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 웹진문화관광
생활인구/관계인구 정책에 필요한 것들
“생활인구를 통해 지역활력 높인다.”
2023년 5월 17일, 생활인구의 세부요건 등에 관한 규정을 제정·시행한다는 행정안전부 보도자료 제목이다. 생활인구는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소멸 이슈에 대응하고, 교통과 통신 발달과 이동성 및 활동성이 증가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도입한 제도이다. 이 규정에 의하면 생활인구는 ‘통근, 통학, 관광 등의 목적으로 주민등록지 이외의 지역을 방문하여 하루 3시간 이상 머무는 횟수가 월 1회 이상인 사람’이다. 정부는 인구감소지역을 대상으로 이동통신 데이터 등을 활용하여 월 단위로 생활인구를 산정해 공표한다고 한다.

생활인구 숫자가 산정공표되면 인구감소지역 지자체들은 생활인구를 늘리기 위해 경쟁적으로 목표치를 정하고 관련 사업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그런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남원시는 2024년까지 생활인구 10만명, 2026년까지는 20만명을 유치목표를 다짐하는 선포식을 열었다. 울산 동구청도 미래비전으로 생활인구 20만명을 제시했다. 강원도는 인구정책 종합계획의 목표로 정주인구 160만명, 생활인구 40만명을 정했다. 참고로 2023년 5월 기준, 남원시 인구는 77,415명, 울산 동구청 인구는 150,846명, 강원도 인구는 1,533,081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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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인구 목표치를 제시한 지자체들은 기한 내에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목표 달성 여부를 묻기 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생활인구가 늘어나면 지역은 활기가 넘쳐나고 주민들의 삶은 좋아질 것인가? 지역과 주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기를 기대하는가? 행정안전부와 지자체가 생각하는 ‘생활’은 무엇이고, 월 단위로 산정되고 공표되는 ‘생활인구’를 통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생활인구’로 규정된 사람들이 지역과 어떤 관계를 맺기를 원하는가?
특히 마지막 질문인 ‘생활인구로 규정된 사람들이 지역과 어떤 관계를 맺기를 원하는가?’에서 말하는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생활인구도 원래는 일본의 관계인구 개념과 정책에서 나온 말인데, 일본에서도 인구감소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관계인구 개념을 정책에 활용하기 시작한 지는 얼마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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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관계인구는 일본 정부에서 처음 만들어낸 개념이 아니다. 지역의 현장 활동가들이 사용해온 말이다. 2016년 일본의 ‘다카하시 히로유키’는 <도시와 지방을 섞다 : 타베루 통신의 기적>이라는 책에서 관계인구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다. 그는 지역 고유의 농산물을 스토리와 함께 정보지 형태로 발간하는 <도호쿠 타베루통신>의 창립자다. 지역에 정착하는 것은 진입장벽이 높아서 어렵고, 관광은 일회적이어서 지역과 사람을 지속적으로 이어주지 못하기 때문에 <타베루통신>을 통해 그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지역에 정착하지 않더라도 관계를 맺는 수준이라면 주저하지 않는 도시인들이 많다고 생각해서 관계인구 개념을 처음 사용했다.
이후 일본의 친환경제품이나 슬로우라이프 등을 다루는 잡지 <소토코토>의 편집장이었던 ‘사시데 카즈마사’가 <우리들은 지방에서 행복을 찾는다>에서 관계인구 개념을 구체화했다. 그는 미래는 관계의 시대라고 선언하고 관계인구가 말 그대로 지역과 관계를 맺어오는 인구를 뜻하며 자신의 마음에 드는 지역에 주말마다 방문하거나 자주 오지 못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지역을 응원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즉, 관계인구는 ‘특정 지역과 주민들과 지속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렇게 민간에서 이야기되기 시작한 관계인구 개념을 지자체들이 먼저 수용해서 관련 사업들로 연결했고, 일본 정부도 202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지방창생전략의 하나로 관계인구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시작한 일본의 사례를 보면 관계인구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보다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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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현 아스카무라(明日香村)는 인구 5,680명 정도의 작은 지역이다. 고령화로 인해 일손도 달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사업이 ‘논밭오너제’다. 100평방미터의 논을 40,000엔에 분양해서 도시인들이 직접 농사일에 참여하면서 햅쌀을 가져갈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4월과 9월에는 지역민과 오너들이 모이는 축제도 개최했다. 논밭오너제는 호응이 좋아서 논으로 시작해서 밭작물인 감귤, 감나무, 죽순 등 8개로 확대되었고, 2018년에는 710건의 분양을 기록했다.
