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1번가 기획 회고

#광화문1번가 문을 닫은 지 10일쯤 지났다. 운영 기간은 50일이지만, 기획 기간까지 따지면 거의 두 달 이상. 큰 일이 끝나고 난 후의 허탈함 비슷한 무력감도 어느 정도 지나갔으니 전체적인 회고 한 번. 근데 질문만 자꾸 쌓여간다.

#기획
기획안대로 되는 일은 없다. 기획안은 전체 흐름을 되돌아보게 하는 종이문서일 뿐. 새로운 일에는 매뉴얼이 없다. 과정 자체가 매뉴얼이 될 뿐. 때로는 기획안에 담긴 공식 내용이 유연성을 해치기도 한다. 국민의 참여를 전제로 한 프로젝트 기획에서 디테일한 예측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현장의 반응에 대한 즉각적인 판단과 피드백, 개선을 중심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신속함, 유연함, 개선 중심. 참여형 프로젝트의 성패를 좌우하는 세 가지 요소. 기획단과 현장, 행정은 과연 이 세가지 요소를 잘 담아냈을까?

#마이크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한 노인이 카메라를 보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카메라는 마지막 날의 현장 모습을 담기 위해 운영팀에서 세워둔 것이다. 국민마이크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촬영이 되고, 이 발언이 정부에 전달된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얼핏 들으니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사회가 얼마나 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홀로 이야기를 하시는데 차마 “할아버지, 그 카메라는 그런 용도가 아니예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토요일마다 열린 국민마이크.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서 한 맺힌 사람들은 점점 늘어만 갔다. 국민마이크에서 발언하나, 서류로 접수하나, 인터넷에 올리나 똑같은 프로세스로 처리되는데 사람들은 굳이 마이크를 잡겠다고 한다. 3분, 5분의 시간으로 풀리지 않는 억울함과 한은 어떻게 해야 하나?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공권력, 지역사회로부터 억울하게 한 맺힌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없게 하겠다’. 이런 가치가 국정철학에 반영되어야 하지 않을까?

#경청
해결할 수 없는 민원들이 너무 많다. 이미 대법원 판결까지 끝나서 결론이 난 사안들. 그런데도 억울하다. 10년째 이 억울함 풀어달라고 지자체로, 법원으로, 청와대로, 국회로 다녔지만 풀지 못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왔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 할아버지가 와도 해줄 수 없는게 있다. 억울함이 겹겹히 쌓여 한이 맺히고, 그 한의 무게가 뇌를 짓눌러 아픈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문제를 공무원들이 풀어줄 수 있을까?

그래서 생각한 게 경청마루라는 공간인데 그곳엔 공무원이 아닌 심리치유활동가들이 상주했다. 이해하고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려서 돌아가는 분들도 있다. 민원을 시스템으로 풀어내는 것만이 옳은 것일까?

#열린포럼
공식열린포럼 13차례, 중간중간에 약식 열린포럼 4차례, 몇 번의 정책간담회까지. 넓게 보면 시민사회와 정책공무원들 간의 정책 소통의 시간. 10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관련 공무원, 과장도 한번 만나보지 못했다는 주최측의 이야기와 서류로만 봤던 이슈들을 직접 전해듣고 그 맥락을 이해하니 정책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힌다는 정부측의 이야기가 만나는 자리. 긍정적인 피드백들을 많이 받았던 프로그램.

반면, 열린포럼이 진행되는 시간에 광화문 광장에서는 수십, 수백, 수천명이 참석한 집회들이 계속 있었다. 마이크 소리가 섞이고, 구호와 주장, 이야기와 제안이 섞였다. 두가지 풍경을 보면서…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두 가지 방식이 모두 공존해야 하는건 맞지만 계속 드는 질문은 우리는 왜 주장하고자 하는가? 우리는 왜 소통하고자 하는가? 궁극적인 목적에 다다르기 위해 선택해야 할 방식은 무엇이 적절한가?

#스텝
스텝들의 눈물을 봤다. 현장에서 불만에 가득찬 민원인들을 맞이하고 안내하는 그들도 국민인데. 젊다는 이유로 함부로 말 놓는 사람들, 욕하는 사람들… 그들도 당신들처럼 국민이다. ‘갑’으로부터 피해당해서 온 민원인 ‘을’들의 스텝에 대한 갑질은 정말… ‘힘들죠’라는 말에 눈물을 글썽이며 하소연하던 파란티 옷을 입은 20대의 젊은 스텝이 생각난다.

마지막날 그 친구는 광화문 1번가가 문을 닫은 이후에도 남아 있는 민원인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더라. 힘들다는 눈빛은 민원인에 대한 연민의 눈빛으로 변해있었다. 50일동안 있으니 마음가짐이 달라졌을까? 아니면 마지막까지 본인의 역할을 단지 충실하게 하기 위함이었을까? 누군가를 주인으로 등장시키기 위해서 꽤 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다른 주인의 역할을 한다.

#공무원
공무원 한 분이 ‘민원을 민원으로만 보지 마세요’라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 그 민원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겠지. 맞다. 그 민원 하나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민원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근데 민원처리과정은 너무 시스템적이다. 그래서 그 시스템이 사람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없게 한다. 민원처리시스템 안에 사람의 마음과 공감, 경청의 키워드들을 담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공무원에게 경청과 공감의 태도만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시스템만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이 두 가지는 결합될 수 있을까?

#회고할게많다
공간의 설계와 구축, 현장 운영, 민원 접수, 정책제안의 분류와 분석, 프로그램의 기획,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지만 톱니바퀴처럼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조직도 상에 누가 최종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말은 사실 현장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 각자가 끊임없이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들이 생긴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린 현장에서의 판단들은 옳은 것이었을까? 되돌아봐야 할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언젠가 구체적으로 정리해볼 시간이 있겠지. 어째튼, 그래도 문을 열었고,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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