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플랜B] ⑤단순히 나이와 경력의 차이를 넘어 존재하는 것들

조직에 들어온 신입활동가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상황이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이미 결정된 일들을 실무적으로 처리하는 역할에 국한되고, 뚜렷한 의사결정도 없는 상황은 지속되어서 답답하고, 조직 내에서 소모되어간다는 느낌이 들고, 조직이 활동가의 성장을 돕는데 소홀히 한다는 등의 이유로 그만둔다. 최근에 만난 한 신입활동가는 운동은 계속 할 생각이나 현재와 같은 조직에서는 일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문화의 차이였다. 조직 문화 자체가 지금 시대와 너무 맞지 않고 본인의 감수성을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폐쇄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조직의 신입활동가들은 계속 바뀐다. 청년활동가나 혁신활동가 지원, 인턴 제도처럼 지방자치단체나 중간지원조직의 인력 지원 프로그램이 이런 상황을 더욱 고착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살펴봐야 한다. 6개월, 10개월 단위로 잠시 일하다가 나가는 활동가들에게 제대로 된 일을 맡기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그 활동가만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프로그램들 운영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실무적인 일들만 맡기게 된다. 반대로 공익적 가치를 보고 시민사회운동에 관심이 있어 지원한 이들은 그 짧은 시간 안에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 적응할 수 없는 문화를 접하면서 자신의 전망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

이미 여러 사람이 지적했다시피, 청년세대의 역할이나 정체성이 결정된 바를 ‘따르는 자’로만 배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르는 자로 ‘배치’되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 한다는 것은 시민운동의 역사와 내용 자체에 대한 거부를 뜻하지 않음은 분명하다. 형식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그리고 때론 형식이 내용보다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한다. – 우리는 서로 닮아갈 것이고, 서로의 낯빛을 책임져야 한다. 중에서

원래 단체의 비전에 마음을 움직이며 후원해 주는 사람들에 대한 진정성을 지키려는 마음들은 점점 설 곳을 잃어갔다. 착한 마음으로 세상을 위해 일하자라는 깃발아래에서 가장 힘든 건 무엇보다 계약직(프로젝트직) 문제일 것이다. 내 신분이 불안정한데 그런 진정성까지 가지며 일해야 함이 힘들다. – 명랑하기도 때로는 버겁다. 중에서 

2012년부터 제가 맡아서 했는데, 임기가 1년인데 다음 맡을 사람이 없어요. 그 와중에 작년에는 사람이 너무 많이 나가 버렸어요. 연차가 저랑 비슷한 간사들 상당수가 나갔어요. 3년차 이상 7년차 사이 일 좀 한다하는 간사들이 10명 이상 집중적으로 나갔죠……. 국회비서관으로 가는 경우도 있고. 공부하고 다시 오겠다 해서, 로스쿨 공부를 하고 노동법을 공부하는 분도 있고. 아예 가정주부가 되는 경우가 있죠. 전공을 살려 일반 기업에 취업을 하겠다고 나가는 경우도 있고. 저랑 동기 중에 한명은 집 짓는 거 배우러 다녀요. – 중견씨 1호로부터 중에서

조직의 허리 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중견활동가들가 없다는 이야기도 곳곳에서 들린다. 중견씨 1호가 일하고 있는 단체에서는 지난 1년 동안 3년~7년차 사이의 중견활동가들 10명 이상이 집중적으로 나갔다고 한다. 안타까운 점은 그만둔 중견활동가들이 다른 운동분야로 가거나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새롭게 무엇인가를 개척해가는 것이 아니라 국회비서관이나 공부, 주부, 기업취직, 그리고 기술을 배우는 등 일의 내용을 바꿨다는 점이다. 몇 달 전 금요일 오후, 은평구에 갔다가 정보공개센터 상근자 한명을 만났다. 살고 있는 동네에 있는 ‘청소년 문화의 집’에 들러서 아는 활동가와 차를 한잔 마시고 동네 한바퀴 산책중이었다. 일하는 시간일텐데 어쩐 일이냐고 물으니, 얼마 전부터 격주 4일제를 시행해서 쉬는 날이라고 했다. 그 표정이 참 좋았다. 정보공개센터는 금요일 오후 시간을 자유롭게 쉴 수 있는 제도를 시행하다가 작년  9월부터는 아예 격주 4일제를 시작했고, 올해부터는 전면적인 주4일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정진임씨는 주 4일제를 시행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상황은 더 나아졌다고 했다. (우리가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이 근무방식은 언제부터 존재했던 것일까?)

