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협력을 우선하다 – 전략보다는 신뢰를 기반으로

Editor’s Message – 필란트로피, 본연의 길을 가다

  • 신뢰는 자란다. 땅 속에 심겨진 씨앗이 자라듯 그렇게 신뢰도 천천히 자란다.
  • 신뢰는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요한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정보를 많이 수집한다고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상대의 평판이나 행적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해서 상대를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은 인격적인 만남의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상대의 일상과 환경을 함께 경험하고, 상대의 고민과 목표를 공감하는 것이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를 통해 관계 안에서 신뢰는 자란다.
  • 신뢰는 인간관계, 조직, 사회의 성과를 좌우하는 중요한 자산으로, 신뢰가 높아지면 효율성과 속도가 높아지고, 신뢰가 결핍되면 비용과 갈등이 증가한다…… 긴 안목으로 신뢰를 축적하면 효율과 속도가 오히려 높아지는 것이 신뢰의 마법이다.
  • 스티븐 코비는 그의 책 <신뢰의 속도>에서 신뢰 구축의 핵심 요소로 성실성, 의도, 역량, 결과를 꼽는다. 말하자면 서로의 진심을 의심할 필요 없이 각자의 역량과 성실성에 대한 믿음을 갖고 협력하며, 결과를 완수할 때까지 모두가 책임을 다하리라 확신할 수 있다면, 우리는 신뢰의 유익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 이 책의 필자들은 필란트로피 생태계의 구조적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이러한 토양이 변화하지 않으면 신뢰가 자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원기관이 지원대상을 타자화하는 태도, 불평등한 권력구조, 전략적 필란트로피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과도한 심사와 증빙 요구, 지원기관의 과도한 데이터 수집과 일방적인 피드백 시스템 등 필자들은 필란트로피 생태계의 깊숙한 문제들을 드러내며 변화를 촉구한다.

신뢰 기반 필란트로피의 부상

  • 재단이나 중간지원조직이 비영리단체에 대해 지나친 통제권을 행사하면 사회변화를 촉진하는 데 필요한 환경을 만들 수 없다. 비영리단체가 지원기관들의 요구를 맞추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쏟으면, 필연적으로 단체의 미션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 신뢰 기반 필란트로피 프로젝트는 지원기관과 수혜단체 간의 권력관계 불균형을 완화시키기 위해 여섯 가지 자금 지원 관행을 개선한다는 소박한 목표를 가지고 2020년에 시작되었다.

인종정의를 구현하려면 신뢰가 필요하다

  • 1년 단위 지원금에서 다년 단위의 지원금으로 전환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질문과 가능성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를 전략적 재구성이라 명명했다. 이것은 재단의 기금을 지역사회 파트너에게 단순히 이전하는 것을 넘어, 그 과정 자체를 재단의 핵심 가치에 완전히 부합하도록 조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우리는 파트너를 단순히 지원하는 것에서 그들의 역량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 신뢰 기반 필란트로피를 실행하면서 우리는 깨닫게 되었다. 우리의 가치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실제 기금 지원 방식에는 우리가 파트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책임감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년간 지원되는 기금을 도입하거나 불필요한 문서 작업을 없애는 변화를 통해, 우리는 조직의 활동이 가치관과 더욱 밀접하게 일치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 2022년 11월, 힐-스노든 재단 이사회는 의사결정 권한의 일부를 위임하기로 결정했다. 그 회의에서 우리는 다년 단위의 일반 운영 지원금 지급 방식으로 전환하고, 10만 달러 이하의 모든 지원금에 대한 의사결정 권한을 재단 직원들에게 이양하기로 합의했다.

