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커뮤니케이션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

본 원고는 계간지 시와반시에 2011년 3월에 기고한 글입니다.

최근 2~3년 사이에 트위터, 페이스북이라는 단어가 언론에 꽤 많이 등장했다. 모두 미국에서 만들어진 인터넷 서비스들이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서비스도 아니고, 한국어 지원도 제대로 안되는 서비스임에도 – 트위터는 최근에서야 한국어 지원 서비스를 시작했다 – 사람들은 열광한다. 현재 국내 트위터 인구는 250만명, 페이스북 인구는 350만명이다. 이미 수천만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네이버나 다음, 싸이월드와 같은 국내 포털의 회원수에는 턱없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사회 곳곳에서 의미 있는 변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국내 뿐만이 아니다. 튀니지와 이집트의 시민혁명을 촉발시킨 것이 페이스북이라는 말까지 들린다. 그리고 튀니지로부터 시작된 민주화 바람은 이집트를 넘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서비스 때문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그 이면에 감추어진 사람들간의 의사소통하는 방식, 정보가 퍼져나가는 방식,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방식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지금과 같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큰 역할을 해온 미디어

1987년 한국의 민주화운동 열기가 뜨거웠던 시기에 서울 시청앞 광장에는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나와 비슷한 요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만다는 사실과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적 열망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모인 집회에서 뿌려지는 유인물들은 사람들에게 시국 상황에 관한 중중한 정보를 제공했다. 지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가 지금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를 광장의 사람들은 유인물을 통해 확인했다. 그리고 집회의 단상 위에서 울려퍼진 대중 연설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함께 외치는 구호, 함께 부르는 노래가 거기 모인 사람들이 하나임을 깨닫게 하고 우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퍼지게 했다.  집회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은 신문과 라디오, TV를 통해 집회 소식을 접하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함께 한다. 그렇게 형성된 여론은 다시 신문, 라디오, TV를 통해 전달된다. 정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함을 인식한다. 6.29선언이 발표된다.

당시의 변화는 결국 사람들의 민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연대가 만들어냈지만 방송이나 신문과 같은 미디어가 그런 사실을 전혀 전달해주지 않았다면 변화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변화는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일 때 만들어지는 것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는 항상 미디어가 큰 역할을 해왔다.    

중세 시대에는 사자생이라는 직업이 있었다. 사자생은 책을 베껴 쓰는 사람을 말한다. 사자생은 오랜 세월 동안 전해져 내려온 인류의 지혜를 책으로 보급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 거의 유일한 직업이었다. 하지만 15세기 중반에 사자생 지위를 위태롭게 하는 기술이 등장한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활판인쇄술이 그것이다. 사자생의 손을 거쳐야만 가능했던 일이 기술에 의해 대체된 것이다. 희소성이 있었기 때문에 인정받을 수 있었던 사자생의 역할은 축소되었지만 책의 보급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그리고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전파매체 기술의 진화와 실용화는 읽고 쓰는 것에만 익숙한 사람들을 듣고 말하고 보게 만들기 시작했다. 원천 기술이 만들어지고 그 기술을 수용할 수 있는 도구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상당한 세월이 필요하다. 라디오와 TV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은 이미 19세기 말부터 발명되었지만 실제 라디오와 TV가 광범위하게 생활 속에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는 1960대부터 1980년대 사이이다.

인터넷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인터넷을 1990년대 후반기쯤부터 일상적으로 이용하게 된다. 하지만 그 기술은 1969년, 미국에서 구축한 아르파넷(ARPANET)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은 군사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네트워크였는데 미국은 쿠바나 소련의 공격에도 작동이 가능할 수 있는 컴퓨터 네트워크가 필요했다. 중간에 있는 몇개의 시스템이 고장나더라도 다른 시스템을 통해 연결될 수 있는 분산네트워크의 구상, 그것이 인터넷의 시작이다.

그것이 시초가 되어 인터넷은 인쇄매체와 전파매체가 담아냈던 모든 콘텐츠를 수용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모든 것을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수용가능하게 했다. 거기에 실시간으로 정보를 전송할 수 있고, 쌍방향적이며, 지역적 경계가 없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만들어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수많은 기술들을 채택해왔다. 하지만 인터넷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사회 전반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듯이 기술의 용도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에는 사람들의 몫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인터넷이라는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왔을까?

