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청원모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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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아버지는 광주에 일이 있어 나가면 꼭 충장로에 있는 청원모밀집으로 나를 데려갔다. 따뜻한 온모밀, 지금 기억으로도 정말 맛이 있었다. 아버지는 지난 한 달 남짓 호스피스 병동에 계셨다. 4개월 전, 말기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해도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 이상 병원은 지긋지긋하다며 치료 중단을 선언하셨지만 점점 심해지는 고통과 가눌 수 없는 몸을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호스피스 병동을 찾았다. 지난 주에 병문안을 다녀오는데 갑자기 어린 시절 아버지와 같이 가던 그 청원모밀집이 생각이 났다. 충장로 본점은 아니지만 근처에 분점이 있다길래 그곳을 찾았다. 그 모밀집은 한 번도 혼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병원에 누워계신 아버지를 홀로 두고 먹는 온모밀은 그때 그 맛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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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 아버지는 숨을 거두셨습니다. 다행히도 아버지 곁에서 임종을 지켜봤습니다. 마침 광주 누나 집에 상의할 일이 있어서 갔는데 새벽에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새벽 1시간 정도의 시간. 아버지는 의식이 없었지만 “아버지 고생하셨어요. 오랫동안 저희 잘 보살펴주셔서 감사해요. 편히 쉬세요. 사랑해요”라고 말할 때, 저와 누나의 말이 들리는지 물었을 때 눈을 지긋이 감고, 제 손도 힘겹게 꼭 잡아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이런저런 큰 병으로 참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20년 전에는 위암 판정을 받고 위를 모두 절개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 암을 극복하고 잘 지내셨는데 세월은 이길 수 없었나봅니다. 뒤늦게 치료불가능한 담도암이 찾아왔습니다. 육체적으로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이제야 겨우 편안한 잠을 오랫동안 주무시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이 아프고 슬픈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봅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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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아버지는 2023년 1월 15일(일) 새벽 04시경 병환으로 별세하였습니다. 가시는 길 깊은 애도와 명복을 빌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오늘 소식을 듣고 와주신 분들에게, 마음을 전해주신 분들에게, 멀리서 위로의 인사를 건네주신 분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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