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카와에서의 연수 둘째날, 인구 8,000명 남짓한 시골마을을 온전히 걸어보는 일정이 있었다. 비록 ‘산책’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넓은 땅이었지만, 그곳의 낯설지만 익숙한 풍경을 가까이에서 느껴보기 위해 숙소에서 읍내까지 걸었다. 이 길을 걷는데만 1시간 30분이 걸렸지만, 길 양쪽으로 펼쳐진 잘 정돈된 논밭과 멀리 보이는 지평선, 지평선을 내려다보고 있는 다이쎄스산은 시간을 잊게 만들었다.
히가시카와는 쌀로 유명하다. 그래서 풍요로운 녹색의 논이 풍경의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일본 최대의 자연공원 중 하나인 ‘다이쎄스 산(해발 2,291m)’이 멀리 보이지만 지리산과 다르게 산자락 아래 펼쳐진 논과 밭, 마을은 넓고 평탄했다. 그 길을 따라 걷는 동안 제주도의 중산간 지역을 걷는듯한 친근한 느낌도 들었다.
사진 속 오른쪽 상단에 보이는 가로등처럼 생긴 화살표는, 이 지역에서 겨울철이 눈이 많이 내렸을 때 도로와 인도의 경계를 알려주는 중요한 표식이라고 한다. 눈이 쌓여 도로와 인도가 구분되지 않을 때, 이 표식은 자동차와 사람들의 안전한 이동을 돕는 역할을 한다. 이런 표식은 특히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표식으로 홋카이도에 있는 히가시카와에 얼마나 눈이 많이 내리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표식이기도 했다.

논과 논 사이에 불쑥 나타난 작은 빵집 간판이 눈에 들어왔지만, 결국 그곳을 찾아가 보지는 못했다. 간판이 있으니 멀지 않은 곳에 있을거라고 생각했지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아쉽게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해외에서 돌아와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면, 문득 ‘그때 저기를 가봤어야 했는데’하는 아쉬움이 남는 장소들이 있다. 논뷰가 펼쳐질 것만 같은 이 빵집도 아마 그런 곳 중 하나로 기억될 것 같다. 만약 혼자였다면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조금 더 시간을 들여서라도 기어코 그 빵집을 찾아갔을지도 모른다.

디자인이 멋진 간판이 있어서 가까이 가봤다. 이 대형 간판은 히가시카와가 2050년까지 지속가능한 농업을 향한 선언을 알리는 상징적인 간판이다. 간판에는 다이세쓰 산 아래로 펼쳐진 논들이 이미지로 담겨 있는데, 이 그림처럼 실제로도 마을 곳곳에서 논 정비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히가시카와는 특히 깨끗한 물로 유명한 지역이다. 홋카이도에서 유일하게 상수도를 사용하지 않는 곳으로, 그만큼 자연에서 얻는 물이 풍부하고 좋아서 품질이 뛰어나다. 이처럼 뛰어난 물 자언 덕분에 논농사를 짓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히가시카와는 ‘다이쎄스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이곳에는 등산용품 매장과 산악인을 위한 다양한 시설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일본의 대표적인 아웃도어 브랜드인 몽벨(Mont-bell) 매장도 이곳에 있다. 이 매장이 히가시카와에 들어설 때,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디자인의 의류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조건이 붙었다고 한다. 이는 히가시카와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지역 경제와 관광을 활성화하려는 상생의 노력이 담긴 결정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다른 매장에서는 볼 수 없는 디자인의 티셔츠가 정말 많았고, 가격도 저렴해서 4장의 여름 티셔츠를 구매했다.

YAMATUNE는 산악인을 위한 전문 기능성 양말 브랜드로, 특히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고급 양말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제품은 발가락 양말이다. 발가락 하나하나를 감싸줌으로써 발의 자유로운 움직임을 돕고, 발가락 사이의 마찰을 줄여준다. 기능성 양말인만큼 하이킹, 트레킹, 런닝, 스키 등 다양한 스포츠 활동에 적합하다.
매장에는 YAMATUNE 창업자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어 브랜드의 역사를 엿볼 수 있으며, 실제라 초기에 양말을 제작하는데 사용했떤 직조기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방문객들은 YAMATUNE 제품이 어떻게 제작되었는지, 그리고 이 브랜드가 얼마나 정교한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매장 밖에는 양말 자판기도 있다.




한적한 도로를 일행들과 함께 걸으며 마주한 풍경, 차는 거의 없었고 히가시카와 둘째 날의 고요한 여정을 가장 잘 담아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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