#. PC통신부터 시작된 자발적 조직화의 움직임

우리가 기억하는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과 같은 PC통신 이전에 케텔(KETEL)이라고 하는 무료 통신서비스가 있었다. 하지만 KETEL이 한국PC통신으로 인수되면서 유료화로 전환되었는데 KETEL이용자들은 유료화는 인정했지만 그 방식에는 반대했다. 그들은 한국PC통신에 의견을 개진했으나 진전이 없자 동아리 게시판을 폐쇄하면서 대항하기 시작했다. 결국 1992년 2월 24일, KETEL 이용자들은 한국PC통신 사옥 앞에서 촛불시위를 벌였다. 이후 KETEL이용자들은 동호회협의회를 구성하고 한국PC통신과 협상을 벌여서 일부 요구사항들을 관철시켰다. 우리가 기억하는 2002년의 미순/효순양 추모 촛불집회, 2008년의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훨씬 이전에 이미 네트워크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촛불을 들었다.   

이후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유니텔과 같은 PC통신망에는 수많은 동회회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논객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2008년 Daum의 아고라 경제방에서 SDE라는 필명으로 유명해진 서지우씨도 사실은 PC통신 하이텔 플라자의 경제 논객이었다.  그는 97년 금융위기 당시 하이텔 플라자에 경제 및 금융 현안에 관한 통찰력있는 글로 인기를 끌기도 했다. 현재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박경철씨도 PC통신의 증권 관련 동호회에서 활동했었다.

인터넷은 SDE의 서지우씨, 시골의사 박경철씨와 같은 사람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줬다. 애초에 신문과 방송, 잡지가 인정한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PC통신 게시판과 아고라라는 네트워크 광장에서 대중이 인정해주는 전문가였다. 전통미디어와 기존의 사회적 관계에 의해 인정받던 전문가의 영역이 파괴되고 있다.

무대의 크기도 달라졌다. 1995년 당시 PC통신 가입자는 30만명이었고 비회원은 볼 수 없는 무대였다. 2010년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인터넷 이용자수는 3,701만명이다. 15년 사이에 무대의 규모는 100배가 커졌다. 2008년 한국언론재단이 발표한 미디어수용자의식조사에 의하면 신문구독률은 96년 69.3%에서 2008년 36.8%로 줄었다. 반면 인터넷 이용률은 2000년 44.7%에서 2008년 77.1%로 증가했다.  특정 매체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매체는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공론의 무대가 바뀌었고, 사람들이 의존하는 매체도 바뀌었다.

#. 홈페이지와 블로그 – 기업과 소비자의 전통적인 관계가 흔들린다.

1999년, 소비자 운동에서 꽤나 의미있는 일이 일본에서 있었다. 도시바의 비디오 기기를 구입한 일본의 한 회사원은 테이프를 재생하려 했으나 화면에서 이상한 현상을 발견하고 도시바에 제품 수리를 의뢰했다. 그러나 전화는 여러 부서를 돌고 돌았고 몇차례 전화통화에도 담당자의 성의있는 답변을 듣지 못했는데 결국 한 직원으로부터 “상습적인 클레이머”라는 말과 함께 “업무 방해야”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 회사원은 도시바 직원과의 통화 내용을 녹음한 후 음성파일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후 한 잡지가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이슈가 되고, 홈페이지에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방문한다. 결국 도시바는 부사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사과하고 담당자를 문책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평범한 소비자였던 그 회사원은 홈페이지라는 대중적인 공간에 음성파일 하나를 올려놓았을 뿐이다. 물론 한가지 변수가 있었다. 바로 잡지가 이 사실을 보도한 것이다. 시작된 공간은 인터넷이었으나 관심을 촉발시킨 것은 인쇄매체였다. 그러나 2004년에는 이와는 다른 의미있는 사건이 미국에서 발생한다.

2004년 9월, bikeforum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 한명이 볼펜 한자루로 Kryptonite가 만든 자전거 자물쇠를 손쉽게 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곧 자물쇠 따는 방법을 동영상으로 찍었서 블로그에 올렸다. 초기 이런 사실을 Kryptonite사에 알렸으나 그 회사는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다. 미국의 유명한 파워블로그 중 한 곳인 engadget.com이 이 동영상을 퍼가서 블로그에 올린 것이다. 그 이후 동영상은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10일만에 1,800만명에게 노출되었다. Kryptonite는 결국 연 이익 40%에 해당하는 1,000만달러의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었다.

