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가의 새로운 역할 모델에 대하여

2010년 1월, 한국기자협회보에 “디지털 저널리스트 시대 기자들 변화 필요”라는 기사를 보면 한 신문사 기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2000년 이전에는 정의로운 기자를 시대적으로 요구했다고 하면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인해 특종의 개념이 무의미해졌다……. 새로운 기자의 역할이나 모델은 정립되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 내에 여러 플랫폼에 쓸 수 있는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를 요구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여기에 추가되는 매일경제 편집국장의 말.

기자들이 생산하는 기사는 지면과 영상뿐만 아니라 모바일, 인터넷,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 전달될 것….. 모든 플랫폼에 적응할 수 있는 ‘디지털 저널리스트’가 요구되는 원년이 될 것

세상이 바뀌면 시대가 요구하는 직업도 자연스럽게 바뀐다. 한때는 누구도 해내지 못한 희소성있는 역할을 수행했던 존중받는 직업이 어느 순간 사라진다. 다른 사람에 의해 역할이 대체되고 혹은 사람이 아닌 기술에 의해서도 대체된다. 그러면서 원래 존중받았던 직업은 자연스럽게 소멸되거나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먼 훗날 후대들이 역사를 돌아켜보면 그 시점이 선명하게 보이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기 쉽지 않다. 마치 중세시대의 사자생(Copyist, 책을 베껴쓰는 사람)의 역할이 활판인쇄술이라는 발명품으로 대체되었듯이.

인터넷이 특종이나 속보, 정보 전달자로서의 전통적인 기자 역할을 변화시키는 도구로 작용할 것이라는 말은 그다지 특별한 말이 아니다. 이미 오마이뉴스가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고 선언하는 시기에 시민 기자와 직업적 기자와의 경계는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블로그가 독립적인 미디어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시민과 기자, 블로거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기자가 블로거가 되고, 블로거가 기자가 되고, 시민이 블로거가 되었다.

그리고 2009년 한국에서도 트위터 이용자들이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사람들이 속보나 특종,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기자들이 쓴 기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듣는 것이 아니라 소셜네트워크에서 이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전해듣는 소셜뉴스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국회의사당의 소식은 정치인의 트위터에서, 영화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배우의 트위터에서, IT에 관한 최신 소식은 IT전문가들의 트위터에서.

현직 신문기자의 말처럼 이제 기자는 자신이 속한 신문사나 방송사의 매체에만 기사를 송고하는 것으로 임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소셜미디어나 소셜네트워크에서 취재를 하고 기사를 내보낸다. 자신이 취재한 내용을 지면과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매체에 보내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유통 플랫폼에 맞춰서 기사를 분화하고 가공하여 내보내면서 수많은 대중들과 경쟁을 한다. 신문 한 부, 30분의 뉴스프로그램의 부속품으로서의 기사가 아니라 기사 하나가 독자적인 콘텐츠로 대중과 만난다.

물론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기자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기자만이 할 수 있는 본연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심층취재, 탐사보도, 일반인이 여전이 접근하기 힘든 영역에 대한 취재와 같은 일은 꼭 필요하다. 단, 아마추어들도 따라할 수 있는 평범한 콘텐츠가 아니라 독보적인 콘텐츠여야 할 것이다.

시민운동가의 역할?

시민운동가의 고유 역할을 딱히 정의할 수는 없다. 운동을 시민운동으로만 한정할 수도 없고, 시민운동의 분야 또한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그 안에는 다양한 역할들이 혼재한다. 여기서는 풀뿌리운동이나 공동체운동에서와 같은 분야에서의 역할은 제외하고, 권력을 감시하고, 시민의 입장을 대변하여 공공선을 주장하고, 시민의 힘을 조직화하는 세가지 역할 정도로만 한정을 해보자. 분명 이 세 가지 역할은 누군가에 의해, 어떤 도구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첫번째 감시의 역할. 감시의 역할이 유효했던 이유는 과거 시민운동가들의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시민들보다 훨씬 용이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것을 분석하는데 도움을 주는 전문가들이 조직 내에 포진해 있었다. 감시의 눈이라고 하는 것은 시민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그리고 분석이라고 하는 것은 흩어져 있는 정보들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내어서 핵심적인 결론을 도출해내는 일이다. 여전히 숨겨진 정보들이 많지만 일반적으로 정부나 기업, 기관들이 만들어낸 정보들이 차곡 차곡 인터넷에 쌓이기 시작하고, 거기에 수많은 개인들의 생각과 경험들이 결합된다. 그리고 과거 아날로그로 존재했던 정보들이 디지털화되어가고 있다.

검색창은 감시의 눈이 되고, 웹 자체는 감시를 위한 데이타베이스가 되어간다. 일반적인 수준의 감시 역할은 이제 대중이 스스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기자들이 고유 역할이었던 속보나 정보전달을 소셜미디어 플랫폼 속에서 활동하는 대중들이 대체하듯이.

