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산책클럽 기간 동안 추천받은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어떤 설명 필요없이, 아무런 생각없이, 사전 정보도 없이 읽어 보기를 바란다는 추천의 말을 듣고 골라잡았다. 첫 장, 아… ‘데이비드 스타 조던’, 실존 인물이구나. (2023.1.2, p16)

강박적 수집가들을 상담해온 심리학자 ‘워너 뮌스터버거’가 쓴 <수집 : 다루기 어려운 열정>. 수집 습관은 ‘박탈 혹은 상실 혹은 취약성’이 발생한 후 급격히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으며, 새롭게 하나를 수집할 때마다 수집가에게는 폭발적인 도취감을 주는 ‘무한한 힘의 환상’이 흘러넘친다고 했다. (2023.1.2, p31)

미국 페니키스섬, 미국 박물학자들이 권위를 찾던 섬. ‘루이 아가시’가 박물학자들을 위한 캠프를 개최한 섬.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이 캠프에 참여하면서 루이 아가시와 인연을 맺었다. 박물학은 실험적 연구가 아니나 관측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것으로서 자연사, 박물사를 연구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그러고보니 정약전의 자산어보도 흑산도 섬에 유배갔을 때 쓴 책인데, 섬이라고 하는 공간은 수집가, 기록자, 박물학자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장소인가 보다. (2023.1.2, p.36)

루이 아가시는 분류학을 ‘창조주의 생각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창조주의 생각을 읽는 일이기 때문에 가장 높은 수준의 선교활동이자 신의 계획, 생명의 의미,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길이라고까지도 생각했다. 데이비스 스타 존스가 자신이 어렸을 때 별과 꽃에 빠져있었던 그 행위가 의미없는 짓이 아니라 매우 소중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루이 아가시를 만나고 나서이다. (2023.1.2, p.43) —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 문단이 또 한번 언급된다.

“나는 아이에게 꼬리를 붙들려 카펫 위로 끌려가는 고양이처럼 우아하게 진화로자들의 진영으로 넘어갔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쓴 말인데 룰루 밀러도 참으로 우아한 표현이라고 썼다. (2023.1.3, p68)

루이 아가시는 훌륭한 학문적 업적이 있었지만 그의 주장은 지금 시대에는 (아니 당시에도) 나쁜 주장이었다. 그는 진화론을 믿지 않는 것을 넘어 각 인종은 서로 다른 종이며 특히 흑인은 인류보다 낮은 종이라는 ‘다원발생설’을 가장 극렬하게 옹호했다. 또 흑인들이 생물학적으로 문명에 부적합하다고 했다. 훗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스탠퍼드대학교 초대 학장이 되었는데 루이 아가시는 스탠퍼드 대학에 동상으로 존재한다. 진화론에 대한 생각은 달랐지만 데이비드는 루이 아가시를 존중했다. (2023.1.3, p.82)

아이디어를 상상의 영역에서 세상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수단인 ‘이름’ 자체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2023.1.3, p.93) 이름에 대한 이 표현도 참으로 멋지게 설명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면 이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고, 그 힘이라고 하는 것이 잘못 쓰였을 때 어떤 나쁜 짓을 옹호하게 하는지도 알게 된다. 그리고 저자인 룰루 밀러는 이 책을 쓰는데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캐럴 계숙 윤’의 ‘자연에 이름 붙이기(Naming Nature)’을 책을 추천했다.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가 가져 마땅한 미치광이들이 생겨난다.” (2023.1.4, p.146) 이 말은 영국 역사가 ‘로이 포터’가 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참으로 우아하고 멋진 표현들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이 문장을 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각났다. 그는 이 시대가 마땅히 가질만한 미치광이였을까? 그 미치광이를 이 시대의 사람들은 마땅히 가질 힘조차도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이 시대가 그를 미치광이라고 내팽겨쳤을까?

(2023.1.4, p.181)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스탠퍼드 대학에서 쫓겨난 후 ‘인류의 퇴보’를 증명할 사람들에 대한 책을 쓰고, 이 백치들을 몰살하는 것을 옹호하는 책을 썼다. 그리고 그 책에서 언급된 단어가 바로 ‘우생학’이다. 그의 권위에 힘입어 이 우생학이 미국 사회 전역에 널리 보급되었다. 아….. 반전의 시작.

박물학을 가장 높은 수준의 선교활동이라고 생각한 루이 아가시가 쓴 말, ‘자연의 사다리’가 데이비드를 우생학에 미친 사람으로 만들었다. 자연의 사다리는 박테리아에서 시작해서 인간에 이르는, 객관적으로 더 나은 신성한 계층구조를 말한다. (2023.1.4, p.203)

우리가 보는 사다리의 층들은 우리의 상상의 산물이며 진리보다는 편리함을 위한 것이다.(2023.1.4, p.206)

자기 자신의 우월성에 대한 터무니없는 믿음이 폭력은 저질러도 괜찮다는 생각을 심어준다. (2023.1.4, p.222) 우월성은 그것 자체를 잘못된 태도이자 신념이다. 우월하다는 생각은 다르고 차이가 있다라는 생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명민하고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호흡, 모든 걸음마다 우리의 사소함을 인정해야 한다.”

데이비드는 우생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평화를 악용했다. 전쟁이 국가의 똑똑한 인재를 고갈시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023.1.4, p.233)

(2023.1.4, p.240) 어류는 없다. 물고기는 없다. 이 말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산어류’에 대한 비교 예시는 너무도 쉽게 이 논리를 이해하게 해줬다. 데이비드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미묘한 차이들을 ‘어류’라는 하나의 단어 아래 몰아넣은 것이다. 비로소 맨 앞에서 저자가 이름을 붙이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이유를 알게 되었다.

분기학자인 ‘릭 윈터바텀(Rick Winterbottom)”실제 자연 세계가 우리가 설정한 범주대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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