1999년과 2004년 사이, 불과 5년이라는 시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두가지 공통된 특성이 있다. 모두 소비자가 직접 자신의 의견을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전파했다는 사실이다. 한 사람은 홈페이지를 제작하여 그곳에 음성파일을 올렷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블로그에 동영상을 올렸다. 그런데 양상은 다르다. 1999년에는 잡지가 이 문제를 대중적으로 알려내는 큰 역할을 했고, 사람들은 그 사람이 만든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음성파일을 들었다. 하지만 2004년 관심을 폭발시킨 것은 언론사가 아니라 파워블로그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애초의 블로그에 방문해보는 것을 넘어서 동영상을 이곳저곳 퍼나르기 시작했다. 음성파일은 홈페이지 한곳에 있었지만 동영상은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었다.

정보를 누구든지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누구든지 접근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드는 것,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콘텐츠를 퍼트리는 것, 이것이 참여, 공유, 개방이라고 하는 웹2.0의 정신이다. 1999년과 2004년 사이에 웹2.0의 기술들이 널리 보급되고, 사람들은 그 기술들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 트위터 – 개인적인 일상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세상의 소식을 공유하는 관계형 미디어로

2011년, KBS오락프로그램 스펀지에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트위터에 관한 실험이 방송되었다. 먼저 4,200명의 팔로우 – 팔로우수는 노유민 트위터의 글을 구독하는 사람 숫자를 의미한다 – 가 있는 연예인 노유민씨에게 간단한 미션이 주어졌다. 장소는 여의도 간이 화장실.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화장실에 들어가서 휴지가 없다는 사실을 트위터로 올려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과연 트위터만으로 소통하여 그가 있는 화장실에 화장지가 전달될 수 있을까? 결과는 4명의 사람이 휴지를 갖다주었다. 사실 이 실험은 실제 일본에서 있었던 사건을 모방한 것이다. 일본의 한 남자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난 후 화장지가 없어서 이를 트위터에 올렸는데 그 글이 순식간에 퍼져나가 20분만에 화장실을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트위터가 이렇게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실시간 소통이 가능하고, 정보가 빠르게 전파되는 서비스의 특성 때문이다. 이 특성에 이동하면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결합되면서 전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트위터에 자신이 경험하고 듣고 생각한 바를 올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140자 이내의 문자밖에 쓰지 못하는 이 단순한 서비스는 뉴스의 속보 기능까지 대체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허드슨강의 비행기 추락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것은 허드슨강 근처 건물에서 일하는 한 남자의 트위터를 통해서였다. 타이거 우주의 자동차 사고를 가장 먼저 전한 곳은 브레이크뉴스라는 트위터 계정이었다. 강남 파이낸스 빌딩 화재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한 것도 그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의 트위터였다. 바로 내가 있는 현장에서 발생한 사건들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역할, 그것은 전통적으로 기자의 역할이었지만 이제 트위터가 그 역할을 대체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연예인 김제동, 소설가 이외수나 공지영, 개그우먼 김미와씨의 근황을 스포츠 연예신문을 통해서 볼 필요가 없다. 그의 트위터를 팔로우하면 된다. 트위터의 영향력은 팔로우 수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김제동 트위터의 팔로우수는 40만명, 이외수의 트위터 팔로우수는 62만명이다. 미국 가수 레이디 가가의 팔로우수는 현재 800만명이다. 800만명은 스위스, 이스라엘, 세르비아의 인구수보다 많은 수이다.

트위터에서는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순식간에 현실의 되는 경험도 종종 하게 된다. 카이스트 바이오뇌공학과 정재승 교수는 어느날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말을 남겼다.

“어린 시절 우주와 자연, 생명의 경이로움을 체험한 청소년은 자연을 탐구하는 삶을 의미있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구 20만 이하의 작은 도시나 읍면에선 과학자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한 대학원생, 연구원, 교수 중에서 작은 도시/읍면의 도서관에서 강연기부를 해주실 분을 찾습니다”

얼마 후 300여명의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트위터에서 만난 이 사람들은 2010년 10월 30일, 전국의 도서관에서 <과학자들의 작은 도시 강연>이라는 강연회를 동시에 개최했다. 한 개인의 작은 소망이 트위터라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연결망을 타고 흐르면서 300여명의 협력자들을 만나 현실이 된 것이다.

