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연결하는 사람, 공간, 마을, 세계

2020년 지리산이음이 사단법인 코드가 수여하는 ‘커먼즈 어워드’를 수상했습니다. 수상기념으로 지리산이음을 소개하는 글을 커먼즈랩에 기고했습니다. _ 커먼즈랩

사회적 협동조합인 지리산이음은 카페, 지원센터,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하면서 지리산에서 대안적 삶의 가치가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갈 수 있는 새로운 실험들을 기획하고 그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법인으로, 현재 마을책방&카페 토닥과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작은 변화의 베이스캠프가 될 작은변화커뮤니티공간 들썩의 오프닝도 준비 중이다.

마을의 배움과 소통, 나눔의 공간 ‘마을책방&카페 토닥’

2012년, 시작은 마을 카페였다. 처음에는 아지트, 사랑방, 안식처, 배움터, 만화방, 작업실 등의 단어를 떠올렸는데 사실은 사람들과 함께 재미난 일을 벌일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 필요했다. 왜 굳이 공간이었냐면 공간이 조직의 역할을 대신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 만나서 대화하고 교류하는 방식,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이 급속히 달라지고 있었다. 이 변화는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다. 전통적인 결사체로서의 조직, 즉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깊은 관계로 유지되는 조직보다는 유연하면서 열린 공간, 느슨하게 연결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플랫폼이 필요했다.

그래서 먼저 생각한 것이 마을카페였다. 시골 지역 카페가 지금은 흔하지만 2012년에는 산내에서도 카페는 낯선 곳이었다.(지리산이음과 토닥은 남원시 산내면에 있다.) 더군다나 단순히 차를 파는 카페가 아니라 배우고 나누고 소통하는 커뮤니티 카페라니. 이름은 ‘토닥’으로 지었다. 토닥은 커피와 음료를 파는 가게가 아니라 좋은 관계과 경험을 공유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카페를 운영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영리사업자 등록도 했지만, 공간을 기반으로 일을 하기 위해 ‘지리산문화공간’이라는 이름의 비영리단체도 만들었다. 그리고 8년이 지났다.

2020년 초반, 두번째 리모델링을 한 후의 토닥

토닥은 2020년 책을 판매하는 서점 기능을 추가했다. 일주일에 한 번 마을 주민들이 원하는 책을 공동주문하기도 하고, 쉽게 살 수 없는 독립출판사의 책을 소개하기도 하고, 중고책을 기부받아 팔거나 교환하기도 한다. 2012년 카페 오픈 후 몇 년간은 수익금 중 일부를 마을기금으로 적립해서 연말에 마을의 봉사모임에 기부하기도 했다. 토닥은 커피를 팔면서 좋은 관계와 경험을 만들고, 기부를 받아서 기부를 하는 카페이기도 하다.

연말 토닥 송년의 밤 행사에서 마을기금을 4개 모임과 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현재 토닥은 지리산이음의 법인 사업체다. 카페를 만들 때 대지와 건물은 개인이 매입하고 리모델링은 지역 주민과 지인들, 취지에 공감하는 분들의 기부로 진행했다. 그때 약속했다. 카페를 개인이 소유하지 않고 공익법인을 만들어서 기부하겠다고. 그 약속은 지리산이음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법인화하면서 지킬 수 있었다.

마을책방이자 카페인 토닥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코로나19로 1년 동안 많이 어려웠다. 코로나19로 영업제한이 있었지만 자영업자가 아닌 법인 사업체라는 이유로 재난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카페 운영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시대가 바뀌고, 마을 환경이 바뀌고, 주민들의 취향이 바뀌면 또 다른 기능을 추가할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카페가 아닌 다른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마을책방&카페 토닥’은 지금 지리산이음의 모든 활동을 가능하게 해준 시작점인 정말 소중한 공간이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마을, 마을과 세계를 잇는 ‘지리산이음’

카페가 마을 공간이라면 지리산이음은 지리산권 5개 지역을 연결하고 그 연결의 힘으로 지역사회의 변화를 지원하기 위해 만든 비영리단체이다. 토닥을 만든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2014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정확히는 2013년 12월 31일 단체 등록을 했다.) 지리산은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3개 도에 걸쳐있는 산이다. 남원, 함양, 산청, 하동, 구례라는 5개 시군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산이다. 이 5개 지역을 우리는 지리산권이라고 한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지리산이음의 활동은 마을에서 지리산권으로 확장해가는 시기였다. 지리산권을 하나의 마을, 하나의 공간, 하나의 세계로 보고 일을 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리산권의 변화를 위해 필요한 일들을 제안하고, 기획하고, 함께 배우고, 사례를 만드는 일을 했다. 어떤 일은 지리산이음이 직접 했고, 어떤 일은 지리산권의 활동가와 단체들과 협력해서 했고, 어떤 일은 지리산이음이 하는지도 모르게 했다.

