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휴 동안 Marie Myung-Hee Lee가 번역한 《임팩트 네트워크: 연결, 협업, 그리고 시스템 변화》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학습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개인과 조직을 연결하는 임팩트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변화를 만들어가는 철학과 운영 원칙을 다양한 사례와 함께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비영리 활동가라면 꼭 읽어보시길 추천하고 싶습니다. 제목만 보면 실무적인 내용이 많을 것 같지만, 단순한 방법론을 넘어 사회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고민해야 할 본질적인 가치와 원칙들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특히 시민사회운동이나 비영리 활동을 하면서 연결, 변화, 사람, 관계, 신뢰, 네트워크, 협업, 연대 같은 키워드에 관심을 가지셨다면 더욱 의미 있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이런 키워드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활동하면서 이런 질문들을 한 번이라도 해본 분들에게도 추천합니다.
- 왜 단체 간 연대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까?
- 네트워크에 이름을 올렸지만,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가 뭘까?
- 처음 모인 자리에서 서로의 생각도 모르는데 자료만 들여다보는 것이 맞을까?
- 사회 변화를 만들기 위해 모였는데 정작 형식적인 의사결정만 반복하는 건 아닐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연결과 네트워크, 협업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변화를 만들어가는 근본적인 방식임을 이야기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결’이나 ‘네트워크’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거나 특별한 역량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오해라고 말합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비슷한 일을 해오면서, 막연하게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것들을 이 책을 통해 더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암묵지를 명시지로 바꾸는 시간이었다고 할까요. 또 책 속에서 언급된 다양한 단체와 네트워크 사례, 인물, 도구들을 인터네에서 찾아보는 과정도 흥미로웠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모든 변화의 출발점은 관계이며, 신뢰 있는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은 풀뿌리운동에서도 자주 강조되는 이야기입니다. 오래전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부터 시작해서 더이음, 지리산이음의 활동을 하면서 연결, 사람, 관계, 변화를 키워드로 삼아왔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신뢰 있는 관계’가 있었습니다. 풀뿌리운동에서는 이를 ‘호혜적 관계’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풀뿌리 운동이 운동 분야를 의미하지도 않고, 지역운동과 동일하지 않음에도 그냥 작은 지역에서나 하는 일에 맞는 정신이라고 왜곡되기도 했습니다. 또 한국에서는 ‘신뢰’나 ‘관계’라는 단어가 종종 인맥을 잘 쌓아야 한다거나 친한 사람들끼리만 하는 폐쇄적인 방식이라고 치부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변화의 철학과 본질이 아닌 개인의 성향이나 스타일로부터 기인하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이야말로 변화를 만드는 핵심이며, 운동의 본질이라고 강조합니다.
서구 시민사회에서도 신뢰 있는 관계가 변화의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네트워크를 단순한 모임이 아니라 ‘가꿔야 할 것’으로 바라보았고, 이 분야의 철학과 지식을 발전시켜왔고, 함께 활용할 수 있는 도구들을 만들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험과 검증을 거쳐 사회 변화를 위한 네트워크를 가꾸는데 필요한 노하우를 축적해왔습니다.
전문성, 트렌드, 차별화를 명분으로 조직이 점점 분화하고, 경계를 만들며, 세련된 표현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이 책은 다시금 우리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알려줍니다. 그래서 책을 읽고 정리해본 나름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혼자서도, 한 단체의 힘만으로도, 좋은 아이디어만으로도, 프로젝트 하나만으로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연결하는 신뢰의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고민하고, 공부하고, 가꿔나가야 할 것들은 결국 사람, 연결, 관계, 협업 같은 단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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