것이다. 사실 전통적인 사회운동은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오래 전부터 이 세가지를 중심으로 운동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레닌이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이스크라”라는 정치전문 신문을 창간한 것은 그것이 미디어로서 사람들을 통일된 이데올로기로 묶어내는데 선도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다만 1980년대 말, ‘시민운동’이 등장하면서 “정보”가 조금 더 중시되었을 뿐이다.
시민운동의 “전문성”이라고 하는 것은 그 중요성을 강조한 또 다른 표현이었다. 2000년 들어오면서 등장한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은 “관계”의 소홀함에 대한 비판이었고, 대중으로부터 고립된 시민운동이라는 비판은 “새롭게 등장한 인터넷이라는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채 표류하고 섬에 갇힌 시민운동에 대한 비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시민운동은 정책적인 전문성(정보 분야)을 높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관계’나 ‘미디어’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는데는 소홀히했다. 두가지 분야를 기술적인 분야로 생각해서인지 외부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고, 내부 역량을 키우는 일에 무심했다. 그 와중에 시민운동과 협력을 했던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대중 미디어(국내에서 영향력이 큰 보수언론들 중심으로)들은 더이상 협력하기를 그만두고 비판자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야기하는 관계와 미디어 분야를 전통적인 운동조직에서 부서의 이름으로 표현하면 조직국이거나 선전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짧은 경험에 비추어보면 운동 조직은 일반적으로 정책국, 조직국, 선전국이 있었고 세 부서간의 힘의 균형이 있었다. 하지만 “정책적 전문성(정보)”가 강조되기 시작하면서 조직화(관계)는 회원관리/서비스로 바뀌었고, 선전(미디어)은 잡지나 소식지 발간으로 바뀌었다. 미디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하는 메시지는 정보를 전담하는 부서에서 미디어에 제공하는 보도자료, 성명서, 논평으로 국한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환경이 급속하게 변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도 전혀 다르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시민운동의 범주는 풀뿌리운동이나 공동체운동까지를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시민운동이 가장 중요시했던 “정보”는 이제 수많은 대중들에 의해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되고 있다. 활동가와 전문가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시민운동의 정보 못지 않은 양질의 정보들이 능력있는 개인들의 협력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미디어는 소셜미디어로 진화해가고 있다.
소셜미디어에 관한 여러가지 정의들이 있지만 소셜미디어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과 경험, 의견, 관점 등을 서로 공유하고 참여/협력하기 위해 사용되는 개방화된 미디어 플랫폼”이다. 이 개방된 플랫폼 안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만들어지고, 정보가 전달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람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데는 미디어가 큰 역할을 한다.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시민운동은 정보, 관계, 미디어 세가지 분야를 조화시켜나갈 대 시대를 이끄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대세라고 하는 소셜미디어는 과거와 달리 관계, 미디어, 정보 세가지 요소들을 함께 담아내고 있는 중이다.
시민운동이 소셜미디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그것이 새로운 트렌드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세 가지 요소가 지금 시민운동의 핵심적 요소와 부합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데는 미디어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에 대한 2 댓글
연재될 내용 기대됩니다! ^_^
^^기대까지는.. 이렇게 쓴다고 시작을 해야 진도를 나갈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