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시민운동플랜B>에 처음 썼던 글이 “만약 한달 후에 조직이 문을 닫는다면 무엇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가?”였다. 왜 우리는 조직을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본 이유는 그동안 만났던 많은 활동가들이 조직을 힘겨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생각을 다시 한번 그대로 정리해보자면 이런 거다.
우리는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힘을 모아 에너지를 분출시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조직을 만든다. 사람들의 힘을 모아서 에너지를 분출해내는 그릇, 그것이 곧 조직이다. 그리고 시민사회조직은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과 관심사를 기반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혈연과 지연, 학연 등에 기반한 폐쇄적 조직이 아닌 열린 조직, 민주적인 조직을 지향한다. 조직의 개방성과 민주성에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고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성이 더해져 사회적 신뢰가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조직은
- 공공의 이익과 관심사를 공유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기에 적합해야 하고
- 그 사람들이 힘을 모으고 에너지를 발산시키는데 적합해야 하고
- 일시적인 모임이나 동호회 등에 비해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해야 하고
- 조직 구성원들이 조직을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를 수용하기에 적합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조직은 위와 같은 조건에 적합한 존재일까?
커뮤니티의 딜레마 – 성장과 발전, 그리고 퇴행과 소멸
취미를 공유하는 커뮤니티를 한번 생각해보자. 5년 전 만들어진 한 산악회가 있다. 처음 몇 년간 이 산악회는 회원이 계속 늘어서 주말마다 버스를 몇 대씩 대절해서 산에 다닐만큼 활기가 넘쳤다. 그러기를 3년, 그 시점부터 회원들의 참여가 저조해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거다. 생업이 바쁘거나 등산에 흥미를 잃었거나 이미 가볼만한 산은 다 가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훨씬 흥미로운 산악회를 알게 되어서일게다.
산악회의 회장과 총무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어떻게 하면 회원들이 꾸준히 나오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신입회원을 늘릴 것인가? 회원들을 위한 이벤트도 준비하고 이 문제를 주제로 임시임원회의도 개최한다. 회장과 총무는 이게 꼭 자기 탓만 같다. 최근에는 회장과 총무 뿐만 아니라 다른 임원들까지도 산악회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간다.
애초에 이 산악회를 만든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등산을 함께 하면서 건강도 챙기고 자연을 만끽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산에 오르는 것을 통해서 산악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였을까?
지금 우리는 왜 조직을 만들었던 것일까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모든 조직은 성장과 퇴행을 반복한다. 그러다가 소멸되기도 한다. 조직을 만든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없어지기도 하지만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도태되기도 한다. 조직은 계속 유지-성장해야 한다는 관념같은 것이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다. 그 생각이 넘쳐서 조직을 만든 애초의 목적은 사라진 채 ‘조직의 존재 자체가 곧 조직의 존재 이유가 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지금의 조직, 과연 운동을 담기에 적합한 그릇인가?
십 수년 전,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만나려면 조직이 필요했다. 조직은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기도 하고, 외부의 바람의 막아주는 울타리이기도 했다. 조직 결성 이외의 방법은 생각하지 못했다. 조직은 사회적 신뢰를 얻고 사람들을 모으고 힘을 합쳐서 에너지를 분출하는데 적합한 그릇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조직은 과연 그러기에 적합한 곳인가?
대부분의 조직에는 사명과 비전, 핵심가치, 사업들이 있다. 그것을 위해서 조직은 존재한다. 그런데 만약 한 달 후에 조직이 문을 닫는다면? 상근자도 없고, 사무실도 없고, 회원도 없다. 남은 것은 애초에 조직을 만든 사명과 비전 뿐이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조건이다. 무엇부터 다시 시작할까? 우리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조직을 다시 만들게 될까?
우리가 늙은만큼 조직도 늙었다.
“시간이 지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당신과 내가 만났던 때는 바로 불의 시대였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에 온몸이 순식간에 타버릴 것을 알면서도 뛰어들었던 그 시기는 바로 1990년대, 바로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입니다. 당신을 처음 만났습니다. 당신도 나처럼 젊었습니다. 당신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몸짓 하나하나에 황홀했습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나를 삼킬지도 모르는 불꽃에 뛰어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중요한 것은 제 몸이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쉬지 않고 뛰어다녀도 그 다음날이면 다시 에너지가 솟아올랐으니까요.” _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합니다. – 카스아줌마> 중에서
카스아줌마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글은 “시민운동, 당신이라 불러도 괜찮겠지요?”라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20년 전 당신을 처음 만났는데 그때는 당신도 나처럼 젊었다고 이야기한다. 20년이라는 시간,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 정권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고 IMF로 우리 경제구조가 급격하게 변하면서 삶의 양상들도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고, 시민운동의 파트너와 같은 역할을 했던 언론은 거의 완벽하게 변해버렸다. 20년 전에는 들어가보지 못했던 인터넷 세상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의 변화에 맞춰 운동하는 사람들도 바뀌었고, 운동의 의제와 방식도 많이 바뀌었다. 여전히 불만과 걱정의 목소리도 크지만 그래도 시대의 변화에 맞춰 운동도 조금씩 변화를 해왔다. 그런데 유독 조직만은 그대로다. 조직이 변했다는 것은 조직의 결합 주체, 운영과 참여 방식, 의사결정권을 중심으로 한 조직구조 등이 변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부분에서는 변한게 별로 없어 보인다. 하승우씨의 말처럼 변화는 있을 수 있으나 체감할 수가 없다.
“나는 단체들의 참여구조나 운동방향을 근본적으로 되짚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시민단체들의 내/외부 구조나 방향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살펴보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변화는 있을 수 있으나 체감할 수가 없다. 큰 시민단체들이 언론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경향도 바뀌지 않았고. 그들이 다른 작은 단체의 활동을 ‘등 단체’로 만들어버리는 경향도 여전하다. 자기 영역을 전문화한다는 빌미로 자기 영역에 갇히는 현상도 여전하다……(중략)…. ….전문가와 활동가들이 중앙언론(지역풀뿌리언론은 배제되었다)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이슈파이팅을 하는 모습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법과 제도를 바꾼다는 명목으로 전문가들이 단체의 주요한 요직을 차지하며 중앙/지방정부와 협상을 벌이는 방식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열심히 회비를 납부하거나 회원 동아리를 꾸리는 것 외에 딱히 회원의 역할이 없는 단체의 내부구조는 얼마나 바뀌었을까?” _ <시민사회없이 시민운동이 성장할 수 있을까? – 하승우> 중에서
[각주 플랜B] 시민운동플랜B를 통해서 알게된 것들<시민운동플랜B>에 1년 6개월 동안 올라온 50여개 정도의 글을 보고 생각난 것들을 정리해봤습니다. 그 내용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학습공유회 [우리 이대로 괜찮은걸까?]에서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다시 재정리하여 나눠서 게재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플랜B에 올라왔던 글들 속에는 지금 시민운동에 대해 토론해볼만한 내용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 글들을 인용하면서 떠올랐던 생각들을 정리했기 때문에 제목은 [각주플랜B]로 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이야기할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