돗토리현 히노초(日野町)는 고향주민카드제를 시행 중인데, 지역 외 연고자의 등록을 받아서 소식지를 보내고 교류 모임을 개최하고 있다. 단순히 교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히노초의 정책과 사업에 대한 의견도 구한다. 지역 특산품에 대한 감수도 받는다. 인구 3,000명 남짓인 히노초와 관계를 맺고 지역의 일에 참여하는 사람이 2019년에는 417명이 되었다.
훗가이도 유바리(夕張)시는 인구감소가 전국 최고인 지역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유바리 라이커스(Likers)라는 사업을 진행, 커뮤니티 재구축과 역사문화 계승 사업에 관계인구가 참여할 수 있게 만들었다. 관계인구의 지혜를 빌려서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과 관련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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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일본은 지역과의 관계를 쌓아가면서 관계인구를 늘려가는 방식으로 관계인구 관련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각 지자별로 관계인구를 연결하는 목적, 방식, 사업이 다르기 때문에 기준이 동일할 수 없다. 즉 동일한 기준으로 측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그 관계의 다양성을 보지 않고 하루 3시간 이상 월 1회 이상 방문하는 사람을 생활(관계)인구로 측정한다면 그 이면에 있는 관계성과 사람이 배제되고 숫자만 남게 된다. 한 지역의 온전한 주민이 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1년만에 적응해서 정착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10년의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관계인구도 마찬가지다. 1~2년 안에 몇 명 달성했다는 것이 기사거리는 될지 언정 관계인구 본래의 취지를 달성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관계인구 형성을 위해서는 어떤 조건과 환경이 필요할까?
첫째, 관계인구가 지역 공동체에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여백이 있어야 한다. 관계인구를 구체화시키는데 기여한 <소토코토> 잡지에서는 “많은 도시 젊은이들이 지방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관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지역에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여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백이란 지역 커뮤니티에 들어갈 수 있는 여지 즉, 지역의 일에 참여하고 관여함으로써 지역에 공헌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자신으로 인해 무엇인가 바뀔 수도 있다는 기대를 의미한다. 이미 그 지역 자체가 완성된 공동체이거나 권위적이고 폐쇄적이어서 커뮤니티에 진입할 여백이 없다고 판단되면 애초에 관계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의미이다.
둘째, 조용하고 여유롭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일정 기간 머무는 사람들을 위한 기반 시설 정비가 필요하다. 국내 연구에서도 농촌 지역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개인의 정서적 행복과 자연환경이 좋은 곳에서의 여유로운 삶이었다. 여기에 더해 관계인구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역에 오래 머물기 위해 숙소와 식당과 같은 일반적인 편의시설 뿐만 아니라 카페나 서점, 동네 술집처럼 어울림의 장소, 커뮤니티 기능을 하는 공간들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차가 없어도 이동을 용이하게 해주는 걷는 길이나 자전거도로 등 기반 시설 정비가 필요하다. 관계인구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잠시 머물렀다 가는 여행객이 아니라 일정 기간 머물거나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셋째, 다양성의 문화와 콘텐츠, 공유할 수 있는 자원이 있어야 한다. 하드웨어 기반과 함께 정서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지역 콘텐츠와 커뮤니티 문화가 필요하다. 콘텐츠와 문화는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반대로 관계인구에 해당되는 사람들에게 나올 수도 있다. 도시의 젊은 사람들이 지역을 방문할 때 많이 찾는 책방, 빵집, 카페 등도 모두 지역성과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문화와 관련이 있는 곳들이다. 외부 사람들을 열린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는 다양성의 문화가 필요한 것은 그들이 단지 좋은 자연만을 즐기러 오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해당 지역 사람들과 교류한다는 것은 지역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유무형의 자원을 공유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넷째, 지역과 관계인구 사이에서 연결자 역할을 하는 공간과 조직이 필요하다. 