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그머니 그분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불안감

벌써 이슈로 삼기에는 지나버린 이야기이지만 몇 주 전에 SBS의 정성근씨가 뉴스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의 취임식에 대해 한마디 했다.
 
“새 서울시장이 온라인 취임식을 열었습니다. 인터넷 시대 젊은이들과 소통하겠다는 발상, 신선합니다. 또 당장 취임식 경비를 줄였으니 일석이조입니다. 그렇지만 멋진 취임식 기대한 서울시민도 분명 적잖았을 겁니다. 어떤 점에서는 시민의 권리 뺏은 건데, 이게 진보는 아니길 바랍니다.”

얼마전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해 민주당 시의회 원내대표인 김명수 의원은 박원순 시장의 파격행보와 관련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목욕탕의 수증기와 같은 인기에 취해 내부의 상처는 버려두고 시정 바깥에서 더 많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민주당 의회와의 소통과 협력도 단절 될 것”…..”의회와의 소통과 협력 없이는 결코 성공하는 시정을 이룰 수 없음을 가슴 깊게 새겨야 할 것” ( 관련기사 : 민주당 시의원, “박원순 시장, 부끄럽다” 맹공 (오마이뉴스) )

두 경우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불안함이다. 진보라고 하는 것이 운동권의 용어가 아닌 상식의 용어가 되다보니 진보를 까야 자신의 존재감이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불안감이고, 박원순 시장이 시의회를 제껴두고 직접 시민들과 소통하는 것을 통해 오랫동안 지속해왔던 폐쇄적인 연결끈이 떨어질 것 같아서 호통 한번 쳐보는 마음도 불안감이다.

국민 중 8%밖에 쓰지 않는 트위터가 인터넷 매체와 포털을 거치면서 영향력 커졌다고 말하는 조선일보나 인터넷은 괴담천국으로 규정하고 싶은 동아일보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의 폐쇄적인 관계망과 사고방식은 점점 초라해진다는 것을 그들은 아직 모르는 것 같다.

트위터를 씹으면서 자기 기사를 트위터로 퍼날라달라고 버튼을 붙여놓는 조선이나 동아가 우습기는 매한가지지만 뭐 이런 일은 새로운 소통의 기술, 미디어가 출현할 때마다 있어왔던 일이다. 언론사의 논설위원이 인터넷은 신문을 결코 대체할 수 없다며 그걸 인터넷에서 퍼트려서 알아주기를 기대하는 마음과 같은 것이다. 중세시대 활판인쇄술의 발명으로 직업을 잃게된 사자생(Copyist, 책을 베껴쓰는 사람)을 찬양하기 위해 한 종교인은 “사자생에 대한 찬미”라고하는 글을 썼다고 한다. 그는 사자생이라는 직업의 고귀함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그 글을 활판인쇄했다지.

시대의 흐름이라고 하는 것은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그 어떤 것도 되돌리기 힘들다는 것이 수없이 증명되어 왔는데도 이런 류의 사람들이 계속 같은 오류를 저지르는 것을 보면, 나중에 이 흐름이 결국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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