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1990년 말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꾼다” 혹은 “바꾸지 못한다”라는 토론들이 있었다. 비즈니스계에서도, 사회운동 진영에서도, 학계에서도. 이런 종류의 토론은 대부분 비슷하게 전개되는데 몇가지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 첫째, 바꾼다고 말하는 사람과 바꾸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말하는 세상이 다르다. 둘째, 바꾼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크기가 다르다. 셋째, 명쾌한 결론이 나지 않는다. (사실은 그런 주제이기도 하다)

트위터의 @capcold님은 이런 토론이 “더 많은 개인에게 발화 및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매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는데 언제나 비슷한 패턴으로 흘러가는 토론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토론이 필요한 것은 이 토론과정이 여러가지 생각할거리들을 제공해주고, 우리가 미쳐 몰랐던 사실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토론에 참여하고 이 토론과정을 지켜보는 이들의 지적능력을 높여주는 것이니까.

더 많은 개인에게 발화 및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매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나타나는 현상

오늘 “튀니즈 혁명의 주역은 페북이었다”라는 글과 “나는 공유되고 싶지 않다”라는 두개의 글을 보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좀 해봤다. 사실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앞의 주어를 바꿔가면서 계속 등장했다. (아래 말 중 PC통신부터 HAM까지의 이야기는 트위터 @capcold님의 멘션에서 인용.)

  • PC통신이 세상을 바꾼다. 아니더라.
  • 팩스가 세상을 바꾼다. 아니더라.
  • 복사기가 세상을 바꾼다. 아니더라.
  • HAM이 세상을 바꾼다. 아니더라.
  • 블로그가 세상을 바꾼다. 아니다. 못바꾼다.
  • 트위터가 세상을 바꾼다. 아니다. 못바꾼다.
  • 페이스북이 세상을 바꾼다. 아니다. 못바꾼다.
  • 아이폰이 세상을 바꾼다. 아니다. 못바꾼다.

세상을 바꾼다라는 말이 꼭 이런 기술적 도구나 서비스에만 결합해서 쓰이는 것은 아니다. 영화, 다큐멘터리, 음악, 사회적기업, NGO, 투표, 정치..라는 단어들도 모두 세상을 바꾼다는 말에 한번쯤은 결합된 단어들이다. 트위터에서 @sflibrary님은 한 영화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1983년 11월 20일 한 영화가 TV전파를 타고 미국 전역에 방송되었다. “그날 이후”. 핵폭발 뒤 죽어가는 이들을 그려낸 이 작품은 대중에 큰 충격을 안겨주어 반핵운동에 뛰어들고 핵감축여론을 이끌어냈다. 한 영화가 세상을 바꾼 것이다.”

그리고 어제 “세상을 바꾼 사진들”이라는 TED영상을 보았다. 이 영상에 등장하는 조나단 클레인은 사진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사진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사진술이 생긴 이후 지금까지 사진은 사람들을 반응하게 했고, 그 반응은 변화의 원천이 되어 왔습니다.”

세상을 바꾸었다는 수많은 발명품들.

2007년 11월 영국의 인디펜던트가 일요일판에서 “세상을 바꾼 101가지 발명품”을 소개했다. 구체적인 선정 경위 등은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주관적 판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꾸었다고 언급된 발명품들이 이렇게나 많다. 와이어드(Wired)의 편집자 크리스토퍼 널(Christopher Null)은 2006년 12월에 세상을 바꾼 10가지 발명품이라면 아래와 같은 목록을 제시한 적이 있다.

  • RCA모델 630TSTV (1946년)
  • 웨스턴 일레트릭 500 데스크 텔레폰 (1949년)
  • 코닥 127 카메라 (1953년)
  • Bell & Howell Director 모델 414 8m 무비카메라 (1962년)
  • 전자레인지 (1967년)
  • JVC HR-3300 비디오카메라 리코더 (1976ㄴ
  • 아타리 2600 게임기 (1977년)
  • 소니 워크맨 TPS-L2 (1979년)
  • IBM 5150 PC (1981년)
  • 모토롤라 스타텍 (1996년)
  • RCA 모델 630TS TV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수사적 표현

도구나 서비스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에는 각자 다른 시선과 다른 크기의 세상이 존재한다. 그리고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논리적인 문장이 아니라 수사적인 문장에 더 가깝다. 그 도구나 서비스를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그것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 싶어한다. (바꾼다는 주장이 아니라 희망). 반대의 사람은 그런 도구나 서비스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을 바꾼다라는 생각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만약 세상을 바꾼다는 것의 무게를 조금 가볍게 하여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라는 말로 대체한다면 사진 한장, 영화 한편, 영상클립 하나, 책 한권, 트위터의 글 하나까지도 결부시킬 수 있다.

소셜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세상을 바꾼다 혹은 바꾸지 못한다는 토론은 결론이 나지 않는 종류의 토론이다. 토론이 불필요하다는게 아니라 만약 두가지 입장 중 하나를 지지하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수많은 문제에 마주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시작점이었느냐? 촉진점이었느냐? 발명 자체가 중요한가? 응용력이 중요한가? 아이디어가 중요한가? 실천이 중요한가?

그래서 이 문제를 누가 맞고 틀리다의 문제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는 시선이 다르고, 보는 세상의 크기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그럴 것인데 우리는 세상이 바뀌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누군가가) 바꾼 세상의 변화 만큼을 바꾸기 위해 또 무엇인(누군가가) 기다리고 있다.

소셜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현상을 제대로 관찰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도구와 서비스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 사회와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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