지리산권의 변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탐방하면서 ‘시골생활-지리산에서 이렇게 살지 몰랐지?’라는 첫 번째 책을 발간하고, 지리산권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정여행 워크숍, 커뮤니티공간워크숍, 적정기술워크숍, 납세자워크숍 등을 차례대로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5개 지역의 여러 활동가와 커뮤니티들과 연결되고 관계가 생겼다. 그리고 산내마을신문, 지리산여행협동조합, 살래청춘식당 마지, 산내놀이단, 지리산청년활력기금, 지리산에살래 등 마을에서 시도하고 있는 주민들의 일에 힘을 보탰다.

지리산과 지리산 밖의 사람과 단체를 연결하는 일도 시작했다. 지리산시골살이학교, 전국마을신문워크숍, 지리산청년공존캠프, 청년도서관, 지리산손기술캠프 등 지리산의 특색을 살리면서도 전국 곳곳에서 변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지리산에서 만나는 일들이었다. (지리산이음 초기 3년의 이야기는 ‘사람 마을 세계를 잇다’는 책에 담겨 있다.)

2014년부터 시작한 지리산시골살이학교. 약 일주일 간 농사, 음식, 건축, 여행 등 시골살이를 체험해보는 학교다.
전국에서 마을신문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 100명을 초대하여 1박 2일 동안 마을신문의 정보와 경험을 공유한 전국마을신문워크숍

그때 만들어진 것이 ‘지리산포럼’이다. 2015년이었다. 카페를 처음 만들 때 후원을 요청하면서 서울 밖의 지역에서,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세상의 관심사를 논하는 장을 만들고 싶다는 기대를 내보인 적이 있다. 사실 작고하신 신영복 선생님의 “역사는 변방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중심부에 대한 컴플렉스가 없어야 합니다.”는 말씀이 지리산포럼에 영향을 미쳤다.

왜 세상의 중요한 의제는 서울에서만 다루어야 하는가? 왜 모든 포럼과 컨퍼런스는 건물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가? 왜 컨퍼런스 참가자들은 유명인들의 발표만 듣고 가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지리산이음의 답변이기도 했다.

지리산포럼은 1년에 한 차례 지리산에 모여서 공유할만한 가치가 있고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일 수 있는 아이디어와 구상, 경험, 계획 등을 발표하고,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사회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는 포럼이다. 2015년 2박 3일 동안 100명이 모여서 처음 시작한 지리산포럼은 2019년에 3박 4일 동안 약 200명이 참여하는 포럼으로 발전했다. 2020년에는 500명이 5박 6일 동안 모이는 것을 초기에 구상했었으나 코로나19 때문에 소규모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지리산포럼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직장인들은 휴가를 내야만 올 수 있다. 그리고 10만~15만원의 넘는 참가비도 있다. 호텔과 같은 좋은 숙박시설이 아니라 마을의 게스트하우스와 민박을 이용한다. 포럼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식사를 하고, 숙소와 포럼 장소 사이의 거리도 멀다. 그럼에도 포럼에 오는 참가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나는 그 이유가 좋은 경험과 사람, 자연이라고 생각한다.

지리산포럼, 야외에서 즉석에서 이루어지는 대화의 시간들
지리산포럼의 다양한 주제섹션은 마을의 여러 공간에서 진행된다.
지리산포럼의 마지막 날에는 음악공연을 참가자와 마을 주민들이 함께 즐긴다.

우리는 흔히 컨퍼런스와 포럼을 좋은 지식과 정보를 얻고 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발표 내용을 준비하고 유명인들을 섭외하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한다. 하지만 진짜 참가자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리산포럼을 5년 동안 진행하면서 확인하고 있다.

포럼 참가자들에게 휴식과 교류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다양한 지식과 정보,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초대하고, 그들이 발표하고 대화하고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그 안에서 자발성이 생겨난다. 앞으로 5년 후에는 일주일 동안 1,000명이 모이는 포럼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고, 지리산이음은 그것을 위한 조건과 환경을 준비해나가려고 한다.

지리산의 작은변화 활동을 지원하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2018년부터는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리산이음 초기에 든든한 지원조직이었던 아름다운재단은 그 시기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제는 지역의 변화를 선도하는 변화지원조직을 민간 차원에서는 전국 최초로 함께 운영하는 협력관계로 발전했다.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는 이웃이 이웃을 돕는 자치와 협동의 공동체 확산을 비전으로, 지리산권의 공익활동 지원을 통해 시민사회의 성장과 지역사회의 작은변화를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 이 평범한 문구를 현실화하기 위해서 우리가 함께 채택한 방법은 ‘지원의 본질을 바꾸는 것’이었다.