이런 변화에 시민운동가는 어떤 역할을 찾는 것이 좋을까? 감시 역할 자체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다. 여전히 감시라는 일은 사회를 투명하고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기본이 되는 일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나 위키리크스와 같은 곳에서 새로운 역할 모델을 찾을 수 있다. 정보공개센터는 법으로 정해진 정보공개청구제도를 활용하여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정부의 각종 정보들을 공개하고, 아카이브하고 있다. 시민에 의한 감시를 위한 기본적인 소스를 제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정보들을 찾아내 이를 대중들에게 전달해주는데 집중하고 있다. 더불어 시민들이 스스로 감시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보공개청구에 관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위키리크스는 정부와 다른 단체로부터 온 민감한 문서를 퓩로하는 웹사이트다. 위키리크스 대표 줄리안 어샌지는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참여하여 집단 지성으로 만들어지는 위키백과에서 착안한 위키리크스는 익명의 제보에 의존하지만 자체적인 검증 시스템을 통과한 소식만을 사이트에 올린다”며 “이미 공개된 내용, 단순한 소문은 다루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출처 : 위키백과사전)

마지막 부분의 “이미 공개된 내용, 단순한 소문은 다루지 않는다”는 말은 주목할만하다. 이미 시민들이 알만한 정보, 시민들이 검색을 통해서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정보들까지 굳이 시민운동가들이 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런 역할들은 과감하게 넘겨주고, 정보공개센터나 위키리크스와 같은 비어 있는 지점에서의 감시 역할을 찾아야 한다.

시민들의 목소리가 조직되고 현실에서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지지·지원하는 역할

두번째, 시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 그동안 시민운동의 상당부분이 시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변형 운동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시민의 목소리를 담아낼 그릇이 충분치 않았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그 공간의 한계로 인해 베스트셀러 위주의 책이 배치되듯이 TV,신문,잡지와 같은 한정된 지면과 시간 조건 아래에서는 개인들이 목소리를 다 담아낼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단체의 이름으로 시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들이 유효했다.

인터넷으로 공간적 한계가 없어지면서 온라인 서점에서는 그동안 팔리지 않았던 책들이 팔리기 시작했다. 1년에 한두권 팔리는 책들의 매출이 베스트셀러의 매출 만큼이나 된다는 롱테일 법칙은 시민운동에도 적용될 수 있다. 수많은 개인들의 목소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그러한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대변형 운동으로서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대변형 운동을 넘어 어떤 역할을 찾아야 할 것인가? 하승수 변호사가 시민사회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그 방향을 찾을 수 있다. 누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가치들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것을 위해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동안 시민운동은 지나치게 시민을 대변하는 입장에서 활동해 왔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시민들 스스로 시민운동이 지향하는 좋은 가치들(예를 들면 평등, 생태, 평화, 인권, 풀뿌리민주주의 등)에 동의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을 하는 것이다. 한국 시민 운동은 이런 측면에 약했다. 한편 지금 필요한 조직화의 방향은 ‘이해관계에 기반한 조직화’가 아니라 ‘가치(비전)에 기반한 조직화’가 되어야 한다. 이해관계에 기반해서 사람들을 조직화하는 방식은 이해관계가 소멸되면 곧바로 방향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것보다는 ‘좋은 사회’에 대한 꿈을 가지고 시민들과 같이 고민하고 실천을 조직해야 한다………….. 이제는 시민운동이 더 이상 시민들을 대표하거나 대변하려 하지 말자. 시민들을 대변하는 척 하면서 중립적 심판자를 자처하지도 말자. 누구도 시민운동에게 그런 역할을 위임한 적은 없다. 시민운동은 그냥 시민운동이 지향하는 가치를 표방하고, 그런 가치에 동의하는 시민들과 함께 노력하면 된다. 그리고 시민들의 목소리가 조직되고 현실에서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지지·지원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

소셜네트워크 속에서 좀더 풀뿌리적으로

세번째, 조직하는 역할. 과거 시민운동가들이 시민 조직화에 능숙했던 이유는 단체들 간의 연대를 바탕으로 조직 동원 능력이 일반 대중보다 훨씬 컸었기 때문이다. 평범한 개인이 다수의 대중을 조직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조직 간의 연대와 시민운동 내의 인맥을 바탕으로 집회나 시위, 워크샵, 토론회 등에 참여할 사람을 조직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2002년의 촛불집회는 그러한 전통적인 조직화의 방식에 균열을 일으키는 계기였다. (평범한 개인이었던 ‘앙마’라는 아이디를 쓰는 분이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사망한 미순/효순양을 위해 촛불을 들겠다는 글을 게시판에 올리고, 그 글이 여러 사람의 공감을 얻어 2002년의 촛불집회를 촉발시켰다)

지금의 상황을 보자.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단체가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 범위보다 개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네트워크의 범위가 훨씬 넓고 다양화되었다. 그 네트워크(관계)를 기반으로 사람들은 오프라인에서 모일 것을 제안하고,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하고, 심지어 개인들이 모여서 단체가 해내지 못한 컨퍼런스를 개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 주인찾기 컨퍼런스는 뜻있는 개인들이 순수하게 자원봉사로 참여하여 스스로 이슈를 만들고, 사람들의 참여를 조직하고, 대안을 만들기 위한 컨퍼런스를 2차례에 걸쳐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과거에는 조직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들은 개인들의 네트워크와 그 속에서의 협력을 통해 만들어낸 것이다.

조직화와 관련하여 어떤 역할 모델이 필요할까? 풀뿌리운동에서 그 모델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풀뿌리운동가들은 지역 내에서 주민들에게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주민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주민들이 스스로 지역 내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왔다.

굳이 지역 내에서 뿐만 아니라 소셜네트워크 속의 개인들이 스스로의 관계망을 통해서 만나서 대화하고 협력하고 좋은 가치들을 실현하기 위해 실천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지원하는 역할, 흩어져 있는 목소리들을 모아내는 역할, 느슨한 사람들간의 연결을 강한 연대를 만드는 것을 지원하는 역할이 필요하지 않을까? 소셜네트워크 공간에서 좀더 풀뿌리적인 활동이 필요한 시점이 지금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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