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플랜B] ③운동과 활동가의 범위가 확장되고 있는 시기

앞 글에서 언급한대로 조직 내의 의사결정권한이 실질화되지 않고, 활동가의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이 부족한 현실은 역으로 조직에서 상근하는 활동가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에 속하지 않은채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시민활동가’를 선택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생계는 일반 직장이나 개인적인 능력으로 해결하고 그 외 시간을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실현해보고자 하는 시민활동가들 말이다.

얼마전 스스로를 백수로 규정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다양한 열린 배움의 공간에서 수업을 듣고, 여러 커뮤니티를 넘나들면서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운동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자 하고, 실제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운동을 기획하고 있는 청년을 본 적이 있다. 그에게 그런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단체에서 한번 일해볼 것을 권유해보기도 했으나 그는 내키지 않다고 했다. 몇년 전에 대학 졸업후 시민단체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는데 일만 많을 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받아줄 문화가 못된다고.

또 한 사람은 시민사회를 지원하는 중간조직에서 일하지만 그곳은 정말 생계를 위한 목적일 뿐 하고 싶은 일은 조직 밖의 여러 커뮤니티들을 통해서 실현하고 있다고도 했다. 전통적인 운동조직에 속해 있지는 않지만 조직 밖에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새로운 부류의 활동가 그룹이 있다. 자연스러운 현상임과 동시에 이는 지금의 운동조직이 과연 이런 부류의 활동가들을 수용할 수 있는 적합한 그릇이 되는가도 되물어야 할 시점이다.

나는 생계를 위해 활동가로 산다. 정말 그렇다. 매달 월세를 내고 어쩌다 누군가에게 밥을 사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가끔은 능력 있는 고객님이 되기 위해 비영리단체와 시민단체를 오가며 먹고 산다. 물론 가족 중 내가 하는 일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지만. – <나는 생계를 위해 활동가로 산다> 중에서 

청년들에게 시민단체 활동이 자기 활동으로 안 느껴진다면, 청년들에게 시민단체 일은 말 그대로 ‘일’이다. ‘노동’이다. 청년활동가들은 이미 짜여진 조직에 들어가서 실무를 담당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기획하고,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내면서 만족을 하면 다행이겠지만, 실무에 시달리고 경직된 단체에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시민단체에서 청년들이 사라지는 이유> 중에서

나는 활동가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나 활동을 하며 사는데, 어떤 활동은 활동이고 다른 활동은 활동이 아닌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 활동가라는 말이 쓰였던 건 비민주적이고 기득권화된 사회구조에 맞섰던 시민사회운동의 역사가 있어서이다. 정치나 경제, 문화 모두가 기득권에게 독점된 상황에서, 국가기관이 맘대로 사람을 연행하고 폭행하는 폭력에 노출된 상황에서는 평범한 시민들이 자기 소신껏 활동하기 어렵다. 활동가는 억압적인 사회에 균열을 내고 그 틈을 벌여서 시민들이 움직일 공간을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 그런 의미에서 활동가라는 존재가 사회적으로 요구되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활동가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 듯하다. 여전히 활동가라 부르는 곳도 있지만 실무자라는 말을 더 자주 듣는다. 활동(活動)과 실무(實務)의 차이는 무엇일까? –  <활동가는 보이지 않고 실무자만 버티는 운동?> 중에서

많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무엇을 위해, 왜 운동을 하고 있는가? 운동의 당위성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기존의 운동권들이 남겨놓은 실무에 내가 잠식당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활동비도 겨우 한 달을 살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다른 활동가들을 만나 이야기해보면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활동가가 나 혼자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나를 버리고 이곳에 투신하거나, 이곳에서 도망치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다 활동가라는 것과 운동이라는 걸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중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운동조직’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지만 ‘운동’ 그 자체는 더욱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아래 하승우씨의 말처럼, 시민사회운동의 역사에서 조직의 활동가들만이 해왔던 일이 있다.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이런 ‘시민활동가’의 모습을 활동가의 미래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조직이 이런 ‘시민활동가’와 같은 사람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이것은 어느 것이 더 좋은 현상이라거나 어느 쪽을 더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운동의 범위를 과거 조직 운동 중심에서 좀 더 확장시킬 필요가 있고, 활동가의 범주도 조직 내에서 상근하는 활동가를 넘어 조직에 속하지 않은 시민활동가들로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서 개최하는 ‘전국시민운동가대회’나 한국환경회의에서 개최하는 ‘전국환경활동가대회’도 이 점을 충분히 고려했으면 좋겠다. 두 행사 모두 전국 단위로 개최되는 시민운동가와 환경활동가들의 꽤 큰 규모의 행사다.  그동안은 주로 시민단체와 환경단체에서 상근하는 활동가들이 참가했다. 전국환경활동가대회 소개페이지에도 활동가대회를 “해마다 전국의 환경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함께 환경운동의 철학과 담론을 토론하고  제기되고 있는 여러 환경문제에 대한 전략을 짜며 환경활동가들의 소통과 연대를 만들어가는 장”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두 행사를 준비하는 측에서 참가대상을 단체에 소속된 활동가로 제한하지 말고 좀 더 확대해서 조직 밖에 존재하는 여러 시민활동가들까지 수용할 수 있기를 있기를 기대해본다. 참가대상이 확대되면 프로그램의 내용이 달라져야 할 것이고, 교류와 논의의 내용도 다양해질 것이다. 그리고 조직에 속한 상근활동가들과 조직 밖에 존재하는 시민활동가들을 서로 이어주는 교류의 장 정도는 있어야 서로 고립된 섬으로 남아있지는 않을테니까. <다음에 계속>


[각주 플랜B] 시민운동플랜B를 통해서 알게된 것들<시민운동플랜B>에 1년 6개월 동안 올라온 50여개 정도의 글을 보고 생각난 것들을 정리해봤습니다. 그 내용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학습공유회 [우리 이대로 괜찮은걸까?]에서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다시 재정리하여 나눠서 게재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플랜B에 올라왔던 글들 속에는 지금 시민운동에 대해 토론해볼만한 내용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 글들을 인용하면서 떠올랐던 생각들을 정리했기 때문에 제목은 [각주플랜B]로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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