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비욘드 로컬> ③ 성과 – ​작지만, 사라지지 않는 성과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출판전문잡지 <기획회의>에서 잡지 속의 잡지 <비욘드 로컬>을 계간으로 내고 있다. <비욘드 로컬> 기획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기획위원은 한 번은 꼭 인트로 글을 써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하필이면 ‘성과’를 테마로 한 이번 호에 인트로 글을 담당하게 되었다. 비영리조직과 활동의 성과, 임팩트, 아웃컴, 변화 등의 단어를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들었던 2025년이다. 늘 성과는 양면의 칼과 같다. 우리의 성과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우리의 성과를 지켜보는 제3자와 갑자의 시선은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정답을 찾는 길이 아니라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알지만 늘 고민거리다. 그런 상태에서 로컬의 성과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봐야 하나를 생각하면서 쓴 글이다.

로컬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정부, 지자체, 기업은 저마다 다양한 로컬 정책과 사업을 기획하고, 자원을 투입하고, 변화와 성공의 가능성을 기대한다. 로컬에서 독특하고 세련되고 대담한 시도를 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미디어에 자주 등장한다. 로컬에서 의미있는 시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꽤 매력적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로컬을 기반으로 한 활동과 사업, 투자의 성과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로컬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만큼이나 다양한 지점에서 성과를 이야기할 수 있다. 카페나 숙박시설, 커뮤니티 공간을 통해 사람없는 지역에 사람이 모이기 시작한다는 이야기, 지역 특산품을 브랜드화한 상품이 인터넷을 통해 전국적으로 팔려나간다는 이야기, 한 사람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축제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지역에 대단한 경제적 효과를 가져온다는 이야기 등등. 좋은 사례만 놓고 보면 모두 흥미롭고 대단하고 희망이 가득하다. 이것이 성과라면 성과일 수 있고, 실제 성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로컬의 성과를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로컬에는 수치화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다. 또 로컬은 수치화할 수 없는 희노애락의 삶이 녹아있는 생활 터전이기도 하다. 그래서 로컬의 성과는 무엇이고, 어디까지를 성과라고 할 수 있는지 늘 고민이다. 로컬에서 활동하는 주체들과 로컬에 투자하고 지원하는 기관들이 진정 기대하는 변화와 성과가 일치하는지도 생각거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미 로컬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활동과 사업의 성과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이다. 한 사람이 한 지역, 마을, 장소, 공간에 정착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결심이 필요한가. 지역 공동체 안에서 관계과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에는 얼마나 복잡한 감정과 갈등이 존재하는가. 낯선 사람이 만든 공간이 지역 주민들의 일상과 자연스럽게 만나기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쌓여야 하는가. 그래서 로컬의 성과는 하나의 활동과 사업의 성과로 설명되기보다는, 그렇게 로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과 관계가 만들어낸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는게 본질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세상사 모든 일이 그렇지만 특히 로컬에서의 성과는 한 사람, 한 단체, 한 기업만의 역량과 노력으로 설명될 수 없다. 로컬 관계망 속에는 느슨하게, 때로는 단단하게 엮이고 버티고 지지한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로컬 안에서 활동하는 주체들 사이의 신뢰,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모여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그 흐름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가. 성과를 말할 수 있으려면 그것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함께 기억해야 한다. 시작을 보지 못하고, 로컬 구성원들 사이의 다양한 맥락을 제거하면 결과는 그저 숫자일 뿐이다.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해서 그 지역이 꼭 잘 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로컬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흥미로운 변화이지만, 그 숫자만으로 로컬의 활성화를 말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로컬에 사람을 모이게 만든 활동 주체들이 얼마나 심리적 안전감을 가지고 정주의 지속 가능성을 확신하면서 자신의 일과 삶을 로컬에서 이어갈 수 있는가이다. 외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이 성과가 아니다. 로컬 활동 주체들이 기존 주민들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할 때 진짜 성과는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성과 뒤에 애써 외면하고 싶은 실패와 갈등, 절망의 이야기들도 서서히 모습을 드런낸다. 로컬에서 성과와 실패는 한 몸처럼 움직인다. 로컬 내부에서 성공을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실패를 말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로컬의 이런 상황을 인식해야 잠깐의 성과에 너무 흥분하지도 않고, 잠깐의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는다.

로컬은 단순히 서울에서 저 멀리 떨어진 지방의 소도시나 외딴 마을이 아니다. 자본과 행정, 정치, 권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오히려 작은 규모이기에 합의된 규칙을 넘은 이해관계가 더 예민하고 복잡하게 작동한다. 그래서 로컬에서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그 복잡한 구조 안에서 관계를 조율하고, 실천을 이어가며, 묵묵히 버티는 일이기도 하다. 성과란 그렇게 긴 시간 속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는다. 이번 <비욘드 로컬> 가을호는 ‘성과’를 주제로 로컬에서 성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섯 개의 키워드로 나누어 살펴본다. 그 키워드는 공간, 사람, 자본, 기록, 지속가능성이다. 

