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운동의 방법이 달라져야 하는가?(1) – 운동이 생겨나게 되는 세 단계

운동은 어떤 단계를 거쳐서 만들어지는가? 넓은 의미의 사회운동까지 포괄해도 상관없지만 특정 지역에서의 풀뿌리 운동으로만 국한시켜 본다면 아래와 같은 세단계로 설명할 수 있다.

운동이 생겨나게 되는 세 단계

1단계 = 모인다
운동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혼자서는 어렵다. 운동이라는 것 자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전파시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일단은 모여서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과거에 사람들이 어떻게 모이는 방식과 지금 모이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인터넷은 과거 오프라인 인맥 중심의 모임에서 좀더 개방적이고 낯선 관계 아래에서도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이게 하는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2단계 = 떠들다
떠든다는 것은 대화를 의미한다. 모든 운동은 두 사람과의 대화로부터 시작된다고도 한다. 토론과 비판, 설득도 대화가 기본이고 지식이나 정보의 공유도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생산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주변 환경이 필요하다. 단지 회의실에 모여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해서 생산적인 대화가 오고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환경과 방식에 변화를 주면 대화의 내용도 달라지게 된다.

3단계 = 꿈꾸다
사람들이 모여서 관계를 맺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함께 꿈을 꿀 수 있는 조건은 일단 만들어진 것이다. 단지 꿈을 같이 꾼다고 운동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역할 분담과 협력은 같은 말이 아니다. 운동은 역할을 분담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는 것이다. 진정한 협력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우리 협력해봅시다”라는 말이 아니라 협력을 위한 기술과 환경이 제공되어야 한다.

운동이 시작되는 위와 같은 세가지 단계에 있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이다. 사람들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이 있어야 하고 ‘커뮤니케이션’으로 오고가는 정보를 매개해주는 ‘미디어’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모이고 떠들고 꿈꾸는 것이 사적인 취미활동이 아니라 공적인 활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과 미디어 환경의 변화

사람들이 모이고 떠들고 꿈꾸는 ‘환경’과 현재 채택하고 있는 모이고 떠들고 꿈꾸는 ‘방법’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환경 자체가 변화했기 때문에 당연히 모이고 떠들고 꿈꾸는 환경이 달라져야 한다.

하지만 방법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다. 이 부조화가 조직의 위기, 운동의 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새롭게 변화된 환경에 적합한 새로운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환경 변화의 상당 부분은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환경의 변화에 기인한다. 간단하게 몇가지 의미 있는 변화의 지점들만 살펴보자면 아래와 같다.

사진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80년대에 사람들은 거리 집회와 시위 공간 속에서 현실을 바꾸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집회와 시위를 조직하기 위해 모이고 떠들었다. 그 공간에서의 미디어는 연단의 마이크였고 거리에 뿌려지는 유인물이었고 대자보였고 깃발이었고 현수막이었다.

90년대는 기자회견, 토론회, 성명서, 논평, 간담회 등과 같은 방식을 통해 전달된 조직의 견해가 신문과 방송 등 전통 미디어와 결합하여 영향력을 발휘했던 시기이다. 현재까지도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신문과 방송이라는 전통미디어를 매개로 정보는 간접적으로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2000년대에는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던 시기이다. 운동도 예외는 아니다. 2000년에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이 있었다. 한가지 기억할만한 변화를 꼽으라면 낙천/낙선 대상자 명단이 그 이전처럼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배포되고 대중들은 언론을 통해서만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홈페이지에도 동시에 올라가고, 대중들은 그것을 직접 내려받아서 확인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은 여전히 전통 미디어에 의존은 했으나 운동단체가 대중에게 직접 정보를 전달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 시기였다. 2002년에는 미군 장갑차에 의해 희생된 두 여중생을 위한 촛불집회가 있었다. 이 촛불집회는 앙마라는 아이디를 가진 한 네티즌의 제안에 의해 시작되었다. 변화의 지점은 전국적인 연대 조직이 아닌 한 개인이 게시판에 올린 제안글이 여기저기 퍼져나가면서 전국적인 촛불 집회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가 있었다. 2002년 촛불집회와의 차이라면 한 개인의 제안이 아니라 인터넷 카페와 아고라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에 모인 개인들의 느슨한 네트워크가 초기 촛불집회를 주도했다는 점이다. 역시 운동조직이 주도한 것은 아니었다. 5월 2일, 1차 촛불문화제는 이명박탄핵국민운동본부가, 2차 촛불문화제는 미친소닷넷 인터넷카페가 개최를 했는데 수개월 동안 촛불집회의 주역은 소울드레서, MBL파크, 82쿡닷컴 등 인터넷카페였와 아고라의 이용자들이었다.

이런 인터넷 카페들은 촛불집회를 위해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곳들이 아니다. 2000년 초기부터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모여서 전혀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떠들어왔던 개인들의 네트워크는 이미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었다.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사회적인 계기가 마련되자 인터넷 카페를 넘어 광장의 카페로 나온 것이다.

그리고 2010년 이후 사람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라는 휴대용 미디어 도구가 쥐어졌다. 스마트폰 속에는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같은 관계 중심의 미디어 서비스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제 사람들은 2008년과는 또 다른 방법으로 모이고 떠들고 꿈꾼다.

이제는 인터넷 카페라는 동회회 성격의 지속적인 네트워크가 아니라 느슨한 관계망 속에 따로 존재하는 개인들이 사안에 따라 모이고 떠들고 꿈꾸고 헤어지는 과정을 반복한다. 사람들은 온라인에서만 만나지 않는다. 온라인에서의 관계와 대화들이 오프라인의 관계로까지 이어진다. 기존의 조직적인 틀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사람들은 만나게 된다.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과는 또 어떻게 모여서 떠들고 꿈꿀 것인가? 과거의 방식으로 가능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 변하고 있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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