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기억삼아 글을 쓰다보면 문득 어떤 장면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리고 그 장면을 봤을 때의 생각이나 느낌이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이번에 대산농촌재단 잡지에 글을 쓸 때는 20년 전 구례군 산동면 논 위에 진행된 지리산문화제가 그렇게 들어왔다. 그렇지. 그때 그 논 위에서 펼쳐진 풍경을 보면서 논과 밭에서, 마을 회관에서,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세상사를 논하는 포럼이 열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지. 그렇게 지리산포럼과 같은 프로그램을 처음 생각한 시점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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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농촌을 떠올릴 때 여전히 고요함과 복잡한 세상과의 단절을 생각한다. 오래전 함께 일했던 조직 대표는 재택근무 중인 나에게 농담처럼 묻곤 했다. “거기 인터넷은 터져요?” TV 속 자연과 시골살이 프로그램에서는 특히 그런 이미지가 부각된다. 도시인에게는 그 조용함과 단절이 농촌의 매력일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귀농·귀촌, 농사는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에게 일종의 로망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고요함은 곧 외로움일 수도 있다. 단절은 고립감일 수도 있다. 서 있는 위치에 따라 풍경이 다르게 보이듯 농촌도 바라보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여유롭고 기분 좋은 여행지이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낯선 방문객을 매번 만나야 하는 곳일 수도 있다. 그래서 지역은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다. 특히 농촌은 더욱 그렇다. 서울 외 지역은 다 지방이라고 ‘퉁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같은 지역이라도 어느 마을에 사느냐, 누구와 관계 맺느냐에 따라 삶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농촌, ‘다른 소리’가 모이는 곳
나는 농촌에서 태어났지만 청소년기와 젊은 시절을 도시에서 보냈다. 그리고 다시 농촌으로 내려온 지도 어느덧 20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여전히 농촌과 도시를 오가며 살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내가 경험한 농촌, 내가 꿈꿔온 농촌은 TV 속 농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처음 농촌으로 이주할 때부터 고요함이나 단절 같은 단어를 떠올린 적이 없다.
나에게 농촌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새로운 일들이 싹트는 가능성의 공간이었다. 도시의 과속한 일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낯선 공간과 시간 속에서 다양한 삶의 철학과 방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곳, 그것이 내가 기대했던 농촌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고 있는 곳은 지리산 천왕봉과 노고단 사이에 자리한 작은 마을, 전북 남원시 산내면이다. 2004년 이주 당시 산내면은 이미 100여 명의 귀농·귀촌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실상사라는 절에서 내어주는 농지와 산 중턱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귀농전문학교까지, 산내면은 도시민들의 귀농과 귀촌, 이주를 연결해주는 훌륭한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서 농사를 배우고, 농촌에서의 삶을 배운 사람들이 한두 명씩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정착한 사람들의 지인과 가족이 이주하면서 어느덧 이곳은 인구 2000명 중 500여 명이 귀농·귀촌, 이주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마을이 되었다.
나는 조금 다른 경로로 이 마을에 들어왔다. 어느 날 실상사라는 절에 전국의 환경 운동가들이 모여서 행사를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100명이 조금 넘는 규모였던 것 같다. 100명 이상의 환경 운동가들이 모이는 곳, 그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역의 문화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당시 서울의 한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일이 좋아서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농촌에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때였다. 산내면은 그런 점에서 나에게 심리적 안전감을 주는 동네였다.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그 한 장면이 결국 이주와 정착을 결심하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사람이 모이는 공간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산내면에 정착해서 살다가, 나도 도시와 시골을 연결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과 수년 전 봤던 환경 운동가들이 모인 풍경의 기억이 만나면서 2012년 실제 공간을 만들었다. ‘마을 카페 토닥’이라는 이름의 작은 카페였다. 벌써 13년이 넘은 이야기라 쑥스럽지만, 이 공간에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기대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었다. 마을 주민들이 모이고, 여행자들이 머물며, 활동가들이 숨을 고를 수 있는 관계의 공간이기도 했다. 카페에서 진행한 다양한 모임, 워크숍, 강의, 만남 등은 사람들 사이에 관계를 만들고, 산내 마을과 인연을 이어주며, 지리산과 새로운 연결을 형성했다. 나는 공간이 관계를 만든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관계는 이야기를 낳고, 이야기는 변화를 상상하게 한다. 서로의 얼굴을 알고, 이름을 부르고, 삶을 나누는 과정에서 지역에 대한 신뢰가 조금씩 쌓여간다. 결국 그 카페에서 연결된 사람들과의 관계와 신뢰가 지리산권 5개 지역의 마을과 사람, 활동을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으로 이어졌다.
토닥이라는 공간과 지리산이음이라는 단체를 기반으로 사람들이 연결되다 보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생겼다. 옆 동네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일들을 알게 되면 내가 살고 싶은 동네에서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마침 전남 구례군에서 마을의 농부들과 한 명의 기획자가 도시민들에게 미리 농사비를 받고 농산물을 나누는 ‘농사펀드’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기획자를 인터뷰하러 갔다. 그다음 해부터 우리 마을에서도 소농 15명과 함께 같은 취지의 ‘지리산에살래펀드’를 시작했다. 130명의 도시민이 15명의 농부와 연결되었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진행한 ‘지리산 시골살이학교’도 도시와 농촌을 연결한 흥미로운 일이었다. 주로 30~40대의 도시민이 참여한 이 학교는 농사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시골살이에 관한 다양한 삶의 모습과 시골에 살기 위해 필요한 음식, 농사, 집, 직업 등을 알아보는 일주일 간의 학교였다. 낯선 곳에서 며칠 머물며 일하고, 지역 주민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고,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체험하는 행위는 생각보다 큰 힘이 있다. 누군가는 “지리산에서의 시간이 나의 일과 삶을 다시 정렬하게 했다”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그 시간을 통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고도 한다.
