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기획(4) 2016서울정책박람회 – 시민의 삶과 마음을 담다


서울시정책박람회는 스웨덴 알메달렌 정치박람회를 벤치마킹하여 2012년부터 개최한 서울시의 정책 행사이다. 1년에 한 번 박람회 기간 동안 집중적으로 시민들의 정책 제안을 수렴하고, 이를 서울시 정책에 반영한다는 취지인데 2014년까지는 하루 행사로 진행하다가 2015년부터는 3일 행사로 진행했다. (아래는 2016년과 2017년 서울시 정책박람회 총감독으로 일한 경험을 정리한 내용이다)

1) 2016년 – 시민의 삶과 마음을 담다

정부나 정치단체, 개인 등이 정치적인 목적을 실현하거나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하는 방침이나 수단을 정책이라고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시작은 문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정책박람회가 아니더라도 문제를 드러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민원에서부터 면담 요청, 항의 집회, 토론회 개최, 아이디어 제안까지. 모두 문제를 드러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다면 정책박람회에서는 어떻게 문제를 드러내게 할 것인가? 그것이 2016년 정책박람회 기획의 시작이었다.

문제를 드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서로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를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공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시민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주체는 행정이라는 인식으로는 정책 공론장이 만들어질 수 없다. 자발적인 시민 참여를 이끌어낼 수도 없다.

그래서 2016년 정책박람회에서는 ‘정책을 매개로 시민과 소통하는 열린 공론장’을 만들고자 했다. 정책박람회가 행정이 직접 기획한 프로그램과 홍보 전시물들의 집합체여서는 안된다. 행정은 다양한 정책 관련 프로그램이 기획되는 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계기로 시민들의 다양한 생각을 듣고, 모으고, 담아내고, 공유하고, 확산하는 정책공론장의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위와 같은 취지를 살리기 위해 첫째, 각 프로그램들이 정책박람회에서만 진행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 프로그램으로 지속될 수 있게 개념화했다. 정책박람회를 계기로 시민들의 삶과 마음을 담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안되고, 그것이 정책박람회 이후에도 여러 기관과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둘째, 독자적 프로그램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의 진행 방식을 표준화하고자 했다. 프로그램 방식은 단순하되 다양한 내용이 담길 수 있도록 유연성과 확장성을 염두해두었다. 내용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결국 시민들의 몫이다. 행정이 할 일은 참가자들을 위한 환경과 조건을 마련해주는 일이다.

가. 광장은 시장실

<광장은 시장실>은 서울시장이 광장에 직접 나가 시민들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경청 프로그램이다. 그 전에는 사전에 정해진 양식에 맞게 정책을 제안해서 그것을 실무부서에서 검토한 후에 시장을 만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2016년에는 굳이 정책 제안이 아니더라도 시민의 삶과 마음 속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듣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사실 정책과 민원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민원 속에 시민들의 삶의 애환이 담겨있다. 그 마음과 삶의 이야기를 어떻게 정책으로 연결시킬 것인가는 시민의 몫이 아니라 정치와 행정의 몫이다. 2016년의 <광장은 시장실>은 시민들의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을 테마별로 담아내고, 광장이라는 공간에 걸맞게 누구든지 현장에 와서 시민과 시장이 나누는 대화를 함께 들을 수 있도록 했다.

나. 여기는 시민시장실

<여기는 시민시장실>은 ‘내가 서울시장’이라는 생각으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장소에 사람들을 모아서 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 내용을 공유하는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다. 누구든지 사전에 신청해서 참여할 수 있는 이 행사는 [자유 주제]와 함께 [특별 주제]로 나눠서 진행했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자전거 정책”과 “폐지줍는 어르신들 위한 정책”을 주제로 서로 각기 다른 지역에서 동시간대에 대화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여기는 시민시장실>은 <더 체인지>가 진행한 ‘오픈컨퍼런스’ 방식을 참고했다. 누구든지 ‘시민시장실’을 열어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이야기 나눈 내용을 정리해서 전달하면 서울시에서는 반드시 피드백을 주도록 했다.

다. 서울해결책방

<서울해결책방>은 시민, 공무원, 전문가가 함께 토론하고 해결책을 찾는 서울형 정책회의 모델로 2016년 7월, ‘미세먼지’와 ‘여성안전’을 주제로 개최한 바 있다. 사실 문제를 드러내기는 쉬워도 해법을 찾기는 굉장히 어렵다. 또 좋은 해법을 찾기 위해서는 복잡한 문제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시민과 공무원,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필요하다. <서울해결책방>은 시민의 생각이 실제 정책화되는 과정을 하나의 프로그램에 담을 수 있도록 기획한 것이다. 여기서 나온 해법은 서울시장에게 직접 책자 형태로 만들어서 전달했다.