페이스북 –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서비스

페이스북은 140자 이내에서만 쓸 수 있는 트위터와 달리 관계를 기반으로 사진, 동영상, 글 등을 서로 업데이트하면서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이다. 페이스북은 2010년을 7월을 기준으로 전세계 이용자 5억명을 돌파했다. 그리고 반년이 지난 2011년 2월 현재, 이용자수는 6억명을 넘어섰다. 이번에 시민혁명이 일어난 이집트의 페이스북 이용자수는 2월 현재 540만명이다.

페이스북은 개방을 통해서 열린 플랫폼을 실현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이나 사진, 동영상에 사람들은 Like 버튼을 클릭하여 호감을 표현한다. 그런데 이 Like 행위는 페이스북 내부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도 가능하다. 누구든지 자신의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페이스북에서 제공하는 Like 버튼을 달 수 있다. 사람들이 내 홈페이지에 올려진 글을 보고 Like 버튼을 클릭하면 이 사실이 내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간다. 내 페이스북 친구들은 내가 무슨 콘텐츠를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콘텐츠를 클릭해본다. 내 친구들에게 내 관심사를 공유하게 해주는 것, 그것이 페이스북이 하고자 하는 일이다.

디젤이라고 하는 의류회사는 Below the line이라는 프로모션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방식은 이렇다. 소비자는 디젤의 매장에 가서 자신이 선택한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릴 수 있다. 그러면 내 페이스북 친구들이 즉각적으로 해당 옷에 관한 의견을 전달해준다. 리바이스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Friends Store라는게 있다. 내 페이스북 친구들이 관심을 표명한 리바이스 청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옆에는 이번달에 생일인 친구들이 표시된다.

비영리단체도 페이스북을 이용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환경단체인 씨에라클럽은 페이스북에 별도의 앱페이지를 개설했다. 이 앱페이지는 미국 내에 유해한 석탁더미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것인데 이용자가 Search를 클릭하면 내가 내가 살고 있는 지역 근처에 유해한 석탄 재더미가 있는지 여부를 알려준다. 내 페이스북 친구가 살고 있는 지역에도 유해한 석탄재더미가 있는지를 검색해주고, 만약 있다면 친구에게 그 사실을 알릴 수 있도록 해준다. 블로그가 개인미디어의 시작을 이끌었고, 트위터가 속보성과 확산성을 무기로 뉴스의 대중화를 촉발시켰다면 페이스북은 관계를 기반으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게 해준다.

아이폰 –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인 스마트폰

아이폰은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다. 그것은 손안의 미디어다.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폰 덕분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이메일을 확인하고,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들과 교류하고, 트위터를 통해 현장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폰 앱스토어에는 수십만개의 어플리케이션이 있다. 이 어플리케이션은 개발자라면 누구든지 만들어서 올릴 수 있고 누구든지 자유롭게 설치할 수 있다.

미국 보스턴시에서 개발한 아이폰앱은 보스턴 시 거리를 지나다가 보도블럭이 깨져 있거나 놀이터의 놀이기구가 고장이 나있으면 사진을 찍어서 전송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 보스턴시에 이 사진이 전달되고 민원으로 접수된다. 사진에는 위치정보가 부여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진이 어디서 찍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국내에 출시된 가격비교앱은 마트에 가서 상품 바코드를 사진으로 찍으면 즉각 이 상품이 다른 매장에서 얼마에 팔리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길거리를 가다가 카페에서 들려오는 음악이 너무 좋은데 그 음악을 모른다면 음악인식앱을 작동시켜 그 음악을 인식하게 한다. 그러면 그 음악의 제목과 수록된 음반, 가수를 알려준다.

TV뉴스에서 자막으로 나오는 영상 제보를 이제는 하지 않아도 된다. 어떤 사건사고 현장에서 있다면 아이폰을 이용해 동영상을 찍고 바로 유투브에 올릴 수 있다. 유투브에 올린 동영상은 자동연결기능을 통해 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전송된다. 그리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퍼나른다. 이것은 미디어의 권력이 이동하는 현상 중 하나일 뿐이다.

