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 저항의 역사

직접행동
카테고리 정치/사회
지은이 에이프릴 카터 (교양인,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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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접행동>을 읽다보니 생각한 것보다 인간의 비폭력 저항의 역사는 오래 되었더군요. 흔히 간디의 투쟁으로 상징되는 비폭력 저항을 근대 국가 이후의 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 책의 저자는 여러 사례를 통해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는 권력에 저항하는 비폭력 직접행동을 실천해왔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진 샤프(Gene Sharp)가 지적한대로 역사가들이 무장 봉기에만 관심을 기울였던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몰랐을 뿐이었나 봅니다. 책에서 예로 들고 있는 몇가지 예들만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로마 제국내의 기독교도는 제국의 종교를 믿고 따르기를 거부했으며, 로마군으로 복무하는 일을 거부했다.
  • 인도 왕실의 궁정시인들이 전쟁을 일삼는 국왕에 대한 거부 표시로 금식에 돌입했다.
  • 잉글랜드의 경우 1381년의 농민반란 때부터 왕실이나 의회에 백성의 요구를 전달하기 위하여 런던을 향해 상경 투쟁 행진을 벌이는 관행이 시작되었다.
  • 고대 이집트에서는 거대한 토목공사 사업으로 인해 공사장 인부들이 기원전 1,100년 룩소르의 사원에서 연좌 농성과 파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 노르웨이 농민과 어민이 1515년 스웨덴과 전쟁을 벌이기 위해 부과한 세금에 반대하는 납세거부투쟁을 했다.
  • 미국 식민지 주민들은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춘 영국산 수입품에 대항하여 1760년대와 1770년대에 소비자 불매운동을 통해 식민지 경제를 유지하려고 애쓰다 결국 무장투쟁에 나섰따.
  • 아일랜드에서는 19세기 초 반가톨릭법에 대한 저항, 1880년대부터 일어낸 아일랜드국토연맹운동, 과도한 지대를 내지 못해 쫓겨난 사람들의 땅을 차지한 농민들에 대한 사회적 지탄이 있었다.

1865년~1928년, 두 시기 사이에는 63년이라는 시간이 존재합니다. 이 긴 시간은 영국에서 여성들이 투표권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한 시간입니다. 그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집회와 시위, 투옥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는 분명 과거의 사람들의 희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향수에 젖을 필요는 없지만 역사와의 연결성만은 잊지 말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비폭력 저항운동에는 미디어의 발전도 큰 역할을 합니다. 정보와 사상을 대중들에게 확산시킬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은 사람들의 의식을 일깨웠고, 이 기술을 활용한 운동가들의 전략과 전술도 다양해졌습니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역사의 전진을 위해 신문을 제작했고, 유인물을 배포했고, 편지와 전화 등도 활용해왔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과 정보의 전달이 저항운동의 큰 무기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시기도 이 원칙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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