라. 서울사람책방

<서울사람책방>은 자신의 삶, 직업, 특별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울의 정책에 변화를 주는 구상과 아이디어를 가진 시민을 사람책으로 선정하고, 미리 대출신청한 시민 독자들과 만나 지혜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10월 8일(토) 오전과 오후 2차례 서울혁신파크에서 60명의 사람책과 약 300명의 독자가 만나는 행사로 진행했는데, 무엇보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특별한 60명의 사람책을 발견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었다. 직접적인 정책제안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오랫동안 해왔던 일, 현재 일하면서 생각한 바는 서울시 정책과 무관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이 곧 시민정책 전문가라고도 할 수 있다.

정책공론장으로서의 정책박람회를 위한 제안 사항

‘정책공론장으로서의 정책박람회’로의 위상이 하루 아침에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공론장은 선언으로서가 아니라 자발성과 지속성을 전제로 한 시민들의 참여가 활성화될 때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책박람회가 정책공론장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떤 관점이 필요할까?

첫째, 서울이라고 하는 지리적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정책은 다양한 사람, 지역, 이슈와 연관되어 있다. 더군다나 서울시 정책이 미치는 영향은 서울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교통문제나 대기오염 문제만 하더라도 서울이라고 하는 도시 한 곳만의 문제도 아니고, 서울시의 노력만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서울시가 해외와 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을 벤치마킹하듯이 서울시의 정책이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것은 전 세계로 퍼져나갈 수 있는 정책이 된다. 올해는 시도하지 못했지만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기 다른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 서울의 문제가 타 지역에 미치고 있는게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기회, 아직 해결하고 있지 못한 문제의 해법을 이미 찾은 전 세계 도시들의 정책들을 벤치마킹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의미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정책박람회에 선보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서울시가 스스로 기획하지 말고, 누구나가 참여해서 기획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지원해야 한다. 정책공론장은 정책을 매개로 소통하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정책과 관련된 시민, 단체, 의회, 전문가 등 이해관계자들을 어떻게 교류하고 협력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필요한 것은 정책 촉진자로서의 서울시의 역할이다. 시민들은 보다 편하게 정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게, 정책수립자는 정책 관련 이해관계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좀 더 많이 경청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현존하는 IT기술과의 결합도를 높이는 정책박람회가 되어야 한다. 바쁜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3일간 진행되는 박람회에 참여할 것은 요청할 수는 있지만 누구나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아무리 행정의 벽을 낮춘다 하더라도 정책을 직접 제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시민과 행정 사이의 벽을 IT기술을 이용해서 좀 더 낮출 필요가 있다. 올해는 페이스북 라이브 생중계를 진행해서 스마트폰만 가지고 있다면 어느 곳에서나 보고 들을 수 있었지만 향후에는 단순히 생중계를 너머 IT기술을 활용한 정책공론장으로서의 가능성을 계속 확대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넷째, 시민제안제도 내에서 정책박람회 역할과 위상을 재정리해야 한다. 서울시에는 이미 다양한 정책제안제도가 있다. 참여예산제도도 있고, 온라인 공간에는 천만상상오아시스도 있다. 각 부처의 민원창구에도 다양한 민원과 정책들이 제안되고 있다. 그렇다면 정책박람회는 하나의 별도의 행사가 아니라 이러한 다양한 시민제안제도를 통해 나오는 시민들의 제안을 모아내고, 그로 인해 정책화되어서 문제를 해결한 내용들을 공유하고, 아직 정책화되지 못한 제안들을 좀 더 깊이 있기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시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

다섯째, 침묵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그것을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은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고 의지가 없어서도 아니다. 직접 현장에 나와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없고, 그들에게 적합한 경청과 소통의 환경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책박람회가 행사장 중심으로만 이루어지는 행사가 아니라 시민들의 생각을 담을 수 있는 현장을 직접 찾아갈 필요가 있다. 경청이나 소통에서 소외되어온 사람들에게 정책박람회가 그나마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수동적 제안자로서가 아니라 정책공론장의 중요한 주체로 참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행정은 시민들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구조를 좀 더 개방적으로, 좀 더 편리하게 개선해나가야 한다. 그리고 정책박람회 세 가지 핵심가치대로 더 많이 경청하고, 더 깊게 소통하고, 더 넓게 공유해나가야 한다.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어떻게 일상적으로 수렴하는 구조를 만들 것인가? 이 점은 정책박람회가 앞으로 안고가야 할 숙제일 뿐만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숙제이기도 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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