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기획(6) 광화문1번가 – 정권 인수과정에 국민을 초대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5월 말부터 50일 동안 운영한 <광화문 1번가>는 정권 인수 과정에 국민들의 요구들을 반영할 열린 정책참여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문제 의식으로부터 출발했다. 2016년, 광장에서 분출된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국민의 요구와 열망, 시민 혁명의 성과를 담아낼 수 있는 시간과 플랫폼이 필요했던 것이다.

<광화문1번가> 플랫폼은 개방적이면서 유연하게 설계해야 했고, 국민들의 다양한 요구를 어떤 절차와 방법으로 수렴해서 정책에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 했다.. 또 50일 간의 <광화문1번가>의 운영이 끝나더라도 대화와 소통, 참여와 협치의 관점에서 국민의 요구를 수용할 개방적이고 유연한 참여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까지 염두해둬야 했다. 이 두 가지 생각을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약 2주간 <광화문1번가>를 기획하게 되었다.

오바마 정부도 정권 출범 초기, 국민의 의견을 수렴할 기획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오바마 정권인수팀장이었던 존 포테스타(미국 씽크탱크 미국진보세터(CAP)설립자)는 오바마 정권 출범 직후, 외부 단체와 공개 모임에서 나온 모든 자료를 인수위원회 공식 홈페이지에 올려서 검토하고, 공론화할 수 있게 했다.

실제 오바마는 자신이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보건의료시스템 개혁을 위해 국민들에게 12월 중순부터 말까지 주민토론회를 개최해서 보건의료시스템에 대한 의견을 모아줄 것을 요청했고, 차기 보건의료장관으로 내정된 사람에게는 주민토론회에 한 차례 이상 참석하도록 하고, 거기에서 수렴된 의견에 대한 결과를 보고하도록 했다.

존 포테스타는 이를 “정권을 인수하는 과정에 일반 국민을 초대하는 것”이고, 개혁을 위해서는 “국민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개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바마가 원하는 것은 “전국적인 토론의 시간을 갖는 것”,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시도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오바마의 백악관 입성을 도왔던 첨단기술과 풀뿌리 운동의 경험을 활용해 과거 보건의료 개혁을 가로 막았던 강력하고 뿌리깊은 특수 이해 관계자들의 방해를 피해가려고 하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1) 국민인수위원회의 의미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 교체를 2016년부터 이어져온 시민혁명의 결과임을 확인했다. 그래서 ‘민주당’이 아닌 ‘국민이 정권을 인수한다’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국민인수위원회’라는 명칭이 나왔다. 국민인수위원회는 이전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처럼 전문가들만의 조직이 아니고 국민 누구나가 국민인수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즉, 국민인수위원회의 <광화문1번가>는 국민들이 정권을 인수한다는 취지에 맞게 ‘환경과 조건을 제공하고 지원하는 플랫폼’을 지향했다. 이를 위해 국민인수위원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 국민의 목소리를 선입견과 편견 없이 진지하게 듣고 가감없이 전달한다.
  • 주류 미디어에 보도되지 않은 낮은 목소리, 소리없는 아우성에 귀기울인다.
  •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듣는다.
  • 제안된 정책 의견에 대해서는 반드시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피드백을 준다.
  • 국민은 이야기하고, 정부는 듣는 구조를 넘어, 함께 대화하고 토론하는 문화를 만든다.
  • 국민인수위원회를 통해 접수된 내용 중 즉각 반영할 있는 것들은 적극 홍보/공유한다.
  • 국민의 행복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대통령이 국민에게 질문하고 함께 생각을 공유한다.
  • 향후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을 토론하고, 생각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혁신한다.

2) 광화문1번가 오프라인 공간

광화문은 상징성이 있다. 촛불 집회를 통해 국민들의 열망이 분출된 곳이다. 이전 정권에서도 정권 출범에 맞춰 국민 제안을 받는 창구가 있었지만 인수위원회 사무실이나 청와대 민원실을 통한 서류 접수와 온라인 접수 정도였다. ‘국민을 정권 인수 과정에 참여하게 한다’는 취지에 맞게 오프라인 국민소통공간을 광화문 인근에 설치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광화문 1번가>를 컨테이너로 설계한 것은 50일간 ‘임시로 운영되는 공간’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폐쇄적인 건물 안의 닫힌 공간이 아니라 누구든지 지나가다가 접근 가능한 열린 공간의 취지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촛불집회가 열린 ‘광장’의 위라는 상징성도 고려했다. <광화문 1번가> 오프라인 공간의 의미에 대해 하나씩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가. 국민 제안 공간

서울시 정책박람회도 그렇지만 정책 제안을 접수받는다고 해도 실제로는 민원 성격의 제안이 훨씬 많다. 이 민원의 밑바탕에는 억울함이 깔려 있다. 그리고 그 억울함은 서류 제출 만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경청이 전제되지 않으면 민원인들의 억울함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광화문1번가>에서는 ‘국민제안공간’을 통해 서류 접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했다.

