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주플랜B] ⑥기술에 대한 이해차가 만들어내는 벽


최근 10년 사이 가장 극적으로 변한 것이 있다면 미디어 환경과 소통 방식의 변화일 것이다. 인터넷이 이 변화를 이끌었고, 모바일이 가속화시켰다. 미디어 환경과 소통 방식의 변화는 시민들이 정보를 접하는 경로와 방식, 대화하는 방식, 만나는 방식, 움직이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쉬운 것은 많은 운동조직들이 이런 변화를 컴퓨터나 인터넷 기술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단체에 프로그래머도 없고, 웹디자이너도 없고, 웹기획자도 없는 상황에서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가 블로그가 유행하면 블로그를 하고, 트위터가 유행하면 트위터를 하고, 페이스북이 유행하면 페이스북을 한다. 따라잡기에 급급할 뿐 실제 이 변화가 조직 운영과 시민들의 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제대로 관심 갖지 않고 있다.

만약 새로운 사회운동 조직론을 쓴다면 거기엔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움직이게 하는 조직론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이 온라인이라고 하는 그곳에 있고, 그 속에서 만나서 대화를 하고 함께 무엇인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그곳에는 조직에 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슈를 제기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적 문제에 대응하고 있는 시민활동가들이 넘쳐나고 있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용어의 이해와 기억, 활용의 속도를 앞지르면서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따라잡기를 포기하고 있다. 이것이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보편적인 태도가 아닐까 한다. 아니 내게 각인된 활동가들의 일반적 인식이다. 과중한 업무, 그로 인한 누적된 피로, 부족한 생활비 등 일상과의 전쟁을 견뎌내기도 힘든 나날이 지속되는 조건 속에서 기술이 바꾸어가고 있는 환경을 분석하고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어쩌면 여유 있는 이들에게나 허락된 작업일지도 모른다. – 시민단체가 안아야 할 프로그래머라는 증대된 역량의 개인 중에서

난 사실 시민운동에 대해 말할 바탕 자체가 없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여러 시민단체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딘가에 속할 생각은 한 번도 해 본적이 없다. 친구들 중에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단체’의 이미지는 나에게 열악한 사무실과 투쟁, 그리고 뭐라고 설명하긴 어렵지만 재미없는, 그래서 거리를 두고 싶은 그런 것이었다. ……. 그런 나를 무너뜨린 것은 트위터 였다. 사무실 모니터 한쪽에 띄워놓은 트위터 창에는 늘 아이폰 국내 출시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주로 올라왔는데, 언제부턴가 새로운 이야기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쌍용자동차 노조 파업 소식이 실시간으로 올라왔고, 노조원들이 경찰과 용역들에게 두들겨 맞는 동영상들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 사회를, 이런 사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을, 사회에 아무 보탬도 되지 않는 듯한 내 직업을. – 존재감 없는 혁명가로 살아가다 중에서

새로운 사회운동 조직론을 쓴다면 온라인 조직론이 추가되어야

운동조직이 관심을 가지는 것조차 힘겨워하는 사이, 온라인 세상은 이제 웹을 넘어서 모바일로 가고 있는 중이다. 검색으로 웹의 시대를 이끌었던 구글의 에릭 슈미트 회장은 2011년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서 구글의 전략을  ‘모바일 퍼스트(Mobile First)’에 맞추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부터 3년 후인 2014년 11월, 에릭 슈미트는 ‘모바일 퍼스트(Mobile First)는 이제 옛말이 되었고, PC없이 모바일로만 인터넷에 접속해 모든 일상을 처리하는 모바일 온리(Mobile Only)세상이 온다’고 했다.

기술의 효율성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 활동가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정보를 찾고 정보공개청구해서 하나하나 직접 입력해서 제공했던 정보들을 IT기술자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더 나아가 더 효과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정보를 가공하여 입력하고 제공했던 활동가와 운동조직은 어떤 역할을 하는게 맞을까? 진정성과 끈기를 무기로 IT기술자와 경쟁해야 할까? 운동 조직이 기술적 변화를 수용한다는 것은 기술을 활용한다는 의미를 넘어 조직 활동의 중심축이 변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에 따라 활동가의 역할도 변하게 된다.