아이패드라고 하는 템플릿PC도 단순히 전자책만을 읽을 수 있는 도구가 아니다. 사람들은 책 크기만한 아이패드를 이용하여 전자책을 읽고 그 책의 어떤 문장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그 의견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전달되고, 같은 문장에 의견을 단 사람들과 함게 토론할 수도 있다. 지면이 한정된  책이나 집지, 신문이라는 인쇄 매체에서는 불가능했던 일들을 스마트폰이 가능하게 해준다.

QR코드라고하는 것은 일본 덴소사가 개발한 것으로 흑백 정사각형 문양의 코드로서 기존의 바코드보다 훨씬 다양하고 풍부한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코드이다. 사람들이 이 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동영상이나 특정 웹페이지로 이동할 수 있다. 이미 책은 QR코드를 통해 스마트폰과 결합하고 있다. 책 곳곳에 배치된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인식하게 하여 책에서 담아내지 못하는 정보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기사와 QR코드를 결합했다. 인터뷰 기사를 보다가 실제 인터뷰 영상을 보려면 기사 밑에 있는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된다.

새로운 행동을 이미 채택하고 있는 대중들

2001년 필리핀에서의 핸드폰 문자 메시지는 부패와 뇌물 사건으로 탄핵심판을 받은 에스트라다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대규모 시위를 조직화하는 유용한 도구였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11년 튀니지, 이집트의 시민들은 블로그와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서비스를 혁명을 촉발시키는데 이용했다. 23년간 통치해온 튀니지의 독재자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고, 30년간의 이집트 독재자였던 호스니 무바라크를 권자에서 내려앉히는 시민혁명을 목도한 주변국의 시민들도 거리로 나서고 있다.  페이스북은 비록 살고 있는 나라는 다르지만 이런 열망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연결시켜주고, 정보와 경험을 공유해주고, 서로를 격려해주는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

A mother carries her daughter on her shoulders with the word “Masr” or “Egypt” written on her forehead as Egyptians gather in Cairo’s Tahrir Square heeding a call by the opposition for a “march of a million” to mark a week of protests calling for the ouster of Hosni Mubarak’s long term regime, on February 1, 2011. AFP PHOTO /MOHAMMED ABED (Photo credit should read MOHAMMED ABED/AFP/Getty Images) – (사진 : http://www.flickr.com/photos/generationbass/5436445319. CC BY.)

튀니지의 슬림 아마모우는 2010년 뉴미디어 전문 매체인 ReadWriteWeb에 튀니지의 독재자 벤 알리 대통령이 조직해서 운영하는 인터넷 경찰이 튀니지 국민들의 페이스북이나 구글 계정에 접속하는 로그인정보와 비밀번호를 해킹해 검열을 하고 접속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튀니지 정부는 슬림 아마모우를 구속 수감했다. 튀니지 시민들은 슬람 아마모우의 석방을 촉구하는 인터넷 캠페인을 벌였다. 수많은 사람들의 반정부 메시지가 페이스북에 게재되고, 이를 지지하는 주변 국가들의 활동가들의 글도 페이스북에 흘러들었다. 엄청난 양의 반정부 메시지에 인터넷 경찰은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2011년 1월 14일, 튀니지 정부는 모든 인터넷 검열을 종료한다고 선언하고 슬림 아마모우도 석방시켰다. 그리고 그 다음날 독재자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도망쳤다.

이집트의 상황은 어떠했나?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으로 불만이 극에 달한 이집트에서 반정부 시위가 산발적으로 시작된 것은 1월 14일즈음이다. 그 즈음에 이집트의 한 청년단체는 페이스북을 통해 시위를 제안했다.  그리고 1월 24일, 페이스북에서는 약 9만명의 시민들이 시위참여를 선언했다. 놀란 이집트 정부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차단했다. 하지만 이미 들불처럼 번진 이집트 시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은 막아내지 못했다. 이집트에도 한명의 시민 영웅이 등장한다. 구글의 중동담당 임원이기도 한 와엘 고님은 2010년 6월, 경찰의 마약 거래 동영상을 공개했다가 경찰에 폭행당해 사망한 20대 청년인 칼레드 사이드의 이름을 딴 페이스북 팬페이지를 개설했다. 페이지의 이름은 ‘우리는 모두 칼레드 사이드’.