지원기관의 책임을 다시 생각하다

  • 지원기관이 파트너와 함께 공동의 비전을 실현하려면, 각자가 자신의 역할에 책임을 다하고, 상호 신뢰에 기반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 많은 지원기관들이 목표 달성 인원, 실행 지표, 분기별 임팩트 보고서, 종합적인 재무 감사에 대한 과도한 증빙을 요구한다. 이러한 자료는 사업에 실제로 지역사회에 미친 임팩트를 평가하기보다 지원기관의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데 초점을 맞춰진 경우가 많다.
  • 지원기관이 임팩트를 측정할 땐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자신의 역할을 성찰하거나 평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지역사회 파트너가 수행한 일을 평가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다.
  • 지원기관이 일방적으로 데이터 수집 방식을 결정하고, 북반구 선진국의 관점을 강요하며, 증거기반(evidence-based)이라는 명목으로 특정 프로그램의 실행을 요구할 때, 단체와 지역사회 간의 신뢰는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 원빌리지 파트너스(One Village Partners)는 지역사회를 지원하는 기존의 역할에서 벗어나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조직으로 변모하고 있다.
  • 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비영리 파트너들의 리더십과 비전, 뛰어난 역량이 중요한 시기이다. 책임에 대한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접근방식은 비영리 파트너를 지원하는데 있어 필수적이다.

기업이 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방식

  • 기업이 휴대전화나 햄버거를 고객에게 판매하듯, 사회문제의 복잡하고 다면적인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거나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그건 우리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 필란트로피의 근본적인 문제는 타자화(othering)에서 시작된다. 지원기관이 베풀고, 지역사회는 수혜한다는 식의 프레임워크는 문제를 유발한다. 이러한 관점은 지역사회가 이미 효과적인 변화를 위한 해결책과 지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지역사회가 가진 지식과 맥락, 관계가 없다면, 지원기관들은 오늘날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들을 해결해나갈 수 없다.
  • 필란트로피와 비영리단체, 그리고 이들을 돕는 지역사회에서도 비슷한 관계의 역학이 존재한다. 내가 일하는 기업자선 부문에서도 그렇지만, 정말 많은 지원기관이 관계를 쌓는데 집중하기보다 스스로를 일종의 홍보대사처럼 여기고 있다.
  • 나는 사회복지부터 지역사회 조직화에 이르는 다양한 현장에서 일했던 경험 속에서 한 가지 문제를 반복적으로 마주했다. 그것은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할지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에 급급하다는 것이었다…… 어떻게가 잘 이뤄지면 활동의 가장 혁신적인 요소가 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매우 큰 해를 끼칠 수 있다.
  • 우리는 지역사회 파트너와 직접 소통하면서, 많은 지역단체들에 조직 건강성 강화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렇게 우리는 800개 이상의 비영리단체와 7,000명 이상의 비영리 리더를 대상으로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 신뢰기반 접근 방식을 실천하려면 지속적인 자기성찰을 통해 권력의 역학관계를 무너뜨려야 한다. 보유하고 있는 자원을 면밀히 살피고 지역사회의 요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우리의 지원은 보조금의 차원을 넘어 그 이상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기금 지원 외에 지역사회를 지원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지원을 신뢰 기반 지역사회 투자(Trust-based community investment)로 명명하며, 기업으로서의 우리의 모델이 단순한 기금 배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휴식과 즐거움, 그리고 신뢰