과거의 집회 방식, 성명서 낭독 등은 기존 미디어를 통해서 선택되어야만 대중들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직접 대중들과 이야기를 나눌 공간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수많은 단체들이 범람하는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들과의 대화를 통한 신뢰와 단체의 브랜드의 구축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신뢰와 브랜드는 수많은 개인을 통해 더욱 널리 알려질 것이다. 시민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 기술로 진보를 진보시키자 중에서

얼마전 공공데이터 캠프에서 20대의 젊은 공학도를 만난 적이 있다. 이 젊은 공학도는 국회를 감시하기 위해 자신의 데이터 마이닝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국회의원들의 출결사항, 법안의 발의 건수, 특정 법안의 찬반 데이터를 받아와 웹서비스(pokr.kr)로 구축했다. 몇몇 뜻 맞는 친구들과 의기투합했고 어엿한 인터넷 서비스의 형태로 대중들에게 공개했다. 데이터의 구성과 배열만으로도 이 사이트는 여러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었다. 어쩌면 정당을 감시하는 시민단체라면 “바로 이걸 하고 싶었어”라고 외치며 자괴감에 빠질지도 모른다. – 시민단체가 안아야 할 프로그래머라는 증대된 역량의 개인 중에서

기술적 변화를 수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을 활용하는 의미는 넘어선다.

지금은 운동 조직이 시민 참여를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 속으로 들어가야 할 때이다. 각기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섬이 있다면, 섬 간의 교류가 있어야 하고, 누군가는 섬과 섬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어야 한다. 활동가가 시민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일일까? 과거처럼 지역 현장을 방문해서 사람을 조직하고, 지역에 조직을 건설하고, 그 사람들과 할 일을 만들어내고, 그런 것만 있을까? 아니다. 마을이라고 하는 공간, 지역이라고 하는 공간, 운동이 발생하는 현장이라고 하는 공간에서 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있지만 개척하지 못한 공간도 있다. 그곳으로 가야한다. 왜냐하면 그곳에 우리와 함께 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 – 온라인 – 에서 하는 일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먼 거리로 출장을 가는 것도 아니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온라인 세계에서 진행하는 일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고 조직하고 설득하고 마음을 얻는 일을 활동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조직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사무실에서 트위터 하고 페이스북 하고 블로그에 글쓰고 하는 일들을 조직에서는 순전히 개인적인 일로 치부한다고. 과거, 지역을 방문해서 같이 일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과 회의하고 술 먹고 아침에 산책하면서 또 이야기하는 그런 활동은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인정하고 그와 방식은 다르지만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하는 온라인 활동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다.

이건 운동조직이 온라인 공간을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라 기술의 세상으로 오해하고 있어서는 아닐까? 온라인 공간에서의 활동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의 경계도 없고 공간의 경계도 없다. 집에서도 진행되고 지하철 안에서도 진행된다. 그렇다면 그것 또한 곧 활동이다. 일로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무실에 있는 시간만을 일하는 시간으로 보는 선입견, 오프라인 공간에서 돈을 들여 사람을 만나는 것만 조직화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을 없애야 새로운 문화를,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처럼 증대된 역량을 갖춘 시민은 시민단체의 전통적 노하우와 서로 접속되지 않고 있다. 어떤 메시지를 어떻게 뽑아냈을 때 파급효과가 큰 것인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 과정에서 놓쳐버린 중요한 정보는 없는지, 감시 대상을 더 압박할 오프라인 경로는 없는지 아직 이들이 깨닫기엔 경험이 일천하다. 관련 시민단체와 이들 증대된 역량을 갖춘 개인과 시민이 연결된다면 시민운동의 동력을 더욱 증대될 것이 분명하지만, 이 두 세력은 여전히 다른 공간을 떠돌고 있다…. (중략) …. 인터넷 또한 이미 투쟁의 장이 됐다. 저명한 네트워크 이론가 마누엘 카스텔은 말한다. 현재의 인터넷은 인터넷을 상품화하려는 글로벌 멀티미디어 비즈니스 네트워크와 인터넷을 시민의 제어 수준으로 구축하고 기업의 통제 없이 커뮤니케이션 자유의 권리를 주장하려는 ‘창조적 수용자’들의 갈등 공간이라고. 이미 인터넷마저도 자본과 시민권의 투쟁의 장으로 성장했다. 새로운 시민운동의 영역 개척을 필요로 하고 있다. – 시민단체가 안아야 할 프로그래머라는 증대된 역량의 개인 중에서


[각주 플랜B] 시민운동플랜B를 통해서 알게된 것들<시민운동플랜B>에 1년 6개월 동안 올라온 50여개 정도의 글을 보고 생각난 것들을 정리해봤습니다. 그 내용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의 학습공유회 [우리 이대로 괜찮은걸까?]에서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다시 재정리하여 나눠서 게재하려고 합니다. 그동안 플랜B에 올라왔던 글들 속에는 지금 시민운동에 대해 토론해볼만한 내용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 글들을 인용하면서 떠올랐던 생각들을 정리했기 때문에 제목은 [각주플랜B]로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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