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은 2006년부터, ‘더체인지’는 2010년부터 함께 했다. 그리고 2017년 두 단체가 통합했다. 그 단체 이름이 ‘더이음’이다. 그리고 4년이 지난 2021년 1월, 우리(운영위원회)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가한 비영리민간단체, 국세청에서 발급한 고유번호증, 기재부에서 허가해준 지정기부금단체로서의 지위를 모두 내려놓기로 했다. 모든 후원 회원들의 CMS도 해지할 예정이다. 대신 자유롭고 자발적인 결사모임으로 전환한다.
현실적인 이유는 여유 부족, 자원 부족, 에너지 부족이지만 우린 그것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재미없는 표현이지만 단체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는 말을 쓰고 싶다. 단체를 해산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와 지자체에 등록되지 않고, 법적 지위가 없더라도 ‘더이음’은 비슷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조직체, 즉 단체다. 앞으로 우리는 왜 모였고, 왜 단체를 만들었고, 왜 일을 하는지, 도대체 운동이란 무엇인지 좀 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해산이 아니지만 뭔가 아련하다. 셀레임도 있지만 아쉬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일거다. 서울이라고 하는 곳에서 10년 동안 내 활동의 기반이 되어준 곳, 계속 이어져온 세 단체를 통해 정말 새로운 일을 많이 했다.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덕분에 배운 것도 많았고, 보람도 많았고, 인정도 많이 받았다. 4년간 맡은 단체의 대표 역할도 내려놓지만 내겐 너무 소중한 곳이기에 올해까지는 결사모임의 간사총무 역할을 하기로 했다. ‘더이음’이라는 결사모임에서 좀 더 진전된 이야기가 있다면 이제는 더 자유롭고 편하게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2017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과 <더 체인지>의 단체 간 통합 후, 단체명 <더 이음>으로 활동한지 만 약 4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은 2000년에 만들어진 시민자치정책센터의 활동성과를 계승하여 2006년에 “풀뿌리 운동의 다양한 사례를 발굴/전파하고 현장의 풀뿌리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창립했고, <더 체인지>는 2010년에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방법을 기획하고 전파한다’”는 취지로 창립했습니다. 그러니까 두 단체의 역사를 합치면 벌써 2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단체 간 통합 후 지난 3년간 <더 이음>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촉진하고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을 연결한다”는 통합 취지대로 몇 가지 핵심적인 사업에만 집중했습니다.
- 세대와 분야를 넘어 시민사회가 지켜야 할 가이드북 – 개인과 조직이 함께 성장하는 질문과 대화 워크북이 나오기까지 3년 간 서울시NPO지원센터와 [공익활동가포럼]을 진행했습니다.
- 사회변화를 위해 일하는 활동가들의 생각과 경험, 변화사례를 나누는 이야기모임을 촉진하기 위해 2018년 [활동가이야기캠프]를, 2019년부터 2년간 [활동가이야기주간]사업을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주관했습니다.
- 2016년부터 5년 동안 128명의 활동가를 만나서 인터뷰한 [활동가인터뷰]프로젝트도 진행했습니다.
- 2018년에는 활동가들을 위한 대화모임을, 2019년에는 풀뿌리와 민주주의에 관한 대화모임 을 개최했습니다.
- <더체인지>에서부터 시작해서 <더이음>의 초기까지 함께 한 ‘민주주의기술학교’는 협동조합법인으로 독립했습니다.
<더 이음>은 현장 활동가들의 네트워크형 조직으로 각기 다른 조직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의사결정을 하는 운영위원회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운영위원회는 단체의 설립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활동가가 하고자 하는 일을 무한신뢰하고, 최대한 도와주는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과 <더 체인지>로부터 이어져온 그런 문화를 바탕으로 지난 3년 간 큰 무리없이 단체를 운영해왔습니다. 물론 큰 무리가 없었다는 것은 사무실에 상근하는 상근활동가 없이, 자율적으로 일하는 상임활동가의 책임과 권한을 온전히 인정해준 분위기도 한 몫 했습니다. 단체에 대한 어떠한 요구도 없이 매월 묵묵히 후원을 해주신 후원회원 덕분이기도 합니다.
왜 단체의 법적 틀을 벗고 모임으로 전환하려고 할까요?
