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 플랜B] ② 의사결정구조의 재구성이 필요한 이유

조직의 의사결정권을 누가 가지고 있는가? 기업으로 보면 지배구조의 문제가 조직의 비전과 가치, 사업 의제를 결정하고 운영과 참여방식을 규정하고 조직문화를 만들어낸다. 꽤 많은 조직들이 회원 총회를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두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회원들은 조직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한다고 할 수 없고, 회원총회가 실질적인 최고의사결정기구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보통 큰 조직에 있는 공동대표단도 상징적인 의미일 뿐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조직의 사업과 운영에 자문해주는 역할을 부여받고 들어온 분들이 한두달에 한번씩 열리는 운영위원회나 집행위원회에 와서 문서에 적힌 내용을 보고 활동가들과 함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회원총회나 운영(집행)위원회, 각종 사업 및 자문위원회와 사무처로 되어 있는 일반적인 조직 구조가 옳거나 그르다를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그런 총회나 위원회 대신 활동가들이 모여 있는 사무처가 핵심 의사결정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모든 조직에 적합한 동일한 의사결정구조란 어차피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의사결정권한(구조)를 실질화하는 것이다.
의사결정권한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출처 : flickr @clagnut)
일부 사단법인과 재단법인처럼 법적인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조직은 논외로 하더라도 보통의 시민사회단체에 있는 회원총회가 최고의사결정기구로서 역할을 하고, 운영(집행)위원회가 일상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적합한 역할을 하는 곳이 얼마나 될까? 견제와 균형, 대의민주주의의 원리에 입각해서 만들어놓은 의사결정구조가 지금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면 그것을 현실에 맞게 재구성해주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조직이 과연 누구냐? 조직을 정의해보자고 얘기를 하다가 결론을 내린게 ‘나 빼고 다 조직이다’예요. 조직에 날 끼워 넣지 않는 거예요. 많은 활동가들이 조직이 누군지 몰라요. 통상적으로 조직을 이야기할 때 처장님과 결정을 내리는 집단, 부서장? 이런게 조직이지. 스스로 ‘난 조직의 일부야’라고 생각하는 평활동가는 거의 없다고 생각해요. “야, 조직에서 그런 결정을 내렸어.” “누가? 난 안내렸는데?” – <근자씨 4호로부터>중에서

“조직이 비민주적이진 않은데 민주적이진 않아요. 탈권위적인데 체계가 없기 때문에 민주적인 의사결정 자체가 없다고 해야 하나?” – <근자씨 1호로부터> 중에서 

근자씨 4호의 말처럼 우리는 어느 순간, 조직이 마치 살이있는 독립적 인격체처럼 행동하는 것을 목격한다. 조직도를 벗어나 일상적인 활동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조직의 결정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것인데 어느 순간 위원회가, 본부가, 부서가 결정하는 것이 된다. 의사결정구조가 운동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형식적이다라고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는 지금까지의 운동이 시민들을 대표하거나 대변하려고 하고, 중립적인 심판자의 역할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 역할을 자임해왔던 시절에는 사회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명망가들이 필요했고, 권위가 있다고 하는 다양한 직업의 전문가들이 모인 의사결정구조가 필요했다. 대표와 심판을 자처할 때는 권위가 필요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민의 대표자, 대변자,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심판자로서의 역할은 줄어들고 있고, 조직도 그런 역할에서 탈피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의사결정구조는 그대로인 셈이다. 지향하는 가치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시민들의 목소리를 조직화해내고 힘을 모으고 정보를 제공하고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운동조직’이라고 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사회적 권위와 명망을 갖춘 사람을 ‘의사결정의 대리인’으로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조직을 구성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 상근활동가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 책임감있게 의사결정을 내리는 ‘운동조직’이다. 활동가의 자율성과 자기결정권, 지속가능한 활동의 전제 의사결정권한의 문제는 활동가의 비전, 역할과도 관련이 있다. 활동가의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에 대한 문제 제기는 주로 조직에 새로 들어오는 신입활동가들에게 많이 나온다. 이 문제가 신입활동가들 사이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유 중 하나는 현실적으로는 정부나 중간지원조직의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성 사업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성 사업처럼 이미 결정되어 있는 일들이 많은 곳에서는 기획보다는 실무의 집행에 큰 의미를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조직 밖으로 눈을 돌려보면 또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에 바탕을 둔 다양한 운동의 흐름은 조직 밖에 이미 존재한다. 과거와 달리 이제 조직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주체적으로 내가 주장하는 바를 호소할 수 있고,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외적 환경이 실재한다. 이미 청소년 시절부터 그런 공간이 있음을 감지한 세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뉴미디어 환경 아래에서 성장한 세대, 운동권이라는 그룹에 속해있지는 않았지만 개인들 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조직하거나 조직되어본 경험이 있는 세대가 조직 내에서 자율성과 자기결정권이 없음을 상대적으로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청년세대 중에 시민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기존의 시민사회운동단체에서 일하길 꺼려하거나 단체에서 일하다 관둔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겐 일종의 공포가 있다. 피만 쪽쪽 팔리고 팽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심이 있다. 시민사회단체가 흡혈귀도 아닌데 왜 청년세대는 공포를 느낄까? 가장 공통되게 지적하는 바는 ‘기획’의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밖으로는 괜찮다고 소문난 단체도 막상 들어가 보면 의사소통이나 의사결정이 민주적이지 않다는 거다. 권한은 주지 않은 채 일만 시키려 한다는 거다. 마치 젊으니까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옛날에 우리가 그렇게 살았으니 너희도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듯. – <활동가는 보이지 않고 실무자로 버티는 운동?> 중에서