센터는 3년 간 지리산권에서 100여개의 사업들을 지원하고, 지역의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100명의 사람들과 협력해왔는데 센터에서 가장 중점을 둔 일은 ‘사람을 지원하는 일’이었다. 모두가 오래 전부터 사람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지역의 작은변화활동가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그들에게 2년 간 활동비를 지원하면서 지역사회의 변화를 위해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소통하고 협력하는 것이었다.

꽤 오래 전부터 시민사회에서는 사람에게 투자해야 한다고 말해 왔지만 그 방법과 성과에는 항상 물음표를 던져왔다. 당장 지역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기 때문에 사람에게 활동비를 지원하는 것을 꺼려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역의 현실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지역에 필요한 것은 당장의 일이나 성과가 아니라 ‘사람’이다. 지역의 변화를 위해 무엇인가를 함께 해볼 수 있겠다고 하는 사람의 에너지다. 그런 사람이 몇 명만 있어도 지역에는 변화의 계기가 생긴다.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와 협력한 작은변화활동가들에 의해 지리산권 5개 시군에 작은변화 포럼과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마을교육과 청소년, 기후위기와 같은 의제별 네트워크도 만들어지고 있다.

2018년 첫 해, 5명의 지역협력파트너로 시작한 활동가 지원사업은 2020년부터 올해까지는 14명의 작은변화활동가를 지원하고 있다. 사업과 프로젝트로 인해 활동가의 역량과 에너지가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하고 싶은 일이 생겨나게 되고, 목적없이 만난 사람들과 의기투합하게 되고, 무엇을 하려고 하면 기획서와 예산서를 고민하기 보다 이것을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지 긴밀하게 상의할 수 있는 지원조직으로서 신뢰를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가까운 미래에는 센터가 지원하고 협력해온 지리산권 100여명의 작은변화활동가들이 자율적으로 서로를 돕는 지원과 협력의 공동체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기대, 그 100명의 활동가가 센터의 운영주체가 되어 지리산권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활동가들과도 서로 돕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다.

상반기에 오픈 예정인 작은변화베이스캠프 ‘들썩’

지리산이음은 상반기에 작은변화의 베이스캠프가 될 커뮤니티 공간을 오픈할 예정이다. 이 역시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준비하고 있다. 4년 전, 지리산이음이 지리산권 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사회 변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공부하고, 일하고, 교류하는 커뮤니티 공간을 구상해서 매입한 농협 창고 건물이 있는데 이 공간을 아름다운재단의 지원과 여러 사람들의 후원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카페가 마을 안에서 지리산권 지역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면, 이 공간은 지리산에서 세상의 변화를 위해 일하는 활동가와 활동을 연결하는 역할, 함께 배우고 교류하고 협력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할 것이다. 일종의 ‘사회 변화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을 위한 마을연수원의 로비’ 같은 곳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200명 이상이 숙박도 하고 회의도 하는 시민사회 연수원이 지리산에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큰 규모의 땅을 알아보기도 하고 그 정도 규모의 연수원을 지으려면 얼마의 예산이 필요한지 계산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왜 굳이 연수원을 건물로만 생각하고 있을까? 필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그러한 기능을 할 수 있는 마을에서의 협업과 가치 만들기’가 아닐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마을연수원 개념 아래 구체적인 구상을 하게 되었다.

(작은변화커뮤니티공간의 초기 구상도)

‘마을연수원’ 개념을 토대로 구상한 이 공간은 전국 곳곳에서, 더 넓게는 아시아 곳곳에서 사회 변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하고 토론하고 교류하는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운영하려고 한다. 숙박과 식사는 그동안 ‘지리산이음’이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마을의 게스트하우스와 민박, 식당을 협력하면 된다. 그리고 이 공간을 매개로 여러 단체, 기관, 모임들과 협력을 통해 다양한 의제별 포럼을 함께 기획하고 운영할 계획이다.

공유할 것은 공간만이 아니다

작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마을의 자원을 공유하기 위해서 우선 선행되어야 할 것은 공유할 것이 무엇인지, 공유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서로 알게 하는 것이다. 서로 알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연결이다.

우리는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를 통해서는 지리산권을 연결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리산권이라고 하는 지역적 경계도 허물고자 한다. 지역 경계는 행정이 그어놓은 경계일 뿐이다. 지금의 지역은 우리의 인식 속의 갇히 경계이다.

거주민 중심의 지역 주민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주민은 이제 지역이라고 하는 공유지, 그 안에 있는 공간, 자연자원, 경험, 정보,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들로 인식해야 한다. 그런 주민들을 공유주민이라고 해보면 어떨까? 그러면 우리가 공유해야 할 것들이 지역의 경계를 넘어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앞으로도 지리산이음은 마을책방&토닥을 통해 마을 속 사람들을 연결하고,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를 통해서는 지리산권의 다양한 활동(가)들을 연결하고, 들썩이라는 커뮤니티 공간을 기반으로는 지리산과 세계를 연결하는 실험과 기획들을 계속 해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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