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가 알맹이를 밀어낸 학교를 읽고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다.

http://ivoice.or.kr/112 이 글을 보고 고등학교 시절이 생각났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과 맞주 앉았다. 어느 대학 무슨 과를 선택하느냐의 갈림길, 당시 입시제도는 단 하나의 선택만 가능했다. 학교와 학과를 선택하고 떨어지면 후기 아니면 재수. 

담임은 모 대학교의 응용통계학과를 가라고 했다. 그게 나중에 써먹을데가 많아서 취직도 잘 될거라고 했다. 나에게 무슨 일을 해보고 싶은지는 묻지 않았다. 취직하는데 좋은, 돈을 그럭저럭 벌면서 살만한 학과라고 했다. 담임은 평소와 다르게 무척 친절했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담임은 사실 학과 보다는 대학 이름에 더 관심이 있었다. 신설학교인지라 담임은 소위 좋은 대학을 많이 보내고 싶어했다. 나에게 제시된 학과는 그 대학에서도 낮은 점수대의 학과였다. 아마도 내가 공부를 조금만 더 잘했다면 서울대학교 농대를 추천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 당시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서는 고대나 연대쪽을 원했으나 서울대 농대를 간 친구들이 꽤 있다. (서울대 농대를 다니신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 그걸 적극 주도한 사람이 담임이었다. 그보다 조금 성적이 낮은 친구들에게는 고려대나 연세대학교의 점수 낮은 학과들이 제시되었다.  

좋은 대학이 아니어도 좋으니 광고홍보학과나 국문학과 혹은 국어교육과를 가고 싶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부여된 가이드라인이라는게 있었다. 1년간의 모의고사 성적을 종합한… 그러나 대학 선택을 앞둔 몇 주 전 체육시간에 자율학습을 하지 않고 운동장에 나가서  축구를 했다는 이유로 – 여름 방학 이후로는 체육시간은 자율학습이었는데 그때는 체육선생님을 꼬득여서 실제 체육을 했다 – 가이드라인 점수를 10점씩 깍아서 진학상담에 활용한다고 했다. 정신머리가 글러먹어서 모의고사보다 점수가 낮게 나올거라는게 이유였다. 그 10점 때문에 내가 가고 싶은 대학과 학과는 떨어질 확률이 높다고 했다. 거기에 우리 학년은 전교조 출범과 함께 학내/외 시위에 적극 참여했다는 이유도 한 몫했다.

몇번의 상담… 밀고 당기기의 연속… 지쳤다. 대학과 전공이 무슨 상관이랴. 가서 하고 싶은 공부를 스스로 하면 되지. 포기하는 심정으로 담임이 제시한 곳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곳도 아닌 무난한 대학의 무난한 과를 선택해서 원서를 냈다. 담임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합격률도 중요했을테니까. 지나고 보면 전공이 내 인생의 방향에 미친 영향은 별로 없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만족하며 사니까 후회는 없으나 뭐랄까 그 때를 생각하면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

그 담임은 지금 그 고등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그리고 내 모교는 그 지역에서 좋은 대학을 많이 보낸다고 소문난 꽤 잘나가는 학교가 되었다. 

지금의 고등학교 상황은 잘 모르지만 나이가 들면서 한가지 깨달은 것은 그게 어디 선생님 개개인의 잘못이겠냐는거다. 선생님을 그렇게 몰고간 환경이라는게 있을 것이다. 그걸 바꿔야지…. 수업에 집중하게 하지 못하는 환경, 학생들의 고민을 함께 나눌 시간이 부족한 환경… 이계삼 선생님이 쓰신 글에도 비슷한 해법들이 있다. 지금은 어쩌면 그런 환경을 바꾸는 것을 우선시해야 하지 않을까? 환경을 바꾸고도 문제가 있다면 교사의 자질을 언급할 수 있겠지… 그런데 자꾸 거꾸로 가고 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선생님들이 언급하면 집단이기주의로 보게될거고. 교사,학부모,학생.. 교육의 당사자라고들 하는데 어쩌면 교육환경의 문제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제기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 교육과 학교의 문제에 있어서는 우리 모두가 당사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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