또한 정치적․문화적으로 진보라고 외쳐도 의사결정 방식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는 자율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주되 결정은 자기 스스로 할 수 없게 하는 구조가 된다. 격렬하게 운동을 했던 사람일수록 꼰대가 되기 쉬운 현실이다. 또한 이뿐만이 아니다.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 얽혀 계속 운동의 운동성을 붙잡고 늘어지고 있다. 자의든 타의든 날개짓을 멈추면 추락하듯이.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중에서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나 절대 혼자이지 않게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나 절대 혼자이지 않게 (출처 : flick ,@benny4bs)
자율성과 자기결정권도 없고 실무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만 산더민처럼 쌓여있는 조직에 몸담고 있을 이유가 무엇일까? 더군다나 직업으로서 생계를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것도 아니고, 충분한 교육기회를 제공해서 스스로 성장한다는 확신도 주지 못한다면 결국 활동가의 가치와 조직의 가치가 불일치하게 되고 조직에 남아 있는 이유가 사라진다. 과거처럼 헌신을 강요할 수는 없다. 활동가가 소모되지 않고 스스로 성장해가고 있다는 확신이 지속가능한 활동을 보장해준다.

임금에 대한 불만 없었어요. 기대를 안했죠. 시민사회 돈 없는 거 뻔히 아는데. 대신에 임금이 적으면 그에 준하는 뭔가 다른 게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때 기대했던 것은 ‘환경운동을 통해서 나의 가치를 실현 한다.’ 이런 것이 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한국사회의 환경보전을 위해 내가 뭔가 기여를 하고, 그러한 지향이 내 삶과 동일시 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했던 거죠. 그런데 충족이 안 됐어요.일을 하다보면 내가 지향하던 바와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일치한다는 게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거든요. 왜냐면 개인이 어떤 추상적인 가치, 그게 환경보전일 수도 있고 다른 것일 수도 있어요. 그게 조직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른데, 그게 일치하지 않게 되면 내 자아실현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게 하는 거죠. 그럼 거기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이 ‘개인의 자율성’입니다. 어차피 돈도 안 되고 놀 시간도 없으면 가치실현이라도 돼야 하는데 가치실현도 아닌 것 같아, 그럼 중요한 게 뭐냐? 개인의 자율성인거죠. 그 조직 내에서 환경보전이란 가치 하에 하는 일에서 내 책임과 내 자율성이 존재하면 거기에 내 가치를 투영할 수 있게 되는데 그것마저 보장이 안 되면 그 마지막은 결국 떨어져 나오게 되는 거죠. – <근자씨 2호로부터> 중에서

활동가 교육 프로그램도 점차 줄고 있어요. 자기 일 하기도 급급하고 여유도 없고 내 코가 석자인데 누가 누굴 도와주고 교육해줘. 그래도 활동가 교육이 항상 있었는데 다들 바쁘다고 안 오고, 실제로 시간 맞추기도 애매하고. 결국 교육 준비한 활동가만 소진돼서 많이 줄었어요. 자기 분야 아니면 관심 가질 시간도 없는 거죠. 어쨌든 사회적인 문제나 큰 사안에 대해서도 자기 일 하느라고 결합 하질 못하는 거예요. 단체에서 오늘 많이 나가야 되니까 다 나가자 이러면 나가지, 자발적으로 나가는 게 없는 거예요. 내 일이 더 급하고 물리적으로 내 몸은 하나니까. 그리고 평가 때 다가오면 까일 거 스트레스 살살 오고. 그게 진짜 무서워요. 난 일 한 건 정말 많은데, 기록이나 수치로 보여줄게 없는 거예요. 결국 그것 때문에 까이고 스트레스 받고 쟤는 무능력하다고 평가받고. – <근자씨 4호로부터> 중에서

한 활동가로부터 시민운동과 관련된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조직을 책임지고 계신 분의 반대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왜 반대하는지 물어보니 ‘해야 할 일들도 많은데 굳이 교육을 받고 싶으면 실무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택해서 참여하라’고 했다고 한다. 활동가에게 실무역량이란 무엇일까? 적정한 임금과 자율성, 자기결정권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교육의 기회라도 많아서 내가 속한 조직을 통해 배우고 경험하는게 많고 그 속에서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활동가에게 필요한 다양한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면 신입활동가들이 지금처럼 조직에서 일하는 것을 힘들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각주 플랜B] 시민운동플랜B를 통해서 알게된 것들<시민운동플랜B>에 1년 6개월 동안 올라온 50여개 정도의 글을 보고 생각난 것들을 정리해봤습니다. 그 내용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학습공유회 [우리 이대로 괜찮은걸까?]에서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다시 재정리하여 나눠서 게재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플랜B에 올라왔던 글들 속에는 지금 시민운동에 대해 토론해볼만한 내용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 글들을 인용하면서 떠올랐던 생각들을 정리했기 때문에 제목은 [각주플랜B]로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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