Part 1. 공간 : 지역의 정체성을 짓는 커뮤니티 공간

첫 번째 파트 <공간>에서는  지역 공간이 단순한 장소를 넘어 일상과 관계, 실험의 거점이 되어가는 장면들을 들여다본다. 정기황 건축가는 충남 홍성의 오누이커뮤니티센터의 사례를 통해 지역 및 공동체와 긴밀하게 연결된 로컬 커뮤니티 공간을 설계할 때 고민해야 할 요소들을 이야기한다. 이태호 윙윙 대표는 대전 어궁동에서 카페, 서점을 비롯해 주거/업무/여가 공간 운영과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창업가와 지역사회를 연결하는 안녕거리의 실험과 철학을 소개한다. 권경은 행복전통마을 사무국장은 안동의 전통문화와 관광을 접목한 공간 운영으로 일자리 창출과 로컬 식재료 소비에 기여하고 있는 행복전통마을의 운영기를 이야기한다. 

Part 2. 사람 : 주민이 이끄는 마을 행정

두 번째 파튼 <사람>에서는 지역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다양한 주민 주체들의 실천이 마을을 바꾸고 있는 장면들과 마을이 변하기 위해서 필요한 법과 제도에 대해 알아본다. 권상동 마을만들기네트워크 운영위원장은 생활인구와 관계인구도 중요하지만 정주인구의 참여를 중심으로 한 마을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자립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마을기업과 마을공동체 선순환을 이뤄낼 수 있는 통합적인 정책체계를 제안한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농본 대표는 기초지자체 단위를 읍면으로 복원해 각각 세분화된 생활권을 반영하는 읍면자치권이 필요한 이유를 현장 사례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안준성 영월 삼돌이마을 이장은 주민들과 어울리며 마을살이를 경험해볼 수 있는 삼돌이학교를 운영하면서 귀농귀촌인을 환대하며 함께 마을을 만들어가는 주민참여모델을 소개한다. 송하진 밀양은대학 시민협력팀장은 로컬에서의 대안적 삶의 든든한 지지 기반이 되는 밀양은 대학의 설립과 운영기, 구체적인 커리큘럼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연결에 대해 이야기한다. 

Part 3. 자본 : 지역을 살리는 자본의 길

세 번째 파트 <자본>에서는 시장과 수익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지역의 맥락과 정체성을 반영한 자본 실험들을 살펴본다. 오승훈 공익마케팅스쿨 대표는 로컬브랜드 전문가로서 국내 지역사업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국내외 우수사례를 통해 지역의 고유성을 살리면서도 서과를 낼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한다. 김지음 빈고 책임활동가는 조합원 출자금을 공유자본으로 하여 공동체 공간과 공유지를 넓혀가며 이를 통해 절약한 자원을 공동체 및 사회적 약자와 나누는 공동체은행 빈고의 철학과 실험기를 소개한다. 이연경 공감만세 소장은 지역의 100년 역사의 광주극장 보존과 발달장애 청소년야구단 지원을 만들어낸 고향사랑기부제의 운영현황과 바람직한 방향을 제안한다. 

Part 4. 기록 :  미디어로 들여다보는 지역

네 번째 파트 <기록>에서는 지역 안팎의 시선을 연결하며, 로컬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확산해 온 지역 미디어의 역할에 주목한다. 박누리 월간옥이네 편집장은 시시콜콜한 지역살이의 기쁨과 슬픔을 기록하고 지역문제를 뾰족하게 파고들어 대안을 모색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지역미디어의 효용성과 확장성에 대해 설명한다. 김주완 전)경남도민일보 기자는 지역 문제를 구체적인 사안, 인물 등을 심도있게 취재하여 해당 지역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는 지역 저널리즘의 역할과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주영 오마이뉴스 지역섹션 담당자는 중앙지로서 지역 섹션을 활발하게 운영해온 언론사 담당자로 지역의 현안고 이야기를 조명하는 이유, 지역 활성화에서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한다. 

Part 5. 지속 가능성 : 지역을 물들이는 다양한 빛깔

다섯 번째 테마로 로컬에서 살아가는 주체들의 다양성을 지지하고 포용하는 노력은 지역의 미래와 지속가능성과 관련되어 있음을 주목한다. 이승미 안산시글로벌청소년센터장은 국내에서 가장 이주민 비율이 높은 안산시에서 다문화특구와 글로벌청소년센터를 통해 이주민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다양성에 기반한 지역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활동의 성과와 지향점, 사례를 소개한다. 박화정 잼토리 대표는 충북 음성에서 이주노동자가 많은 지역 특성을 활용해 이들을 지역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양성하는 글로컬타운 사업의 설립계기와 구체적인 운영기를 이야기한다. 

속도보다는 방향을, 숫자보다는 맥락을 살피는 성과

로컬의 성과는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이야기를 살펴야 한다. 그저 성공의 사례를 나열하기보다 로컬에 한 사람의 삶이 어떻게 자리를 잡고, 로컬 안에서 관계가 어떻게 신뢰를 쌓아왔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속도보다 방향을, 숫자보다 맥락을 중시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로컬에서 성과란 무엇을 이루었다는 말 이전에, 무엇을 지속할 수 있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비욘드 로컬> 가을호는 로컬의 성과를 말하되, 다른 시선으로도 봐야 하는 지점에 주목했다. 공간, 사람, 자본, 기록, 지속 가능성이라는 다섯 개의 키워드를 따라가며 로컬의 시간과 연결,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보자. 그래서 우리가 로컬을 이야기할 때,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삶과 관계를 함께 떠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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