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서양화가, 고희동의 가옥과 미술관

창덕궁 옆 노무현 시민센터에 갔다가 휴식 시간에 산책을 했다. 마을 안으로 조금 걸어가면 원서동 빨래터가 나온다. 지금도 물이 흐르는 이 빨래터에서 옛날에는 조선 궁인과 일반 백성이 함께 빨래를 했다고 한다. 원서동은 창덕궁 후원의 서쪽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버스 정류장 이름도 빨래터다.


마을 안쪽으로 산책하려고 나섰는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우리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고희동 작가가 살던 집이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고희동 작가가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1918년에 직접 설계하여 지은 목조주택, 이후 41년간 거주했다고 한다. 입장료도 무료이다.


미술관은 정말 아담하다 할 정도로 작았다. 주택 안의 방 3칸을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작가가 남긴 작품이 많지 않다보니 전시실마다 3점~6점 정도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목조주택은 일본 유학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일본 다다미방 느낌이 물씬 풍겼다.


최초의 서양화가라고 하지만 고희동 작가는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동양화가로 작품활동을 했다. 그래서 그가 남긴 서양화는 3점에 불과하다. 아래 작품은 그가 유학시절 졸업작품으로 그린 자화상이다. 고희동은 조선인 최초로 도쿄미술학교에 다녔는데, 그 학교 전통이 졸업작품으로 자화상을 제출했다고 한다. 현재 이 작품은 도쿄예술대학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나머지 두 점 모두 자회상이다.


원서동의 고희동 미술관은 세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헐릴뻔했지만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들의 요구로 등록문화재가 되었고, 이후에 종로구에서 매입하여 2012년부터 2019년까지 고희동 가옥으로 유지하고 있다가, 2019년 고희동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노트와 수첩세트를 기념품으로 살 수 있고, 고희동 자화상에 내 얼굴 사진을 찍어 AI로 합성해주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AI로 만든 합성사진은 QR코드를 통해 내 스마트폰에 내려받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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