그런데 우리는 왜 기성의 주5일 업무, 9시 출근- 6시 퇴근, 잔업과 야근을 떨치지 못하는 걸까? 무엇 때문에 그걸 고수하고 있는 걸까? 일하다 죽을 것도 아닌데 자유롭게 사용하는 시간을 좀 가져도 되지 않을까? 노동시간 단축해야 한다고 말만 하지 말고 우리가 먼저 노동시간이 단축된 삶을 살아서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낮에 퇴근해도, 일주일에 4일만 출근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단체도 별 탈 없고, 활동도 별 탈 없다. 더 나아졌으면 나아졌지,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해 보니까 그렇다. – 주4일제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중에서 

굉장히 아쉬웠던 부분은 시민단체가 사회를 좀 더 진일보하게끔 바꾸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게 목표라면 기존 기업들 얘기 하면서 그런 규율을 가져야 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좀 더 공격적으로 나가서 진보적인 근무체계를 만들고 그걸 사회로 알림으로써 파장을 일으킬 수 있게 노동환경이나 근무조건 등의 도전을 계속 해야 되요. 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보수적인 분위기가 컸던 것 같아요. – 근자씨 3호로부터 중에서 

저는 회의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회의가 생산성을 떨어트린다고 생각해요. 회의를 위한 회의인 경우나 특히 정례적으로 하는 회의들. 회의를 하고 나면 일이 더 많아지잖아요.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생기는 일이 많아지는 것도 문제인데, 그러다 보면 방어적이게 된다고 해야 할까, 그런 게 더 문제인 것 같아요……… 최근에 제가 금요일 오후에 쉬는 방안을 제안했거든요. 팀장들 회의에서는 상당한 반론이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저희가 주5일제도 일찍 도입한 편인데, 그 때도 토요일 날 쉬는 게 가능하겠냐 같은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고 해요.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라고. 연차 오래된 선배들은 관리자의 마인드가 있어요. 그렇게 해서 일이 제대로 되겠냐는 거죠. – 중견씨 1호로부터 중에서 

단순히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활동이라고 하는 것이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것만이 아니라면 사무실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하는 시간, 좁게는 사무실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고 일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잘 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은 여러 조직, 기업에서도 이야기하는 점이다. “지금 친구들은 예전과는 달라서요”라는 말, “예전처럼 운동에 헌신하지도 않고, 열정도 없고, 자기 생활이 먼저”라는 등의 말은 그냥 푸념일 뿐이다. 지금 친구들은 예전과는 달라졌는데 왜 이 조직은 예전과 달라지지 않았는지를 살펴보는게 우선이다. 활동가의 권한의 문제나 조직의 의사결정구조가 지금 시대와 맞지 않는 것처럼 일하는 방식, 노동조건, 근무환경까지도 지금은 달라져야 한다. _ 이 이야기는 6번째와 7번째 글에서 다루기로 하고 <다음에 계속>

[각주 플랜B] 시민운동플랜B를 통해서 알게된 것들<시민운동플랜B>에 1년 6개월 동안 올라온 50여개 정도의 글을 보고 생각난 것들을 정리해봤습니다. 그 내용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학습공유회 [우리 이대로 괜찮은걸까?]에서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다시 재정리하여 나눠서 게재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플랜B에 올라왔던 글들 속에는 지금 시민운동에 대해 토론해볼만한 내용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 글들을 인용하면서 떠올랐던 생각들을 정리했기 때문에 제목은 [각주플랜B]로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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