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광주에서 “청소년과 소셜미디어”라는 포럼이 열린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 초대받아 “SNS 에서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는데요. PPT발표자료를 준비하기 전에 생각을 정리한 사전 원고입니다. 사실 청소년쪽의일을 해보지도 않았는데 지인의 부탁으로 발표를 하게 되어서 굉장히 고민이 많았던 주제인데요. 며칠을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맨 뒤에 썼듯이 “SNS에서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일 중 첫번째 일은 청소년이라는 정체성을 벗어버리는 것이다.”입니다.
#. 1
“게임중독보다 심각한 것은 어른들에 의해 강요된 청소년들의 공부 중독이다.”우리는 모두 무엇인가에 중독되어 살아가고 있다. 책에 중독된 사람, 신문에 중독된 사람, 드라마에 중독된 사람, 축구에 중독된 사람, 일에 중독된 사람, 연예인에 중독된 사람, 특정 사상에 중독된 사람까지도
일반적으로 무엇인가에 빠져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는” 상태를 중독이라고 한다. 여기서 “중독”이라는 말과 깊은 관련이 있는 단어는 바로 “정상적으로”이다. 따라서 중독이라는 말을 쓰기 위해서는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정상과 비정상은 상대적이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고, 지역에 따라 달라지고,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과거에는 정상이었던 것이 지금은 비정상적인 것들도 있고, 과거에는 비정상적이었던 것들이 지금은 정상적인 것들도 있다.
“SNS에서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것”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서 굳이 “중독”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은 “청소년”에 덧씌워진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그 편견 중 하나는 아직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다라고 하는 어른들의 인식이다.
여러가지 사회적인 중독 현상 중에서도 꽤나 심각하게 거론되는 것이 인터넷 중독이나 게임 중독이다. 이 두가지 중독은 모두 청소년과 관련이 있는데 청소년들은 아직 정상적으로 사물을 판단할 수 없다라는 의심이 심각성을 높이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유를 거론하자면 인터넷이나 게임의 세계를 어른들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혹은 “비정상적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세계에 대해 아직 “정상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일단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SNS에서 청소년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넓게는 인터넷, 좁혀서는 SNS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정상적으로 이 세계를 판단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 2
중독과 비슷하지만 어감이 다른 단어가 있다. 바로 “몰입”이다. 몰입은 깊이 파고들거나 빠져드는 것을 말한다. 어떤 현상, 사물, 세계를 정말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몰입” 혹은 “몰입해보려는 노력”을 해봐야 한다. 청소년들과 함께 SNS를 활용하여 즐겁고 가치 있는 일을 해보고자 하는 어른들이 해야 할 일들 중 하나다.
SNS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을 포함하여 다양한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수단들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SNS가 어느 순간 불쑥 나온 서비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ㅡ 책
ㅡ 신문과 잡지
ㅡ 라디오
ㅡ TV
ㅡ PC통신
ㅡ 이메일
ㅡ 웹사이트
ㅡ 메신저서비스
ㅡ 카페 서비스
ㅡ 개인화 서비스
ㅡ 소셜미디어
ㅡ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트위터, 페이스북 등)
ㅡ 소셜뉴스
ㅡ 클라우드서비스
ㅡ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의 약자인 SNS는 온라인 공간에서 형성된 사회적 관계를 기반으로 정보와 생각, 경험 등을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와 생각, 경험 등을 생산하고 공유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미디어 플랫폼을 의미하는 “소셜 미디어”와 차이가 있다면 “관계”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관계”가 없다면 SNS에서는 고립된 섬이 된다. 혼자서 자신의 정보, 생각, 경험, 관점 등(콘텐츠)를 생산할 수는 있지만 공유할 수 없다. 공유되지 않기 때문에 마치 혼자서 방에 앉아서 말하는 독백과 같다. 하지만 관계가 형성되면 그 관계망을 따라 정보가 흐르고, 생각과 경험, 관점 등을 나눌 수 있게 된다.
정보는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어떤 미디어를 수용하느냐에 따라 전해지는 정보가 달라지기 때문에 미디어는 사람들의 의식과 사회적 여론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미디어라 할 수 있는 SNS에서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나에게 전해지는 정보의 내용과 정보의 질, 양이 달라진다.
인터넷이 대한 편견 중 하나가 바로 인터넷은 나쁜 정보가 흘러다니는 곳, 거짓 정보들이 사실인 양 둔갑하는 곳, 악플 때문에 상처받는 곳이라는 시각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인터넷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그런 현상들이 있다고 해서 우리는 사회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자발적인 규범이든, 법적인 제도 등을 통해 부정적인 측면들을 줄이고, 긍정적인 가치들을 위해 살리기 위해 노력한다.
전화가 사기에 이용된다고 전화라는 통신수단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지 않듯이 인터넷은 이제 특정 서비스가 아니라 그 자체가 플랫폼이 되었다. 그 자체가 생활 공간이 되었다. 그 자체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공간이 되었다. 대세 혹은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면 그것을 즐기거나 혹은 유용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 3
아래 사례들은 실제 SNS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일이거나 개인적으로 청소년 시기였다면 혹은 청소년들과 함께 일한다면 만들어보고 싶은 일들을 정리한 것이다. 굳이 청소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례들을 앞 부분에 정리한 이유는 뒤에서 설명할 예정이다. ( 발표 이후 대화 혹은 토론을 위한 참고할만한 사례이기도 하다)
ㅡ UN재단의 트위터 메시지 기부
ㅡ 당신의 과학적 재능을 기부해주세요.
ㅡ 트위터와 구글문서의 결합
ㅡ 꿈을 찾아가는 트위터 프로젝트
ㅡ 청소년 내맘대로 백과사전 프로젝트
ㅡ 나만의 지도 만들기 프로젝트
ㅡ 도서관 해적 프로젝트
ㅡ TED를 활용한 토론 프로젝트
#. 4
“SNS에서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라고 해서 꼭 “청소년들만” 할 수 있는 일로 구분지을 필요도 없고 실제 그렇게 구분되어지지도 않는다. 우리가 보통 청소년이라고 하면 학교와 학원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한 수업, 공부, 교육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데 이런 고정된 인식 자체가 청소년들이 SNS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제한한다.
SNS는 말 그대로 사회적 관계망이다. 따라서 SNS에서 청소년들은 학교와 학원과 같은 공간 혹은 또래의 커뮤니티에서의 관계를 벗어나고, 부모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온전히 ‘사회적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사회적 관계라고 하는 것은 나와 다른 연령대의 사람, 나와 다른 일을 하는 사람,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관게를 맺는 일이다.
SNS에서 청소년들은 학생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사회적으로 규정된 청소년이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독립된 한 인격체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대화하고,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에 참여하면 된다. 이 일이 전제되지 않고 특별한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기란 쉽지 않다.
앞서 언급한 “몰입”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물 흐르듯이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다. SNS에서 듣고 말하고 대화하고 관계맺고 협력하는 것이 억지로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즐겁게 받아들여지면서 자연스럽게 물흐르듯이 하게 될 때 “할 수 있는 일”을 넘어 “사회적인 가치를 지닌 일을 도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SNS에서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일 중 첫번째 일은 청소년이라는 정체성을 벗어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