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정책의 틈새를 메우는 사람들

계간 <비욘드 로컬> 여름호에 쓴 인트로 성격의 글이다. 2026년 6월 22일.

지방 소멸, 지역 활성화, 청년 인구 유출, 인구 감소, 지역 균형이라는 거대 의제에 정부와 지자체는 꽤 오랫동안 정책과 예산을 투입해왔다. 각 지자체는 감소하는 인구 그래프에 청년층이 증가하는 지표를 기대하고, 지역 활성화라는 기대 속에 창업을 독려한다. 반면 행정이 기대하는 그래프와 숫자라는 깔끔한 지표 밖에는 정책과 예산에서 소외된 채 묵묵히 지역의 일상을 지탱하고 있는 흐름이 존재한다. 지역 정책의 타켓을 고민해보는 <비욘드로컬> 이번 호에서는 정책적으로 덜 논의되는 중장년층의 지역 이주와 지역살이 이야기와 현장과 정책 사이의 빈틈을 메워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보편적 복지가 사회 전체를 지탱하는 촘촘한 그물망이라면, 한정된 자원으로 쇠퇴하는 지역을 살리는 지역 정책은 분명한 타겟이 있다. 그 타겟은 사람일 수도 있지만 특정한 거리, 장소, 공간, 마을일 수도 있다. 세련된 기획서과 희망 가득한 비전으로 정책 테두리 안에 안착해 역량을 발휘하는 이들이 있지만, 자로 잰 듯한 정책 테두리 밖에는 틈새가 존재한다. 이 틈새는 역설적이게도 현장의 활동가들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대안을 만들어가는 가능성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정책의 선명함 뒤에 가려진 틈새에 주목하고, 이 틈새에서 지역 정책의 관점 전환을 위한 몇 가지 키워드를 발견해보려고 한다. 

지역 정책의 관점을 전환하는 세 가지 키워드 : 지역성, 관계와 시간, 그리고 다양성

개운산마을 가로주택정비사업 조합은 성북구 종암동 개운산마을 일대를 대상으로 한 노후 주거지 정비사업으로, 자체 브랜드 ‘커먼즈’를 통해 국내 최초 목조·패시브 아파트 모델을 선보였다. <주민이 만드는 집과 마을, 커먼즈 종암>에서는 아파트를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도모하는 공동 생활 기반으로 바라보는 ‘커먼즈’의 건축 실험과 철학에 대해 들어본다. 

지역 정책에서 당연하면서도 놓치기 쉬운 것이 지역성이다. 지역 정책이 만든 상품과 서비스는 전국 어디서나 똑같이 적용되는 규격화된 공산품이 아니다. 지역 정책은 그 지역을 떠나지 않고 계속 살아가야 할 장소적 이유를 찾아주는 일이어야 한다. 정책을 수립하기에 앞서 각 지역 고유의 특성과 맥락을 발견하려는 노력과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구를 잘 분석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지역성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그 지역에서 쌓인 관계와 시간이다. <커먼즈 종암> 사례처럼 오랫동안 한 장소에 머무른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 사이에 쌓인 시간과 관계와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 자체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지역의 귀한 자산이다. 그것을 배제하고 타 지역에서 성공한 사례와 경험을 이식하려는 정책을 과연 좋은 지역 정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오랫시간 지역에 쌓여진 관계와 시간의 무게를 살피지 못하면 창업이 많아지고 지역에 사람들이 들어오더라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갈 확률이 크다. 

정책은 지역에서 규모있게 눈에 띄는 사업을 요구한다. 하지만 정책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지역사회의 작은 틈새를 챙기는 것은 지역 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길과도 같다. 여기저기 똑같은 콘텐츠가 존재하는 지역을 우리는 원하지 않는다. 더 작고 구체적인 마을, 골목, 주민공동체 단위에서 더 긴밀하게 소통하고, 보편적 복지와 규모 있는 지역 정책이 챙기지 못하는 틈새를 메꾸는 실험을 지원하는 것이 많아질 때 지역의 다양성이 살아난다.   

자존감을 지키는 공모의 장으로 실존적 고민에 답하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되며 신중년이라는 단어가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다. 이 길목에서 중장년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환과 연대를 모색한 <중장년 네트워크 포럼 – 컴 투게더 사례>에서는 해당 행사의 기획 및 진행 소회, 이처럼 인생 후반기를 함께 그려보는 연대 활동을 지속해 온 이유에 대해 들어본다. 

중장년 정책들은 여전히 중장년들을 복지의 수혜대상으로 바라보거나 취업과 창업이라는 경제적 프로그램에 가두고 있다. 청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대상만 바뀌어서 중장년에게 적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컴 투게더>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중장년들이 직장과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마주하는 공백은 돈의 결핍 이전에 실존의 문제이다. 이들의 관심 키워드는 삶의 의미와 역할을 새롭게 찾아가는 전환, 서로의 손을 잡고 세대를 잇는 관계의 힘을 뜻하는 연대, 중장년이 살아오면서 축적한 유무형의 경험, 지혜, 관계를 비롯한 자산을 다음 세대와 나누는 사회적 상속이었다. 이는 기존 정책이 관심을 갖는 귀농과 귀촌지원, 지역살이, 취업과 창업이라는 단어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삶의 회복을 바라는 언어들이다. 