이 곳에서 행정안전부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파견된 20여명의 공무원들이 국민의 제안을 접수받고 상담을 했다. 민원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공무원들의 태도에 대한 지적이 많아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사전 워크숍에서 외부 전문가를 초청하여 ‘경청’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설령 정부에서 해결할 수 없는 개인들 간의 민원이라 하더라도 최대한 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국민을 대하는 새정부의 다른 태도를 보여주는 것, 진지하게 경청하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도 의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원인의 이야기를 30분 혹은 한 시간 이상 들어주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알아볼만큼 알아보고, 지방자치단체나 법에 하소연하고도 풀리지 않아서 광화문1번가에 가지고 온 민원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민원인을 상대하는 게 주 임무였던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공무원의 말이 기억난다. “국민들의 민원을 민원으로만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이 말은 그 민원이 발생하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민원이 발생한 원인을 찾아내서 다시는 그런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일은 사실 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의지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법과 제도의 개선까지 필요한 일이어서 쉬운 일은 아니다. 시간이 촉박하게 기획된 일이라 우선 경청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지만 향후 국민의 제안을 받는 또 다른 프로그램이 기획된다면 민원 발생의 원인을 찾아내서 그 원인을 제거하는 과정까지 설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문제는 기획프로그램이나 이벤트성 행사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민원과 제안을 접수/처리/해결하는 행정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혁신되어야 해결될 수 있다.

나. 경청마루 – 공감인 부스

민원 중에서도 악성 민원이 있다. 악성 민원인도 있다. 모 기관에서는 이런 악성민원인을 VIP라고 부르고, 이들을 상대하는 전담 공무원도 있다고 한다. 악성 민원은 꽤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민원, 이미 법적인 판결이 끝났거나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인데 해결을 요청하는 민원을 의미한다. 그 민원인들 대부분은 아프다. 억울함과 분노, 좌절감 등이 쌓여서 일반적인 민원 상담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는 민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억울한 삶, 가족관계, 불행한 과거의 기억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런 분들에게는 다른 상담이 필요하다.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더라도 그 사람의 이야기를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고, 들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래서 서울시치유활동가그룹 <공감인>과 협력하여 경청마루라는 독립된 공간에 안내자 1명과 심리치유활동가 2명이 상담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세상에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참 많다. 그 분들은 경청마루에 오늘 오고, 내일 오고, 모레도 오고, 반복적으로 왔다. 친구를 데려오기도 했다. 실제 심리상담이나 정신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도 많다. 조울증을 겪는 사람들도 있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어서 몸에 칼을 소지하고 다는 사람까지 있었다. 경청마루를 통해 깨달은 것은 정부가 국민의 몸 건강 뿐만 아니라 마음 건강까지 챙기는 ‘찾아가는 정신 복지’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다. 정리 – 분석 – 검토하는 공간

광화문의 외교부 1층에 국민인수위원회 사무실이 있었다. 그 곳에서도 약 20명의 공무원들이 상주했다. 매일매일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접수된 민원과 제안 사항을 민원처리시스템에 입력하고, 주제별로 분류하고, 부서로 이관할 사항과 정책에 반영할 사항을 검토하는 곳이다.

이렇게 검토된 의견들 중 일부는 국정자문기획위원회로 전달되고, 각 지방자치단체나 해당 부서로 이관한다. 촉박한 시간으로 별도의 시스템을 개발하지 못하고, 정부의 기존 민원처리시스템을 쓸 수밖에 없었지만 달라진 점은 접수가 잘 되었다는 피드백을 주고, 접수한 내용을 전달받은 지방자치단체나 정부부처에서는 책임있는 담당자가 연락을 해서 어떻게 처리가되는지를 회신해주도록 했다.

이 과정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문제의 원인을 찾아서 다시는 그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처리했으면 좋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짧은 시간에 접수된 수많은 민원을 기존의 시스템 안에서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과거와는 다른 친절한 응대와 민원과 제안내용에 대해 개별적으로 피드백을 주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처방은 아니기 때문이다. 향후 국민제안-민원의 처리 시스템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지에 대한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라. 대통령의 서재

사실 우리가 읽고 있는 책 속에도 정책, 국가운영 등에 참조할만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꼭 구체적인 정책 제안이 아니어도 좋다. 처음에는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책을 모아보자는 취지로 기획한 공간인데 교보문고에서 비슷한 이벤트를 하고 있어서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책의 한 구절에 밑줄을 긋고, 그 부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책갈피에 써서 남기도록 했다. 그렇게 모아진 내용은 모두 <대통령의 서재>라는 책자로 만들어서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마. 포스트잇 존 – 새 정부에 바라고 싶은 점은

현장을 방문한 사람들이 가장 쉽게 참여할 수 있었던 공간이다. 광화문1번가 앞 쪽에 포스트잇에 ‘새 정부에 바라는 점’을 쓰고 모두가 볼 수 있게 보드판에 붙이도록 했다. 포스트잇은 매일매일 수거해서 정리했고, 폐막식 때는 모든 포스트잇을 모아서 전시하기도 했다. 그 포스트잇은 모두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되었다. 포스트잇,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가장 간편하게 생각을 담는 도구이다. 국민이 정책을 다 만들어서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생각 속에서 단서를 찾아서 정책화하는 일, 그것이 향후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정책제안 시스템 혁신 중 하나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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