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풀뿌리운동 포럼 발제문 : 왜 나는 마을운동을 하는가?


#. 왜 나는 마을(풀뿌리)운동을 하나?

‘왜’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라는 질문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서 하고 있는 일을 처음부터 마을운동이나 풀뿌리운동이라고 인지하고 시작했던 것도 아니다. 단지 시민단체에서 8년, 공익재단에서 3년, 네트워크형 조직에서 3년을 일했던 경험이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의 현장과 만났을 때 어떤 모습일까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고, 사무실에서가 아니라 마을에서 자주 만나고 이야기하고 노는 사람들과도 의미있는 일을 해보면 재미있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래서인지 마을신문도 만드는 일에 함께 하고, 마을카페와 교육센터도 운영하고, 임의단체인 지리사문화공간 토닥과 사회적협동조합인 지리산이음에서 일 아닌 일을 하고,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가지 크고 작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시도들에 발을 담그고 있지만 그걸 마을운동이나 풀뿌리운동이라고 의미부여를 하지는 않은 상태이다. 

조금은 자유롭게 마을을 벗어나 도시에서의 일도 함께 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지만 아직까지 ‘운동’이라고 하는 영역까지 – 운동을 사람들과 함께 성장해가면서 그들이 마을의, 사회의, 국가의 주체로 설 수 있도록 하는데 적극적으로 기여해나가는 일련의 일이라고 한다면 – 도달하지 못했거나, 그렇게 가고 싶은 자신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의미있을법한 갈등과 논란의 중심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부족한 편이고. 

그럼에도 나는 왜 마을에서 일을 하는가? 나는 가깝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 의미있고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또 어떤 과정을 통해 에너지와 자신감이 만들어지고, 또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만족해하고, 그 사람들이 지역에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에 기여했다는 사실에 만족해하고, 그것이 나에게 맞는 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말대로 나는 단지 “누군가를 돕고 싶은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고 싶고 그 일이 나에게 맞다.

#. 나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

살고 싶은 세상의 모습을 다 적어보자면 끝이 없을거다. 그리고 그걸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도 참 쉽지 않다. 그런데 지금 이 질문을 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개인적으로 살고 싶은 세상과 내가 희망하는 세상의 모습이 많이 다를 수 있겠다는 점이다. 그게 어쩌면 제일 문제일 수 있다. 내가 살고 싶은 세상과 내가 단지 ‘희망’한다고 말하는 세상이 다를 수 있다! 

솔직히 요즘은 운동이라고 하는 사회적 일과 무관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냥 혼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주고, 나머지 시간들은 책을 읽거나 인터넷으로 정보들을 습득하거나,  돌아다니면서 놀 수 있는 그런 것 말이다. 물론 그 열망이 너무 커서 지금의 일을 그만둘 정도는 아니고, 지금의 일이 너무 싫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아니다. 

그래서 굳이 내가 살고 싶은 세상을 그려보자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실제 그랬으면 좋겠다. 최소한의 일만 하고도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는 세상, 그리고 나머지는 시간은 머리를 채우고, 배를 채우고, 마음을 채우는데 쓸 수 있는 세상, 그런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싶다.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계를 끊고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곳을 멀리 떠나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닌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인 세상에 살고 싶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경제,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을지도 모를 일자리, 계속 증가하고 있는 인구, 사람의 일을 대체하고 있는 많은 기술. 사회가 가는 방향을 가만히 보고 있자면 이게 꼭 비현실적인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그런 세상으로 나가는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어느 순간 되면 나라도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나.

#. 그래서 나는 현재, 어떤 활동을 하며, 어떤 미래를 제안하고 싶은가?

그래서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적어보자면 이렇다.

지리산에서는 <지리산문화공간 토닥>을 통해 마을카페 토닥의 운영에 ‘관여’하고 있고, 최근에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등록한 <지리산 이음>이 지리산권의 사람과 커뮤니티의 역량을 키우는데 매진하는 지원조직이 될 수 있도록 이런 저런 일들 – 지리산청년활력기금, 시골공동주택, 숙박형교육프로그램, 모금과 배분사업 – 을 생각하고 추진하고 있다.

<더 체인지>에서는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기술을 함께 배우고 나누는 <민주주의기술학교>와 함께 조직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방법을 기획하고 교육하고 퍼트리는 일, 주로 대화, 참여, 협력, 의사결정 등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워크숍과 같은 교육프로그램의 기획과 교육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기술학교의 학습모임인 <더공부>에서 매월 한 차례씩 모여 공부도 하고 있다. 

시민사회와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온라인 미디어인 <더플랜B> 운영자로 이 주제와 관련된 인터뷰나 포럼 등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 시민사회와 활동가에게 필요한 10가지 질문이라는 테마로 12월 20일 포럼을 준비하고 있고, 내년도에 <더플랜B>를 어떤 방향으로 운영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현재는 이와 같은 세가지 일들이 내 속에서 어떻게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가 되고, 이에 맞춰서 내가 할 일을 찾아낼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 시점이다. 그리고 최근의 광장에서의 시민혁명의 이 열기와 흐름이 내가 하는 일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도 따져보고 있는 중이다. 

미래를 위해서 제안하고 싶은 일은 아주 작은 단위에서 시작하고 싶다. 익명성에 기반해 미디어에 던지는 주장이 아니라 직접 얼굴마주보고 관계맺을 수 있는 수준에서 모여서 함께 공부하고, 함께 토론하고, 함께 일을 벌이고, 함께 성장해가는 일을 지금 있는 자리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절차와 방법이 아니라 결국 모든 국민이 내가 사는 마을에서 시작해서 국가의 의사결정과정에 최대한 많이 참여하고 그 참여가 결국 ‘결정’의 과정까지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그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하는 것, 그 경험의 과정을 통해 우리 함께 똑똑해지는 것, 그래서 결국은 지도자 한 사람의 결단과 소수 권력자의 의사결정이 아니라 집단적 의사결정이 훨씬 좋다는 인식이 확장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30년 전,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수많은 단체들이 생겨났다. 그 당시에 생겨난 단체의 조직구조와 운영방식 등은 하나의 규범이 되었다. 30년이 되어가는 2016년, 광장에서의 시민혁명을 계기로 다시 현장에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관계맺기를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은 무엇일까? 그 이야기를 포럼에서 나눠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1년 정도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부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지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중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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