중장년의 실존적 고민과 세가지 핵심 키워드를 보면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한 도움과 위로가 아니라 무너지기 쉬운 생애 전환기의 자존감을 지키는 것이다. 전후세대로서 어려운 역사를 겪어온 지금의 70-80대와 다르게 50-60대는 산업화 이후 민주화와 세계화, 정보화를 모두 겪은 세대이다. 그래서 미리 짜놓은 매뉴얼과 같은 정책을 지원하기 보다는 정확한 미션과 목표를 놓고 그에 맞는 정책적 사업들을 스스로 기획해서 진행하게 해보는 자율적인 정책 제안과 공모의 장이 더욱 절실하다. 

자발적 운영으로 빚은 비빌언덕

‘지리산 목화장터’는 귀농귀촌 인구가 많은 경남 산청군 신안면을 대표하는 5일장 장터이자, 밴드를 통해 온라인으로도 연결되는 지역민 커뮤니티다. <목화솜처럼 따뜻하게, 지금 이 순간을>에서는 2019년부터 청년기획팀이 이끌며 더욱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는 기회의 장이 되고 있는 ‘목화장터’의 성장과 운영 뒷이야기를 들어본다. 

산청에서 12년 넘게 180회 이어져온 목화장터 활동가는 이 장터가 이렇게 유지될 수 있었던 힘은 주민의 자발적 운영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들은 시작할 때부터 행정의 예산이나 인력지원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관의 지원이 시작되면 관리와 간섭이 뒤따르고, 그것이 장터의 지속가능성을 해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발성만큼이나 중요한게 있을까. 예산을 지원했으니 관리와 통제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낡은 문법으로는 지역 정책에서 지속성과 혁신성을 기대할 수 없다. 

목화장터는 기성세대가 축적해온 신뢰의 바탕 위에 청년세대들이 이어받아서 발칙하고 다정한 상상력을 더했다.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비빌언덕다. 그들은 목화장터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와 다정함 속에서 지역 내 비빌언덕이 있음을 느꼈다. 인구 3만명의 지역에 5천명의 목화장터 밴드가입자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필요할 때 손내밀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역살이를 지속해나갈 힘을 얻는다. 지역 정책에서도 비빌언덕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성공이 아닌 서사를 읽고, 느린 변화를 기다려 주는 정책

윤준식 작가가 운영하는 독립잡지 및 뉴미디어 플랫폼 <매거진S>는 ‘먹고사니즘’을 중심으로 기존 대형 언론이 다루지 않는 틈새 이슈를 깊이 있게 다루며 특히 로컬 트렌드, 인터뷰 등에 집중해 왔다. <로컬을 지향하지 않는 로컬잡지>이라는 역설적 제목의 글에서 <매거진S>의 창간 계기와 지난 운영기, 로컬 분야에 주목해 온 이유에 대해 들어본다. 

로컬 정책을 이야기할 때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사례가 있냐는 것이다. 사례를 보고 벤치마킹하는 것은 좋다. 그 사례가 빛나는 이유를 살펴보고 우리 지역에 맞게 정책을 조정하고 대상을 찾아보고 좀 더 나은 대안을 찾아보면 되니까.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복사하여 붙여넣기(복붙)을 많이 본다. 그래서 그 성공 사례처럼 되기를 기대한다. 그 사례가 무대 위에서 빛나기까지 뒤에서 인내했던 축적된 시간과 보이지 않는 서사는 과감히 생략된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성공의 결과물만 취하려는 태도, 그래서 결과가 좋기 때문에 모두 좋다는 ‘결과 편향’에 빠진다. 성공 사례가 지표가 되고 가이드라인이 되고 표준화되면서 지역 현장의 불만과 탄식이 터져나온다. 이제는 성공의 신기루같은 결과에만 기대지 않는, 그 이면에 축적된 지역 활동의 서사를 읽어내는 지역 정책을 보고 싶다. 

2021년 개국한 경남 창원시의 마을 라디오 ‘진해마을라디오’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공모사업 등으로 활성화되었으나 지난해 시의 갑작스러운 녹음 공간 퇴거 조치로 방송 송출이 중단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진해마을라디오의 작은 서사>에서는 ‘진해마을라디오’의 지난 운영기를 들어보고, 마을미디어 지원 정책의 필요성에 대해 들어본다.

모든 지역 주체들이 이야기하는 핵심은 변화는 느리게 온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변화를 만드는 활동 주체의 변화가 느리기 때문이다. 굼떠서가 아니다. 사람 한 명의 사고와 습성, 행동 양식, 활동 내용이 변하는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사람의 마음이 열리고, 사회적 관계망이 재조직화되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정책은 신기루와 같다. 변화가 느리다다는 것이 정체나 퇴보가 아니라 지역이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뿌리가 내리고 있다고 기다려주는 인내의 정책이 필요하다. 

지역의 사람들을 품는 ‘성공적인’ 지역 정책을 기대하며

이번 호에 실린 글들에서 지역 정책의 진정한 성공은 문서에 담긴 희망섞인 지표가 아니라, 지역에 머물며 서로를 붙잡아주는 이웃들의 다정한 얼굴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아주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현장의 자율성을 짓누르는 관성적인 통제와 간섭 대신, 단기적으로 실패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도와주고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든든한 정책 안전망이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이 진심으로 연결되고 성장할 수 있게, 이웃이 이웃을 서로를 도울 수 있는 관계망이 생기는 시간을 기다려주는 것, 이 당연한 사실이 지역 정책에 반영될 때 비로소 정책과 현장의 빈틈은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으로 채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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