그럼에도 운영위원회는 지난 1월, 단체의 모든 법적인 틀과 지위를 해소하고, 자발적인 결사체로서의 모임으로 전환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부터 솔직히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20년 간 이어져온 단체 활동의 자원과 에너지가 거의 소진되었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더 이음>은 운영위원들과 상임활동가 1명의 책임으로 운영해왔습니다. 과거에는 각 운영위원들이 필요로 하는 일들을 제안하고, 서로 역할을 나눠서 함께 일을 하고, 공동의 프로젝트를 함께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단체는 그런 일에 든든한 뒷배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다들 현재 활동하고 있는 곳에서 역할도 많아지면서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고, 각자의 열정과 에너지도 많이 소진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운영위원회를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로 바꿀 수도 있고, 상근활동가를 뽑아서 일을 맡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우리가 지향하는 단체의 모습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자발적으로 공통의 목적을 위해 단체를 만들고 운영해온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단체 운영의 책임을 넘겨주기 위해서는 단체에 충분한 재원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더이음>은 지금까지 운영위원들 간의 좋은 관계를 바탕으로 후원회원들이 후원금만으로 유지해온 작은 조직이었습니다. 누군가가 책임을 요청할 수도 있고, 후원과 기부를 요청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지금 그럴만한 자원과 에너지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단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그것 또한 적절한 선택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법적인 지위를 가진 단체로서의 역할은 다하지 않았나 하는 판단을 합니다. 과거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과 <더체인지>에게도 그랬고, <더이음>이 하는 일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있다는 말씀을 종종 듣습니다. 그래서 교육과 용역 의뢰가 오기도 하고, 정보와 자문을 요청하기도 하고,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는 요청이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음>에 있는 운영위원들에게 향하는 요구이자, 그동안 축적해온 경험과 정보, 네트워크에 대한 신뢰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법적인 지위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회적 요구와 기대를 수용하기 위해 단체의 법적 지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요구와 기대는 사실 법적인 지위가 없더라도 수용가능하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물론 법적인 지위가 없다면 더 이상 돈이 오고가는 계약서는 쓰지 못하겠지만요.
앞서 말씀드린대로 단체로서의 법적 지위가 없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면? 비용이 계속 들어가고 후원금을 계속 받아서 운영비로 써야 하는 조직 대신 다른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운영위원회에서는 단체를 해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결사모임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해산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 결사체이자 네트워크 모임으로 전환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체가 문을 닫는 것인지 궁금해하실 수도 있는데요. 이 질문은 단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결정한대로라면 <더 이음>은 경기도와 행안부로부터, 국세청으로부터, 기재부로부터 더 이상 인정 혹은 법적 지위를 받지 못하는 단체가 될 것입니다. 대신 ‘자발적 결사모임’, 다른 말로 하면 ‘자발적 네트워크 모임’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이 모임은 단체가 아닐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 이음>은 경기도에 등록된 비영리민간단체, 국세청 등록된 임의단체 등의 해소 절차를 밟을 예정입니다. 그렇다면 후원회원들의 정기후원금도 더 이상 받아서는 안되겠지요. 자발적 결사모임으로 전환하면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끼리 회비를 걷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후원금은 아닐 것입니다. 이에 맞춰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CMS해지절차도 밝으려고 합니다. 그동안 단체에 아무런 요구도 없이 묵묵히 후원해주신 분들에게는 정말 감사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렇다면 <더 이음>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요? 말씀드린 그대로 “풀뿌리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믿는 사람들이자 사회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결사체이자 네트워크 모임으로 전환할 예정입니다.
이전보다 더 느슨하지만 좀 더 촘촘하게 연결된 그 어떤 네트워크 모임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체로서의 법적인 지위가 없더라도 어쩌면 더 재미있게, 더 의미있게, 더 활발하게 만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럴 에너지마저도 없어서 그냥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 정도로 축소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이 모임의 방향, 운영방식, 규모 등에 대해서는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추후 정리가 되면 다시 이야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더이음>이 했던 대외적인 사업들은 협력단체들과 상의해서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2000년 시민자치정책센터부터 풀뿌리자치연구소이음까지, 더체인지로부터 민주주의기술학교까지 함께 단체 운영과 책임에서 역할을 해주신 모든 분들과 정기적으로 때로는 일시적으로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더이상 법적인 관계, 운영위원이자 후원자로서의 관계는 아니겠지만 여기가 끝은 아니겠지요. 이후의 인연과 만남을 기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1년 2월 8일
<더이음> 운영위원회 올림
운영위원 : 김광원, 김승수, 박신연숙, 박운정, 이재은, 이주희, 이창림, 이해정, 이호, 장상미, 조아신, 최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