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모임”이라고 말하면 흔히 돈 떼먹고 도망간 계주가 떠올라서 부정적 인식이 강한데 사실 계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 않을 뿐이지 여러 사람이 같은 목적 아래 모여있다면 그것 자체가 계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 “계”는 순수 우리말이라고 한다. (참조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굳이 한자로 따지자면 회(會)·도(徒)·접(接)·사(社)라고 하고….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우리나라의 풍속으로서 시골의 모든 향.읍.방.리에 계가 만들어져 있다”라는 말이 있으니 어째튼 좋은 전통이었고, 전통적인 협동조합의 성격까지 갖추고 있는게 “계”이다.
영화와 계모임을 연결하다.
이 “계”에 대해서 최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제주에서 교육문화카페 자람이 만들어지고 나서부터이다. 이곳에서 어떤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면 좋을까 고민중이었는데 인문학 강좌에 대한 요구가 의외로 많았다.
그런데 두가지 지점에서 막히더라. 하나는 만약 강좌를 개설한다고 하면 그걸 누가 계속 끌고 갈 것인가? 강좌를 기획하고 참가자를 모집하고, 지원하는 역할은 혼자 하고 참가자들은 그냥 듣고만 가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다. 이 구조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또 한가지는 재정이다. 제주는 특히나 육지에서 강사를 모셔온다고 하면 최소의 비용이 꽤 된다. 저녁시간에 강의를 요청한다고 하면 비행기값에 숙박비에, 식사비에, 거기에 강의료까지. 어디서 프로젝트를 받지 않는 이상 이 비용을 모아놓고 기획할 수도 없고, 참가자들의 수강료만으로도 충당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고민을 할 때쯤에 문득 떠오른게 “인문학강좌계모임”이다. 이 계모임에 대한 기본 구상은 이렇다.
- 매월 한차례씩 인문학 강좌를 듣고 싶은 사람 30명을 모은다. 이 사람들이 월 1만원 계비를 낸다.(만약 격주로 한다면 2만원)
- 30명이 모여서 자신의 관심분야, 듣고 싶은 강의,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서로 이야기해본다. 두차례 정도의 모임을 통해 총 30개 강좌에 관한 기획을 마친다.
- 3개월 단위로 강사를 섭외하고, 각 강좌를 책임질 계원을 지정한다. 최대한 자신이 관심있어하는 분야에 배치한다. 이 계원은 그날만은 좀 일찍 와서 강의에 필요한 제반 준비를 한다.
- 총 30개월 동안 30명의 이야기를 듣는다. 계원은 1만원 낸걸로 수강료를 대신한다.
이렇게 하면 지역 내에 지속가능한 인문학 강좌를 개최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기본 구상이었다. 계속 마음만 먹고 언제 시도할지 고민중이었는데 그 사이에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보니 독립영화 이야기가 꽤 많이 전해지더라. 근데 제주에서는 상영하지 않더라.
문득 꼭 인문학강좌만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 독립영화를 정기적으로보는 계모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그때 이미 제주에서 혜화동이라는 독립영화 공동체상영을 추진했던 다움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제안을 했다. 그리고 성사가 되었다.
(가칭)제주독립영화공동체상영 계모임이 만들어지고 총 26명의 계원들이 모였다. 독립영화모임에서는 그게 필수적이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독립영화 소식이 꽤 많이 올라온다. 어느 지역에서 시사회가 있었다느니, 공동체 상영을 한다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