숫자로 파악되는 관계인구가 아니라 실제 지역 혹은 지역 주민들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지원하는 것을 고유의 임무로 하는 민간 조직과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행정은 앞에서 언급한 여러가지 기반 시설과 조건, 환경을 조성하는데 집중하고, 동시에 실제 지역 주민과 관계인구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와 자원을 파악하여 서로를 연결해주고, 그들 사이에 만들어지는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민간 조직의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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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율이 높아지지 않는 한 지역의 인구 늘리기 정책은 다른 지역의 인구를 뺏아오는 제로섬 게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생활인구나 관계인구는 다른 지역과 연결된 관계를 우리 지역으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즉, 관계인구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여러 지역과의 연결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관계인구 사업은 다른 지역과 연결된 관계를 끊어서 우리 지역에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관계의 연결선에 더해준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더해진 연결선들이 많아지면 그 사람이 어느 지역의 관계인구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한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연결된 사람의 숫자가 아니다. 지역과 연결된 사람들의 관계 사이에 흐르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지역과 관계인구 사이에 무엇이 공유·교환·거래 되는지, 또 어떤 가치가 흐르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역과 관계인구의 연결선이 만들어낸 관계망에서 흐르는 정보, 가치, 자원의 내용과 규모가 곧 관계인구 사업의 성패를 결정할 것이다. 지역과 연결된 관계인구의 수가 아무리 많아도 그 관계 사이에 흐르는 것이 이동에 따른 시간과 도로에 버려지는 기름과 매연가스,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 파는 돈 밖에 없다면 기존 방문객, 여행객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은 관계인구의 숫자를 늘리고, 관계인구를 위한 워케이션과 위락시설을 만들고, 관계인구를 위한 또 다른 주거단지를 만드는 것이 먼저여서는 안된다. 지역과 관계인구 사이에 흐르는 정보, 기술, 에너지, 환대, 지지, 응원, 따뜻함과 같은 무형의 가치와 공유교환거래되는 다양한 유무형 상품과 콘텐츠, 서비스에 주목해야 한다. 관계 사이에 흐르는 것들에 주목하면 자연스럽게 그것을 만들어내는 관계의 당사자들에게 주목할 수밖에 없게 된다. 또 관계 사이에 흐르는 것이 다양해지고 많아지면 관계의 당사자들이 서로에게 이익과 도움이 되는 일들에 대한 요구를 드러낸다. 행정과 지자체가 해야 할 일은 이 시점에 정주인구와 관계인구의 요구를 수렴하여 필요한 일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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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관계인구에 중요한 것은 커뮤니티다. 관계인구가 관계 맺는 곳은 시청과 군청이 아니라 지역이며, 지역의 어떤 장소이자 공간이고, 또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지역 사람들과 관계인구가 이루는 커뮤니티는 기존의 행정단위로 구분된 지역 중심의 커뮤니티가 아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모든 지역의 사람이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지역의 경계가 옅어 지는 커뮤니티다. 지역 정주인구와 관계인구가 이루는 커뮤니티, 즉 지역을 매개로 한 관계망이 우리 지역에서 어떤 위상과 역할을 할 것인가를 잘 살펴야 한다.
만약 지역과 관계 맺고 있는 관계인구까지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 서로 인정한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공동체의 일원이라면 누군가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누군가는 혜택을 보는 관계가 아니다. 관계인구로 하여금 공동체 일원으로서 참여와 개입의 여백을 만들어주는 태도 뿐만 아니라 실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와 문화도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주민참여예산의 일부를 관계인구에게 배정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관계인구는 지역의 소비자가 아니다. 관계 맺기가 일방적이고 시혜적이어서는 안된다. 제발 우리 관계인구가 되어달라고 부탁할 일도 아니다. 관계인구에 주목한다고 자칫 정주인구의 자존감을 해치는 일도 조심해야 한다. 결국 관계인구를 인구늘리기 및 지역활성화를 위한 수단으로만 볼 것이냐, 우리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것이냐가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후자를 선택한다면 기존의 행정체계와 지역경계, 주민의 책임과 역할, 인구문제에 대한 좀 더 다양한 상상력이 나올 수 있는 여지가 생길 것이다.
참고자료
- 행정안전부, ‘생활인구의 세부요건 등에 관한 규정 제정‧시행’ 보도자료 – 2023.5.17
- 남원시 ‘생활인구 10만명 유치’ 선포식 – 전북일보. 2023.6.11
-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생활인구 20만명 목표로 구정 추진” – 경상일보. 2023.6.30
- 생활인구 40만명 만들기, 차별화된 모델 개발 중요 – 강원일보.2023.2.17
- 즐거운 도시연구자 브런치스토리 – 브런치 @sookyoungjung
- 일본의 관계인구 개념의 등장과 의미, 그리고 비판적 검토 – 지역사회학회, 류영진, 2020
- 관계인구를 활용한 인구유입방안 – 지방행정연구원. 2021
- 일본 관계인구 정책에서 실마리 찾을까? – 한겨레신문, 2021.8.28
- 일본 관계인구서 지방 회생의 답을 찾다 – 중앙일보, 2019.12.2
- 100세 시대, 도농상생의 농산어촌 유토피아 실천모델 연구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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