  • 2007년 아시아 태평양 섬 주민 커뮤니티 내 가정폭력과 성폭력을 종식하기 위해 활동하는 ‘아시아 태평양 가정센터(Center for the Pacific Asian Family, CPAF)의 대표인 데브라 수는 로스앤젤레스의 지역사회 변화를 이끄는 리더에게 투자하는 더피 재단(Durfee Foundationa)으로부터 3개월간의 안식년 지원금을 받았다.
  • 안식년은 데브라 수와 센터 모두에게 전환점이 되었다……재단의 리더로서 우리는 비영리단체의 활동과 사회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는 믿음이 있다. 우리는 안식년을 비롯한 몇 가지 형태로 재충전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여러 통찰을 얻었다. 다른 지원기관들 또한 휴식과 즐거움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이를 지원하는 사려 깊은 접근을 보여주었고, 그들의 실천은 우리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 휴식은 변화를 불러온다. 데브라 수의 사례처럼 안식년은 개인뿐 아니라 조직, 지역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 더피재단의 안식년 공식은 간단하다. 참가자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는 코치를 배정하고, 이전 더피 재단 안식년 수혜자들의 경험과 지혜를 공유하며, 안식년 동안 참가자의 모든 업무 및 관련 연락을 차단하는 것이다.
  • 최근 몇 년간, 새터버그 재단(Satterberg Foundation)은 파트너 단체들이 더 정의롭고 지속가능한 사회와 환경을 구축할 수 있는 최적의 지원 방안을 찾기 위해 단체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 왔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의 피로와 번아웃이라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재단은 직원들이 휴식, 즐거움, 재충전을 누릴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지원 파트너에게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 재단은 워싱턴 주에게 흑인, 원주민 및 유색인 임원 연합회가 안식년 프로그램을 설계할 수 있도록 초기 자금과 다년간의 지속적인 지원을 제공했다. 이 연합은 유연한 지원을 바라는 지역사회의 필요에 맞춰, 3개월이 일반적인 안식 기간을 3~5일의 짧은 휴가로 나누는 등 다양한 선택지를 마련했다.
  • 지치고 고갈된 개인은 정의로운 세상을 위해 변화를 이끌 수 없다. 지원기관들은 비영리 파트너들이 휴식과 기쁨을 누리도록 도움으로써 그들을 지원할 수 있다. 이를 위해 필란트로피 영역은 파트너를 신뢰해야 한다. 그리고 재충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이해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역량에 투자해야 한다.

재단은 운영에서도 신뢰를 구현해야 한다

  • 우리가 가진 자원, 지식, 강점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지역사회에서 가장 효과적인 기금제공자이자 체인지메이커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갖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화를 이어가면서 우리는 신뢰에 뿌리를 두면서, 형평성과 정의라는 핵심 가치에 전념하는 새로운 형태의 기금제공자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 기금을 지원한다는 것은 전통적으로 ‘수혜단체의 미션을 지지한다’는 증거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기금을 지원하더라도 지원의 범위, 기간,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비영리단체를 더욱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공동책임구조의 장기적 파트너십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 새로운 지원방식은 더 큰 규모의 일반 운영비를 더 오랜 기간 제공하는데, 이는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해 비영리단체들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 수혜단체를 중심에 두고 학습하기 위해 우리는 ‘정의, 형평성, 학습 전담 전략가’라는 직책을 새롭게 만들었다. 이 직책은 수혜단체의 목표를 재단의 목표로 삼고, 파트너십의 진행상황을 모니터링하며, 상호 학습한 내용을 공유하는 역할을 한다. 기금 배분은 여전히 재단의 주요 기능이지만, 이제는 후원자 조직화, 수헤단체 네트워크, 재단의 방법론 공유, 수혜단체의 경험 공유 같은 다른 핵심 활동이 병행되고 있다.
  • 프로그램 단위로 운영되고, 제안서나 보고서 형식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전통적인 필란트로피 관행은 기금 배분 주기를 예측 가능하게 했을 뿐 아니라, 재단이 지위에 안주하고, 기존 문서 양식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게 했다. 이러한 관행은 우리의 수고를 덜어주었지만, 동시에 영향력과 성취감을 떨어드렸다. 이제 우리는 좀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파트너 역할을 해야 한다. 통제가 아닌 신뢰를 기반으로 관계를 형성해야 하고, 커뮤니티, 직원, 이사회 등 모든 파트너에 대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다인종 민주주의를 구현하려면

  • 신뢰기반 필란트로피가 우리의 표준이 된다면 어떤 모습일지 묻자, 존슨(전국LGBTQ태스크포스의 상임이사)은 비영리단체와 사회운동이 “단체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신, 이 나라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인프라와 문화적 해결책을 제시하며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더 이상 정체성에 기반한 운동이 아니라, 폭넓은 변화를 추구하는 운동으로 방향이 전환될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재단, 협력을 우선하다 – 전략보다는 신뢰를 기반으로”에 대한 답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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