한 번의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시간과 공간에서 나눈 경험은 누군가를 이주하게 하기도 했다. 지리산 시골살이학교를 통해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지리산이음에서 함께 일을 했고, 한 참가자는 가족과 함께 이주해서 옆 동네에서 작은 책방을 열었다. 책방은 그 지역의 문화와 지식의 교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우리가 연결해준 게스트하우스 주인과의 인연이 계속되어 그 게스트하우스에서 전시회를 여는 참가자도 있었다.
산내면에는 ‘맛있는 부엌’이라는 요리를 배우는 공간이 있다. 그곳에서는 매월 제철 음식 학교가 열린다. 한 달에 한 번 1박 2일 모여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밥 짓기, 제철 재료로 반찬 만들기, 그 계절에 맞는 김치 담그기, 장 담그기를 배운다. 이 학교에는 요리에 진심인 음식점 사장님들도 찾아오고, 가족에게 밥을 차려주고 싶다는 중년 남성도 찾아온다. 물론 공간에는 역시나 요리에 진심이고 능력이 출중한 운영자 한 명이 있다. 공간과 한 사람의 연결자가 있는 그곳이 도시와 농촌을 음식으로 연결하고 있다.

도시민을 농촌으로 불러들이는 연결의 힘
2000년대 중반, 지리산 구례에서 ‘지리산문화제’가 열렸다. 지리산 골프장 예정지였던 산동면에서 열린 이 행사는 골프장 반대 운동의 한가운데 있었던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함께 연대한 활동가들과 지리산권 주민들이 공연과 프로그램을 꾸리며 만들어졌다. 행사는 산동면 마을 논 위에서 진행됐다. 추수가 끝난 논에는 짚단으로 만든 긴 의자가 놓였고, 마을 사람들이 직접 만든 작은 무대 위에서 공연이 펼쳐졌다. 그 뒤로는 지리산의 높은 봉우리가 서 있었고, 붉은 석양이 내려앉고 있었다. 그 풍경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의 환한 웃음, 누구에게나 먼저 인사를 건네고 음식을 나누던 환대의 기억은 내가 사는 마을에서도 그런 장면이 펼쳐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게 했다. 그리고 나를 이주하게 만든 결정적 장면 중 하나였던 100여 명이 넘는 환경 운동가들의 행사가 겹쳐졌다. 지리산이 보이는 야외무대에서 사람들이 모여 사회적 의제를 논하고 눈을 마주치고 손을 맞잡으며 미래를 상상하는 모습, 그 경험이 얼마나 큰 울림으로 남을지 상상해 보았다. 농사짓던 땅에서 펼쳐진 그 장면, 그곳에서 맺어진 인연, 그리고 내 마음속에 쌓여 있던 호기심이 결국 ‘지리산포럼’을 시작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2015년에 시작된 지리산포럼은 3박 4일 동안 전국 곳곳에서 모인 150~250여 명이 세상의 다양한 의제에 대한 생각을 발표하고 토론하고 공감하는 행사이다. 2025년까지 어느덧 11년째 이어지고 있다. 참가자들은 산내면 곳곳에 흩어져 있는 마을 숙소와 식당을 이용하며, 서울에서 네 시간 떨어진 이 농촌 마을과 자연스레 인연을 맺는다. 그리고 포럼 기간 동안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더 나은 사회를 상상하는 시간을 보낸다.

수만 번의 연결, 사람과 사람을 잇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지역의 연결은 또 다른 연결을 낳는다. 그 과정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지금으로서는 단정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연결이 한 번의 교육이나 행사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장소와 사람, 경험을 통해 관계가 쌓이고, 그 관계가 지역의 내일을 만들어가는 힘이 된다. 농촌은 인구는 적지만 관계망이 촘촘하다. 그래서 작은 변화라도 울림이 크고 깊게 퍼진다. 물론 변화는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먼저 사람을 초대하고, 이야기를 듣고, 만남을 만들고, 연결을 이어가야 한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농촌을 소멸 위기의 공간으로 본다. 그러나 그 인식은 농촌 안에서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는 다양한 움직임을 보지 못한 채, 통계만으로 지역을 판단하기 때문에 생긴 오해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 역시 인구 20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지역이지만, 토닥이라는 카페에서 출발해 지리산이음으로 이어진 10년 동안 우리는 수만 개의 연결과 관계를 만들어왔다. 요즘 말로 ‘생활인구’, ‘관계인구’라 부르는 흐름을 이미 실험해온 셈이다.
정주인구는 줄고 있지만 이곳과 연결된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나는 모습, 나는 이 현상 속에서 농촌의 미래를 보고 싶다. 어디선가 누군가는 첫 번째 연결을 시도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그 연결을 이어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농촌은 고요하고 단절된 공간이 아니라, 미래의 연결과 실험이 매일 벌어지는 공간이다. 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떤 참가자가 말했다. “여기 오면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 줘요.” 그것이 농촌이 가지고 있는 힘이다. 사람들이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주는 곳, 그것이 어쩌면 농촌의 가장 큰 자산일지 모르겠다. 그러니 도시와 농촌은 서로를 보완하며 교류해야 하고, 그 사이를 잇는 연결의 힘이 농촌에는 꼭 필요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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