사람들은 이 팬페이지를 거점삼아 시위를 조직화하고 정보를 공유했다. 이집트 경찰에 납치되었다가 풀려난 와엘 고님이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시위 도중 숨진 사람들을 보고 ‘이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라며 흐느끼는 동영상은 이집트 시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이 영상이 나간 이후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 인파는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그리고 계속된 시민들의 압박에 30년간 이집트를 통치해온 무바라크는 11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임을 발표했다.

튀니지와 이집트 시민혁명이 페이스북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실은 시민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조건들이 사회에 내재되어 있었다. 그것은 곧 빵과 자유의 문제이다.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등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를 등한시하는 정부, 시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혁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시민들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튀니지와 이집트 정부가 두려웠던 것은 바로 그것이다. 때문에 인터넷을 검열하고 통제함으로써 국민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막고자 했다.

페이스북이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페이스북은 튀니지와 이집트 시민들이 불만을 표출해내고, 나만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줬다. 시민들은 과거처럼 지도자가 없어도 조직이 없어도 페이스북을 통해서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스스로 지도자가 되었다. 정치적 지도자가 없었던 시민혁명, 조직없는 조직으로 연결된 사람들의 시민혁명이었던 것이다.

페이스북 팬페이지 운영자인 와엘 고님은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팬페이지 운영자라는 것을 아무도 모르길 바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인터넷 혁명은 인터넷상의 젊은이들의 것이었고, 그 다음은 이집트의 모든 젊은이들, 그리고 이제는 모든 이집트인들의 것’이라면서 ‘영웅은 없다. 우리 모두가 영웅이다’라고 했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지도자 없고 조직 없는 시민혁명을 가능하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블로그나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 혹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정말 세상을 바꿀 것인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수사적 표현이다. 그리고 각자 바라보는 세상이 다르고, 변화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그렇다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서비스와 기술적 도구들이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더 나은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하면 세상은 훨씬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바뀔 수 있다.

인터넷을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기 시작한지는 불과 10여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10년 사이에 인터넷 환경은 완전히 바뀌었다. 단지 정보를 소비하는 인터넷 공간이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공간으로 변했다.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인터넷 세계로 들어갔던 사람들은 이제 이동 중에도 손에 쥔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세계에 접속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들은 이미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기술의 변화는 그것을 채택한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에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사람의 인식과 행동 양식이 변한다는 것은 곧 문화가 변하는 것이다. 문화의 침투 범위는 정치, 경제, 가정, 조직으로까지 광범위하다. 그동안 전통미디어로부터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스스로 미디어를 소유하게 되면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지식과 정보를 많이 소유한 사람들보다 지식과 정보를 많이 공유하는 사람들이 인정받고 신뢰를 얻고 있다. 사람들에게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전해주던 기자의 역할이 바뀌고, 시민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던 시민단체의 역할이 바뀌고, 전통적인 인간관계의 방식의 바뀐다.

알버트 아인쉬타인은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그 문제가 만들어졌을 때와 같은 사고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사람들이 서로 떨어져 있다는 거리의 한계,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고 토론하고 결정하기까지 소요되는 긴 시간 등을 감안해서 만들어진 수많은 사회제도와 운영 방식들은 모두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때문에 지금은 새로운 기술적 도구나 서비스들을 활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러한 소통의 기술들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줄 수 있도록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이다.

앞서 클레이 셔키가 이야기했듯이 혁명은 사회가 기술을 채택할 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기술을 수용한 새로운 대중들이 새로운 행동을 채택할 때 일어나는 법이다. 대중들은 이미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공간에서 새롭게 사람들과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고 협력하고 있다. 지금, 대중은 이미 새로운 행동을 채택하고 있다. < 끝>

@ 참고자료
– 한겨레21 738 호 : 하이텔부터 아고라까지 ‘경방고수’ 무한 진화
– 한국언론재단 : 2008언론수용자의식조사결과
–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 : 클레이 셔키
– 블로터닷넷 : 이집트혁명과 20세기 기술이 던지는 교훈
– 프레시안 : 이집트 혁명은 인터넷 혁명이 아니다.
– 김중대문화원 : 촛불시위의 효시가 된 PC통신인의 유료화 반대 시위
– 세미예의 환경,허브,대안언론 : 방송 스펀지에 등장한 SNS의 위력은?
– 한국경제 1999.7.20 : 인터넷 위력에 두 손 든 도시바
– Idea Bank IBK블로그 : 이집트에 민주주의 혁명 불러온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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